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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민만 '봉', 혈세 낭비"…국토부가 해명도 못하는 이유는?

버스 요금 인상 관련 브리핑하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1조원 이상 소요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우려했던 '버스 대란'은 없었지만 정부의 해법을 두고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파업 예고를 하루 앞둔 지난 14일, 국토교통부는 요금 인상과 준공영제 확대를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긴급 당정 회의를 갖고 예고 없이 발표한 해법이었습니다. 경기도 시내버스는 200원, 빨간색 광역버스는 400원씩 요금을 올리고 기존에 지자체 소관이던 광역버스를 국가 사무화해 준공영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책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서울 등 8개 지자체가 협상을 타결했고 가장 논란이 됐던 경기도에서도 요금 인상 효과를 분석하자며 조정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정부가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입니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더 거세졌습니다. 요금 인상을 두고는 "시민만 봉이다", 준공영제 확대에 대해선 "혈세 낭비"란 지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건 국토부 대응입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해명자료를 내놓는데 유독 이번 비판에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6일 딱 한 번 해명자료를 배포했는데 "1조원 이상 소요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란 짧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건 준공영제를 전국으로 확대했을 때 드는 비용이지 이번에 발표한 일반 광역버스 준공영제는 비용이 그렇게 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버스 파업 찬반투표
● "요금 인상은 불가피…수익자 부담 원칙 따라야"

"시민만 봉"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실제 오는 7월부터 버스 업계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정부는 현행 버스 운송 수준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앞으로 1만 5천명의 버스 기사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추가 인건비는 7천3백억원이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막대한 비용 부담은 정부, 지자체, 버스 업체 모두가 분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경영 문제가 아니라 정책 변화로 많은 비용 요인이 생긴 만큼 지자체나 버스 업체 어느 하나가 비용을 부담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버스 이용객도 어느 정도는 요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버스는 도로 같은 공공 인프라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그 혜택을 보는 이용자가 비용 상승 요인을 분담하는 것은 경제의 기본 원리"라고 밝혔습니다. 버스 요금 인상이 4년 정도 주기로 이뤄졌는데 이번 인상이 그 시점과 일치한다고 말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실제 이번 발표로 서울, 경기, 인천 가운데 경기도만 버스 요금이 올랐는데 요금이 오르지 않은 서울, 인천 역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편이라서 시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버스파업 요금 올려야
● "준공영제 감독 강화해야 하지만 공공성 강화는 필수"

"혈세 낭비"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준공영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보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버스 업체는 보통 노선 소유를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일반 면허를 발급받는다"며 "노선 사유화로 인한 문제가 필연적인 만큼 버스의 공공성 강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버스 회사들에 노선 조정과 배차 등을 맡기면 수익에만 집중해 정작 시민들이 필요한 노선이 없어지는 등 문제가 있으니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에서 이런 부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토부 역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현재 준공영제를 실시하지 않는 지역의 격일제나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제 등의 근무가 불가능해 준공영제 지역에서 하는 1일 2교대제로의 전환은 필수"라고 했습니다. 준공영제 확대가 분명한 정책 기조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문가들도 '혈세 낭비' 우려를 합니다. 실제 준공영제를 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 매년 버스 업계에 2천5백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우려는 '막대한 예산 투입' 자체가 아니라 '관리 감독의 부실'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행 준공영제는 '수입금 관리'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버스 운행 요금을 모두 수입금 공동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고 대신 버스 업체에는 적정 이윤을 포함한 '표준운송원가'를 주는 방식입니다. 서울의 경우 버스 한 대당 60여만 원 수준입니다. 적자가 나면 시가 예산으로 메꿔주는 방식이라 경쟁이 없어 버스 운영의 질이 나아지길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버스 업체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 감독도 제한적입니다. 경영진의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공영제 등 공공성 강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논의해야지 없앨지 말지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버스 노조 파업
● 비판에 해명 못하는 국토부, 왜?

많은 전문가들이 방향성을 인정하는 대안을 내놓고도 정부가 비판에 제대로 해명을 못하는 건 자초한 면이 큽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버스 업계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대규모 신규 채용과 기존 기사의 임금 감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8천명의 기사를 충원해야 하고 추가 비용이 4천억 원에 이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이미 지난해 5월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버스 요금 현실화, 재정 지원 등의 내용도 담겼습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버스 공공성 강화 대책'입니다. 버스 업체를 전수 조사했다며 전국적으로 1만 5천명의 기사가 더 필요하고 당장 오는 7월까지 3천3백억 원, 주 52시간제가 확대되는 2021년 7월까지는 모두 7천3백억 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1만 5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정부는 7월까지 버스 자격증 소유자를 전환 유도하거나 군, 경찰 인력 등을 활용해 신규 버스 기사 7천3백명을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을 비교하면 실제 신규 채용된 기사는 1천2백명에 불과합니다.

이번에 내놓은 요금 인상과 일반 광역버스 준공영제 확대 역시 이미 지난해 12월 발표한 대책이었습니다. 긴급 당정 회의를 갖고 예고 없이 깜짝 발표한 대책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라 5개월 전 이미 밝힌 '오래된 대책'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1년 전부터 문제를 알고 5개월 전에 대책을 마련했지만 정부가 성과를 낸 건 없었습니다. 요금 인상 필요성에 대한 시민 설득 과정도 없었고 문제가 많은 현행 준공영제의 관리 감독을 강화해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년 동안 "버스는 지자체 소관"이라는 입장만 반복해왔을 뿐입니다. 비판에 제대로 된 해명을 못하는 이유입니다.

버스 노사는 물론 전문가들 대다수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파업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대규모 신규 채용이 필요하고 기존 기사들은 임금 감소 보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오래된 대책'을 재활용하는 걸 넘어 정부가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버스는 지자체 소관'이라는 태도로는 버스 업계의 갈등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7월까지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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