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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불났을 때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나

[인-잇] 불났을 때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나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SBS 뉴스

작성 2019.05.21 11:02 수정 2019.07.04 15: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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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지난달 초 대규모 산불이 강원도 고성·속초와 강릉·동해·인제 일대를 덮쳤다. 심각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집과 일터를 잃은 이재민도 숱하게 생겨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물들도 이 재난을 피하진 못했다. 축사에 있던 소, 돼지 등 가축은 물론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까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어야 했다.

강원도 발표에 따르면, 속초·고성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39개 농가의 가축과 개 4만 1855마리가 폐사했다. 강원도수의사회와 강원도 동물위생시험소는 피해를 입은 가축과 화재 속에서 구조된 반려동물에 대한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벌였는데, 화재 발생 1주일 만에 소 1134마리, 개 57마리, 고양이 15마리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2가지를 고민해봤으면 바람이 있다.

● 재난 시 반려동물을 버린 사람, 처벌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고민해볼 부분은 화재, 지진, 태풍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반려동물을 버린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재난 발생 시 동물과 함께하지 않고, 반려동물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피난을 떠나는 보호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대답은 '어렵다'다.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1836명과 60만 마리. 이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와 동물 숫자다. 미처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동물이 60만 마리나 되자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고, 이에 미국은 반려동물 대피 및 구조 표준 행동(Pets Evacuation and Transportation Standards Act, 일명 PETS Act)을 제정했다.

재난 발생 시 동물을 구조해야 한다는 내용은 물론, 동물과 함께 대피, 피난할 때 주의할 점과 필요한 점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물품부터, 수의학적인 처치가 필요한 상황까지 말이다. 또한, 정부에서도 재난 발생 시 동물의 구조와 대피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런 표준이 만들어졌음에도), 재난 발생 시 동물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러자 주별로 관련 법안을 더 강화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법을 강화한 곳이 플로리다 주다.

플로리다 주는 지난 3월 '인공재해 및 자연재해 발생 시 개를 묶은 채(restrained) 외부에 내버려 두면 1급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의회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017년 9월 허리케인 '어마'가 플로리다 주를 휩쓸었을 때 또다시 줄에 묶인 채 버려진 반려견들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1급 경범죄를 저지르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달러(약 600만 원)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개를 묶어두고 피난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징역형과 벌금형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재난 발생 시 동물과 함께 대피하거나, 동물이 도망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는 내용을 담는 것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면 좋겠다.

● 대피소에 못 들어가는 반려동물…"우리 집 해피와 함께 못 들어가면 대피소 안 갈래요"

두 번째로 고민해봤으면 하는 부분은 '대피소로 대피하지 못하는 반려동물'에 대한 것이다. 법은 없지만 우리나라도 반려동물 대피에 관련된 최소한의 대처방법은 존재한다.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대처방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아쉽다.

이 대처방법은 가족 재난계획에 반려동물을 포함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으니 수의사나 조련사가 동물을 위한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알아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관심 없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대피소에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경찰견, 군견 등 봉사용 동물만 들어갈 수 있다.)

미국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반려동물의 대피소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두고 대피소로 대피하라는 구조대원의 권유에 많은 보호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하지 못한다면 나도 대피소로 들어가지 않겠다"라며 거절했다. 2006년 Fritz Institute의 설문조사 결과, 대피를 거부한 인구 중 44%가 "반려동물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2006년 PETS Act 제정 이후, 지방 정부는 반드시 재난 대응 계획에 동물을 포함시켜야 한다. 따라서 30개 이상의 주 정부가 재난 발생 시 동물의 대피, 구조, 보호 및 회복을 제공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동물단체 동물해방물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대피소 역시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반려동물 동반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동물보호 담당관을 포함한 현장 인력이 가까운 시 보호소나 따로 마련된 동물 전용 대피소로 반려동물을 안전하게 안내·인계하며, 철저히 기록하여 추후 반려인과 함께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1년 대지진을 겪은 일본의 경우에도 환경성 '반려동물 재해대책'을 통해 대피소 내 동물 동반을 허용하고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동물보다 사람을 먼저 챙기는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족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1500만 명에 이른다. 가족을 버리고 사람만 대피소에 입소하라면 당연히 고민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도 반려동물을 위한 대피 기준과 대피 장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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