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어린이 '하차 확인' 의무화 한 달…일부 운전자, "시끄럽고 귀찮다"

정다은 기자 dan@sbs.co.kr

작성 2019.05.16 13: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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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차 확인장치' 의무화 한 달…관건은 실천

지난해 7월 경기도 동두천에서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 7시간 넘게 갇혀 있다 숨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하차시킨 후, 차량 운전자와 어린이집 교사 모두 차량 내부에 남아 있는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겁니다. 이런 사고는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 한 해에만 통학차량 안에 아이가 갇히는 사고는 80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1건, 2016년 37건, 2017년에는 60건으로 매년 20건 이상 증가해왔습니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자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습니다. 해외처럼 어린이 하차 확인 장치를 도입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도로교통법이 개정됐고 지난달 17일부터 13살 미만의 어린이를 태우는 승합차에는 하차 확인 장치 설치가 의무화됐습니다.

하차 확인 장치란 차량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기 전, 남아있는 아이가 있는지 차량 내부를 확인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뜻합니다. 이 장치를 설치하면 운전자는 차량 운행을 정지하거나 시동을 끌 때마다 차량 가장 뒷좌석 근처에 있는 확인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3분 안에 누르지 않으면 경고음과 함께 표시등이 작동합니다. 운전자가 차량 가장 뒷좌석까지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셈입니다.

● 학부모 '안심'…운전자 "시끄럽고 귀찮다"

법이 시행된 지 약 한 달. 현장의 반응은 어떨까요. 우선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았습니다. 확인 장치가 생겼으니 아이들이 내렸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게 될 거란 믿음이었습니다. 통학차량 내 어린이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다른 서비스를 함께 시행하는 어린이집도 있었습니다. '통학버스 위치 알림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무선장치를 어린이 가방에 달아두면 아이들이 통원차량에 탈 때마다 승하차 정보가 학부모에게 문자로 보내집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타고 있는 차량의 위치와 속도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통학용 차량그러나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시끄럽고 귀찮다는 운전자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보가 울리지 않도록 장치를 꺼두거나, 장치를 불법 개조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뒷좌석까지 가지 않고도 장치를 끌 수 있게 개조하거나, 하루에 한 번만 버튼을 누르면 되도록 만들어주는 업체도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법망을 피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자, 경찰은 계도기간을 한 달을 거친 뒤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하차 확인 장치를 꺼놨다가 적발돼도 범칙금은 최대 13만 원에 불과합니다. 고작 이 정도 처벌로 하차 확인 장치가 제대로 운용되도록 강제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10년 일찍 시작한 美…"하차 확인 장치 개조하면 1급 중죄"

국내보다 이 장치를 일찍 도입한 선진국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장치를 불법 개조하려는 움직임은 없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내보다 10년 먼저 하차 확인 장치를 의무화한 미국 위스콘신 주를 찾았습니다. 위스콘신 주에서는 지난 2005년 2살 아이가 보육 차량에 방치돼 숨지자 지난 2009년 하차 확인 장치를 의무화했습니다. 위스콘신 주 아동법에 따르면 6명 이상의 아이를 태우는 보육 차량에는 하차 확인 장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하지 않았을 경우 일 년 이하의 징역과 1천 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장치를 제거하거나 조작, 개조하는 경우는 처벌이 더 무겁습니다. 1급 중죄로 간주해 3년 6개월 이하의 징역과 1만 달러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귀찮다는 생각으로 쉽게 끌 수 없는 이윱니다.

처벌뿐 아니라 통학차량 운전자를 뽑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통학차량 운전기사가 되려면 먼저 '통학차량 운전면허'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신체검사와 5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2주간 실전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실전교육까지 마치면 그제야 통학차량 주행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 주행시험까지 통과하고 나면 비로소 면허가 나오는데, 이것도 8년마다 갱신해야 합니다. 운전자가 70세 이상일 경우엔 갱신주기가 2년으로 더 짧아집니다. 운전기사가 되는 것뿐 아니라 자격을 유지하는 것도 까다로운 겁니다. 통학차량 운전자들의 책임의식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도 어린이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갖춰졌습니다. 새로운 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대로 운영하는 겁니다. 있으나마 한 장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운영자들의 책임 의식과 함께 제도를 지키도록 유도하고, 필요하다면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