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중국의 비밀무기와 사드 보복의 기억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5.15 14:35 수정 2019.05.16 17: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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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를 갖췄다. 싸우는 게 두렵지 않다. 싸워야 한다면 끝까지 싸우겠다. 오천년 넘는 풍파를 겪었는데, 겪어보지 않은 일이 뭐가 있겠는가? 민족 부흥의 위대한 과정을 실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어려움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감을 굳게 하고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

마치 TV 사극이나 영화에서 봤음직 한 비장한 격문(檄文) 같습니다. 전쟁을 앞둔 병사 앞에 선 장군들이 이런 말로 사기를 끌어 올리는 장면을 종종 봤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격문(?)의 출처는 TV 사극도 전쟁 영화도 아닌 TV 뉴스입니다. 중국 관영 CCTV 메인 뉴스 앵커인 캉후이(康輝)가 그제(13일) 메인뉴스 시간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낭독한 논평입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2막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CCTV 앵커의 비장감 넘치는 뉴스는 중국인들에게도 하루종일 화제가 됐습니다. '이런 뉴스를 정말 오랜만에 봤다"는 반응과 함께, "북한 조선중앙TV인 줄 알았다" 같은 댓글처럼 꽤나 낯설게 느낀듯한 중국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캉후이가 낭독한 격문 내용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당일 웨이보에 조회 수가 36억 건이 넘었고, 170만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 매체는 중국인의 강한 애국심이 드러냈다고 평가하는 걸 보니, 중국은 여전히 이런 격문이 통하는 사회라는 걸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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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트럼프-시진핑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회동 이후 6개월여간 협상 모드였던 미중 간 무역마찰은 다시 급변하고 있습니다. 서로 관세 폭탄을 쏟아붓는 강 대 강 대결 구도로 판이 바뀐 분위기입니다. 미국과 중국 양측은 서로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눈에 보이는 무기는 미국이 좀 더 많아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양국의 수입품 규모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수입하는 중국 제품이 중국이 수입하는 미국 제품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수입품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관세 무기는 미국이 효과를 더 본다는 얘깁니다. 실제 지난 10일부터 미국이 관세율을 올린 중국 상품은 2,000억 달러 규모인데, 이에 대응해서 중국이 관세율을 인상한 미국 상품은 600억 달러 규모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미국은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이 더 있으니, 관세 맞불 놓기는 분명 중국에게 불리한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중국 매체들은 자국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국뽕'언론 환구시보는 "중국이 반격 수단이 많다"는 점을 자신감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중국 매체들이 말하는 반격 수단, 비밀무기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방법, 위안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방법, 첨단 반도체의 원료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방법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무기들은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데다, 실제 효과가 있을지, 후폭풍은 어떨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사드 보복중국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반격 수단은 따로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미국보다 우리가 그걸 먼저 겪은 바가 있습니다. 재작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 배치 당시 당했던 중국의 보복 조치들이 그것들입니다. 당시 중국은 사드 부지를 제공했던 롯데가 중국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롯데를 상대로 격문을 쏟아냈고, 관련 당국은 각종 단속을 통해 영업을 중지시켰습니다. 과격한 중국인들은 롯데마트 매장에 몰려와 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건축을 중단시킨 선양 롯데월드는 최근 2년여 만에 건축재개 허가를 받았지만, 사실상 사업 포기를 고민해야 할 시기에 놓였습니다. 한국행 단체 관광도 금지했습니다. 이렇게 민관이 똘똘 뭉쳐 조직적인 방해 활동이 진행됐지만, 중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의 발로라는 겁니다. 롯데는 중국 시장에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국의 이런 식의 외국기업 보복은 우리에게만 했던 것도 아닙니다. 2012년 일본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에도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을 진행됐고, 크고 작은 분쟁이 있을 때마다 중국 소비자들은 분연히(?) 일어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국 기업에게도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 서막 때도 중국 SNS상에선 "미국 자동차 조심하라. 애플 아이폰 모두 버려라. 청바지는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니 모두 버려라"라는 선동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과는 달리, 중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들의 지금 상황은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습니다. 롯데처럼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당국의 각종 규제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사드 보복 관광 타격지금도 중국 SNS상엔 이런 조짐이 보입니다. 불매운동 얘기가 끊이지 않고, 미국 여행도 가지 말자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하이난성의 한 호텔은 미국 관리들에게 25%의 고율의 봉사료를 물리겠다는군요. CCTV 뉴스 메인앵커의 격문이 이런 중국인들의 뒤틀린 애국심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인민일보, 환구시보도 연일 끝까지 싸울 것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어떤 비열한 전쟁도 감수하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집니다. 다만 미중 양국 당국이 물밑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에서 뇌관 점화는 자제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일사분란하게 선동하는 중국의 관영 매체들, 지령이 떨어지면 광풍처럼 몰아치는 중국 사회 특유의 뒤틀린 애국심, 사드 사태 때 우리가 이미 겪었던 바로 그 광풍이 중국의 가장 강력한 비밀 무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