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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된 로마 불법점유건물, 교황청 추기경이 맨홀 들어가 복구

교황청 고위 사제가 수개월 간 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된 로마의 불법 점유건물의 전기를 복구하기 위해 불법 논란을 무릅쓰고 맨홀로 내려가 전기를 직접 복구해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13일(현지시간) 일간 일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교황청 사회복지 기관인 교황청 자선소를 이끄는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지난 11일 노숙자와 난민 등 400여 명이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국가 소유 건물 인근의 맨홀로 뛰어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노숙자, 난민에게 점거돼 현재 미성년자 약 100명을 포함해 450명이 살고 있는 이 건물은 공과금 약 30만 유로(약 4억원)가 미납돼 지난 6일자로 전기와 수도가 끊겼습니다.

노숙자들을 돕고 있는 한 수녀로부터 단전·단수로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주저 없이 현장으로 달려갔고, 경찰이 봉인해 놓은 맨홀에 들어가 전기 스위치를 다시 올렸습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ANSA통신에 "전기를 복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개입했다. 이것은 필사적인 몸짓"이라며 "어린이들을 위해 이번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측근은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이번 일에 수반될 법적인 결과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으나,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에서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에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라며 "벌금 고지서가 도착하면 납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평상시 자전거로 로마 시내를 돌며 빈민 구호활동을 펼쳐 '빈자들의 추기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전기 복구 이후 발생한 이 건물의 전기세를 사비로 납부하겠다는 계획도 털어놓았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2013년 교황청 자선소 책임자로 임명돼 밤에는 평상복차림으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직접 가져다 주고, 교황청 인근에 노숙자들이 씻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교황청의 사업을 이끄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교황청 고위 사제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소외계층의 편에 선 이번 일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좌파 성향의 일간 라레푸블리카도 크라예프스키를 "교황의 '로빈 후드'"라고 부르며, 그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장 사회 질서 확립을 강조하며, 강경 난민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내각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불법 거주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며 "교황청이 밀린 전기 요금 30만 유로를 납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로마, 밀라노 등을 비롯한 이탈리아 전역에서 노숙자, 이민자 등에 의해 불법으로 점유된 건물은 총 5만 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살비니 부총리는 또한 "대다수의 이탈리아인과 이민자들은 사정이 어려워도 꼬박꼬박 공과금을 내고 있다"며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자유이겠지만, 규칙은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살비니 부총리는 난민 정책을 비롯한 사회 정책에 있어서 교황청과 빈번한 의견 충돌을 보여왔습니다.

한편, 전기 회사 직원들은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에 의해 이 건물의 전기가 복구된 직후 현장을 방문해 다시 전기를 끊으려 했으나, 추기경이 남긴 쪽지를 발견한 뒤 전기가 그냥 공급되도록 놔둔 채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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