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어떨까. 당장 기자와 늘 논쟁 같은 인터뷰를 하던 미국 대통령들이 떠오른다. '1대 1 대담'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슈퍼볼 직전 인터뷰로 트럼프를 만난 CBS 마거릿 브레넌 기자는 첫 질문부터 "당신 또 셧다운(정부 일시폐쇄) 할 거냐" 묻고 수 없이 말 끊기가 예사였다. 이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아 미국 사회가 시끄러워진 것은 아니었다.
편성 시간을 지켜가며 출연자를 최대한 드러내는 게 방송 진행자의 임무이자 숙명이다. 답변이 장황하거나 질문과 겉돈다면 끼어들어 궁금한 문제의 답을 다시 묻기도 한다. 방송이라는, 인터뷰라는, '장르의 제약' 속에서 적절한 개입으로 출연자의 진심을 전하는 건 시청자에 대한 의무기 때문이다. 이걸 소홀히 하면 프로페셔널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출연자가 이 나라 최고 정책결정자였다. 진행자가 끌어내는 말 하나하나가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돼야 한다.
예컨대 문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1분위(하위 20%) 노동자와 고분위 노동자 사이 임금 격차가 역대 최저"라는 근거도 들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인용한 것인데, 가구 소득으로는 격차가 13배까지 늘었다는 통계청 조사도 있다. 그렇다면 진행자는 이렇게 다른 두 통계를 국정 책임자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어야 마땅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진단한 자영업자와 하층 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마찬가지다. 더 정밀하게 듣기 위해선 재차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정교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생각과 정책은 더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된다. 대담을 진행한 KBS 송현정 기자의 질문과 끼어들기는, 예리함과 빈도 면에서 오히려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다.
교양을 갖춘 시민은 선출직 지도자에 대한 기본적 존중을 가질 뿐이다. 그의 정책과 의도는 끊임 없이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내가 믿는 저 존재의 무오류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종교인의 자세일 수는 있어도 민주 시민의 태도가 못 된다. 지금이 봉건 시대인가. '태도'를 들먹여 훈련된 언론인을 공격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 말 안 자르고 따져 묻지 않는 '공손한 인터뷰'를 원한다면 KTV나 청와대 유튜브 등 해당하는 매체가 있다.
다소 엉뚱한 이 태도 논란으로 결국 피해를 볼 수 있는 건 국민이다. 대통령이 직접 2년간의 국정을 평가하고 남은 3년의 방향을 제시한 귀한 시간이 금세 소진됐다. 지상파를 통해 국민과 만나는 자리, 참모들이 밤새 만든 자료를 읽고 또 읽으며 준비했을 대통령의 메시지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청와대 대변인이 이 논란에 대해 "판단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비껴간 건 그래서 답답한 대응이다.
다행이라면 문 대통령이 직접 "더 공격적이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소회를 밝힌 점이다. 정치 지도자에게, 기자의 질문은 때로 기회가 된다. 날카롭고 당혹스러운 질문에 능란하고 안정적으로 답하고, 더러 불쾌할 수 있는 질문도 크게 웃어넘기는 대통령은 그 자체로 듬직하다. 문 대통령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앞으로 더 많은 언론과 자주 대담하며 국민과 소통하길 기대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