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된 피해자…인신매매의 덫 '준 연예인 비자'

김민정 기자 compass@sbs.co.kr

작성 2019.05.10 20:54 수정 2019.05.10 22: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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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억울하게 추방 위기에 내몰린 필리핀 여성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E-6-2라는 비자를 받았습니다. 준 연예인 비자로 불리는 종류로 작은 무대공연을 하러 올 때 발급해주고는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흥업소 주인들이 쉽게 외국인을 데려올 때 악용하는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김민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필리핀 여성 A 씨와 B 씨는 E-6-2 비자, 일명 '준 연예인 취업 비자'로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무대에 서지 못하고 술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필리핀 여성 B 씨 : 술에 취해 힘이 센 남자가 마음대로 몸을 만져요. 어떤 여자가 그걸 좋아하겠어요.]

업소에는 노래할 무대조차 없었습니다. 이들이 비자를 발급받을 당시 일할 업소를 검증하는 절차가 없었던 탓입니다.

[필리핀 여성 A 씨 : 밤무대 가수가 되는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술 팔고 접객원으로 일했어요.]

1960년대 생긴 외국인 공연 취업 비자는 1990년대 말 발급받기 수월해졌습니다.

당시 접객원이 줄게 된 기지촌 유흥업소들은 공연 인력으로 쓰겠다며 비자 발급 완화를 요청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했던 겁니다.

[기지촌 업주 :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없어요. 다 여기 필리핀, 필리핀. (파견)회사에서 연예인 비자로 E-6-2로 데려오죠.]

업소 검증과 관리가 허술하다 보니 술 접대를 넘어 성매매를 강요받거나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전수연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 : 2010년 12월까지는 (E-6-2 비자 발급할 때)에이즈 감염에 대한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어요. 여성이 한국에 들어와서 성산업에 유입이 될지를 국가가 과연 몰랐을까라는 거죠.]

유엔도 여러 차례 우리나라의 '준 연예인 비자' 제도가 일종의 인신매매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2년 전 비자발급 조건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업소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성매매로 단속되면 A 씨처럼 피해 사실이 드러나도 오히려 성매매 피의자로 간주돼 강제 추방됩니다.

이들이 강요나 협박으로 성매매에 내몰렸대도 현행법으로는 처벌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피해자로 보고 법률 지원과 함께 임시 체류 자격을 줘야 한다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 18·19대 국회에 6차례 발의됐지만 무관심 속에 모두 기한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영상취재 : 제 일, 영상편집 : 장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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