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친문재인), '실세'로 통하는 김태년 의원과 '원내대표 경선 삼수생' 노웅래 의원을 꺾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 의원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선봉에서 이끈 '강성 운동권' 출신의 3선 의원입니다.
이 원내대표는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초대 의장으로 활약하며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부의장 우상호 의원과 함께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시위를 앞장서서 이끌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올해로 정치 입문 20년째를 맞았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 때 서울 구로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범래 후보에게 패해 다른 운동권 동료들과 함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패배에 굴하지 않고 19대 총선에서 재도전, 국회에 재입성한 뒤 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고 김근태(GT)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최측근이기도 합니다.
'GT의 분신'이라 불렸고, 김 전 의장의 장례식에서는 맏상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학규·정동영·정세균 후보 등 '빅3'에 이어 4위를 하며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했습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한명숙·문성근·박영선·박지원 후보에 이어 5위로 최고위원에 당선, 지도부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시절인 2015년 전당대회에서 또다시 당권에 도전, 본선에 올라 당시 문재인·박지원 후보에 이어 3위로 레이스를 마쳤습니다.
이밖에 민주당 야권통합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2010년 당시 당 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8·25 전당대회에서 '혁신'을 부르짖으며 당권에 도전했지만, 예비경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컷오프'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다 체급을 낮춰 '변화'와 '통합'이라는 두 키워드를 앞세워 총선 승리의 야전사령관이 되겠다면서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승리를 맛봤습니다.
당내 지지 기반은 GT계가 주축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진보·개혁성향 의원들의 정치행동·정책의견 그룹인 더좋은미래다.
이번 선거에서 친문 사조직 '부엉이모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의 앞에는 일단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대치로 장외투쟁에 나선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해 꽉 막힌 정국을 돌파해 내야 한다는 첫 번째 과제가 놓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