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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당신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김지미 | 영화평론가

[인-잇] 당신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한 방송인의 마약 구매 사건이 보도되었다. 기사가 나온 뒤 추측이 난무했다. 기사가 나오기 몇 주 전, 토크쇼에서 한 하소연을 기반으로 아들 대신 희생했다는 설부터 당시 주목받던 권력형 비리에 물타기라는 음모론까지, 여러 가지 무죄 가설들이 등장했다. 마약중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급속한 체중 감량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물리적 관찰부터 피의자의 출신 지역인 유타주가 몰몬교의 성지이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문화종교적 분석까지. 실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여론의 다이내믹한 추이를 지켜보는 일이 더 흥미로웠다.

이 마약 사건에서 내 호기심을 확 낚아챈 것은 '몰몬교'의 성지라는 출신지역 논리였다. 몰몬교인들은 다른 기독교인보다 더 청교도적이라 술은 물론 담배 및 커피까지도 금한다고 한다. 사실 지역색은 비논리집단 '일베'들이 한국 사회에서 악을 규정할 때 가장 선호하는 논리다. 하지만 전라도에 대한 나의 지식에 비해 몰몬교의 성지 유타주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어 무시하기 어려웠다.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온 <세 아내와 사는 남자 (Three Wives One Husband)>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일부 몰몬교의 일부다처제에 관한 작품이다.

세 명의 아내와 사는 한 남자라면 의자왕처럼 쾌락의 권력을 행사할 것 같았지만 실체는 전혀 달랐다. 아내들 가운데 몇몇은 늘 화가 나 있었고, 남편은 늘 그 마음을 맞춰야 해서 전전긍긍했다. 남편이 가장 공을 들이는 지점은 공정함이었다. 하지만 부인들에게 그 공정함은 '특별하지 못함'으로 해석되어 서운함이 더 커졌다. 가장이 제왕처럼 새 아내를 선별할 줄 알았더니, 전체 가족회의를 통해 새로운 아내/엄마가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 '일부다처제'는 가장 효과적으로 인류의 확장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간 세계를 끌어안고 사는 신처럼, 가족의 확장을 통해 공평한 사랑을 실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 구성원들이 인간적 욕망에서 해방되지 못한 존재들이라 그 과정은 쾌락의 증진이라기보다 고난의 행군처럼 보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의 일천했던 지식은 확장되었다. 왜 보편적 사랑의 주체는 늘 남자인가에 대한 시원한 해답은 없었지만 그들의 가족 구조가 완전히 정신이상자들처럼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유타주에 몰몬식의 중혼을 처벌하는 법안이 입법될 위기를 맞이한다. 그때 나는 볼테르의 그 멋진 명언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하는 당신의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킬 것이다"를 마치 내 것인 양 읊조리고 있었다.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황당하리만치 인위적인 고통의 연장처럼 보였다. 미혼 친구들에게 유부남/녀와의 연애만큼은 늘 반대해왔다. 꼭 도덕성 때문은 아니었다. 나 말고 다른 대안이 있는 상대라면, 그 관계의 가치가 나만큼 절박하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이 늘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불안감은 결국 나를 파괴한다. 게다가 다른 이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는 대상(부인/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부남/녀)은 늘 실체보다 거대해 보인다. 평범한 중년 남녀가 마치 경쟁해서 얻어야 할 보물처럼 오해되는 상황은 너무 부당하다.

상대 배우자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이미 선택에 포함된 위험이기 때문에. 하지만 법적으로 처벌 받는 것은 부당하다. 개인의 감정을 법으로 단죄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게 몰몬교 결혼 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들이 택한 삶의 양식을 비난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도 법률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몰몬교과 유타주에 대한 지식수치를 1만큼 증가시켰지만 유명인의 결백에 대한 증거로 별다른 효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약물 반응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양성이었다. 다시 네티즌들은 이런저런 음모론과 함께 합리적인 증거들을 가져다주었다. 몰몬교의 강박적인 도덕성과 종교적 엄숙주의 때문에 유타주의 마약중독률이 타주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는 다시 마약의존율이 상당히 높은 것은 일부다처제의 희생자들인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유타주로부터 한국으로 이주한 지 수십 년이 된, 이제 한국인이 된 유명인이 벌인 일탈의 실체를 이해해 보려던 나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축적된 정보일 뿐인 지식은 인간이나 사건을 오해하는 데 더 쉽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만 일깨워주었다.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은 수많은 오해들을 정정해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다는 자만은 오해를 논리적 추론이라고 단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단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이 당연히 수학천재일 거라고 기대하고 다가오는 수많은 타인종의 부모들. 그들에게는 아시아인들에 대해 축적된 지식들, 혹은 편견의 다른 이름들이 있다. 먼지같이 가벼운 지식들은 서로를 얼마나 깊은 오해 골짜기로 이끌어 가는가? 그 오해를 애써 정정해 줄까 하다가 허구의 천재들을 둔 부모가 되는 것도 재밌어 부처 같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에는 낯선 이의 직관적인 이해가 주체에게 주는 공감과 위안을 다루는 장면들이 많다. 오랜 관계에 있는 이들보다 처음 마주한 이가 한눈에 주체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상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과연 있을까?

P.S. 글이 나온 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별칭 몰몬교) 분들이 해당 종교는 1890년 이후 일부다처를 시행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다처를 시행할 경우 파문 조치된다는 사실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역시 한눈에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것(Things You Can Tell Just By Looking At Her)>: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2000년 작. 홀리 헌터, 글렌 클로즈 같은 연기파 중견배우부터 그 당시 가장 '핫'했던 카메론 디아즈, 칼리스타 플록하트 등을 기용해 감춰왔던 자아를 발견해주는 타자의 시선에 설렘을 느끼는 여성들의 모습을 포착한 옴니버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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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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