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③ '불법촬영' 판결 방정식을 풀어라!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

판결문 432건을 통해 본 '불촬' 대한민국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5.06 09:04 수정 2019.05.07 12: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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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마부작침] ③ 불법촬영 판결 방정식을 풀어라!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
"인간의 영혼마저 빠르게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범죄"
"소위 '몰카'는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짓"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안심할 수 없고,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지난해 6월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 메시지' 중 일부다. 이보다 아홉 달 전엔 몰카 판매를 규제하고 불법촬영과 유통 처벌을 강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정부는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법촬영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2017년 한해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는 6,615건, 하루 18건 꼴이다. 지난 3월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던 유명 연예인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표현대로 "우리 사회는 아직 야만" 상태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불법촬영'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려 했다. 2018년 한해 서울 5개 지방법원의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432건을 수집해 상세히 분석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제도를 활용,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이 포함된 판결문을 찾은 뒤 불법촬영이 주된 범죄인 1심 판결문만 추려냈다. 성폭행이나 폭행, 절도 등 다른 강력범죄가 함께 적용된 사건은 불법촬영 범죄의 형량을 살펴보기에 적합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이를 통해 지난 1년 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은 적정했는지, 불법촬영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짚어보려 한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라던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처럼 "여기가 불법촬영의 왕국이야?"라는 탄식, 앞으로는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③ '불법촬영' 판결 방정식을 풀어라! 벌금 300만원? 집행유예 2년?
[마부작침]
● 가장 흔한 '불촬' 범죄: "지하철에서 여성 신체부위를 2~9회 촬영"

<마부작침>은 2018년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의 선고 형량이 적정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봤다. 그 중 첫 번째는 불법촬영 사건 432개 중 범행 횟수나 장소, 방식 등 최대한 유사한 사건을 모아본 뒤 그 사건들의 판결이 비슷하게 내려졌는지, 혹은 차이가 컸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여기 사건 23건, 판결문 23건이 있다. 공통점은 지하철 역사 혹은 전동차 안에서 연령이 확인되지 않은 여성의 다리 등 신체부위를 휴대전화로 2~9회 불법촬영했다는 것. 2018년 불법촬영 판결문 중 가장 흔한 유형의 사건이다. 선고된 형의 종류와 형량. 비슷했을까, 아니면 달랐을까.

23건 중 17건은 벌금형(150만 원~ 700만 원), 6건은 징역형 집행유예(징역 6월은 공통, 집행유예 기간은 1건만 1년, 나머지 5건은 2년) 선고를 받았다. 실형 선고는 없었다. (※ 판결 방정식 처음 보기에서 ①실형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답은 실제 판결과 거리가 멀다. ②집행유예를 택했더라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골랐다면 현실과는 달랐다.) 물론 동종 전과 유무나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죄질 등에 따라 판결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마부작침]

*전에도 불법촬영으로 적발됐다면…

피고인 A.
2018년 7월 2주 동안 휴대전화로 6회에 걸쳐 성명불상 여성의 신체부위를 불법촬영했다. A는 2015년에도 같은 범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번 적발 두 달 전엔 여성 대학원생 기숙사에 침입, 속옷을 발견하고 자위행위해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결과는 벌금 700만 원.

피고인 B.
2017년 9월 휴대전화로 전동차 안에 앉아 있는 성명불상 여성과, 계단을 올라가는 역시 성명불상 여성의 허벅지 부분을 2회 불법촬영했다. 같은 범죄로 인한 벌금형 전력이 있었다. 결과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피고인 C.
2018년 4월 29일~5월 1일 휴대전화로 5차례 성명불상 여성의 다리 부위를 불법촬영했다. 같은 범죄로 사흘 전인 4월 26일 약식기소된 상태였는데 범행을 이어갔다. 결과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처벌받은 전력이 없으면…

피고인 D.
2017년 10월, 성명불상 여성의 다리 등 뒷모습을 2차례 불법촬영해 기소됐는데 판사는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감안한다며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 E.
2018년 6월 휴대전화로 성명불상 여성의 치마 속 다리 부위 등을 9회 불법촬영했다. 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으나 초범이고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고 결과가 이러했다. 2018 불법촬영 사건 판결문 중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유사 사건을 골라봤는데도 결과는 꽤 달랐다. 한 마디로 예측하기 어려웠다. 판결이라는 게 워낙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라서였을까.

● 벌금형 중 최다 '300만 원', 집행유예 중 최다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 형량이 적정했는지 분석해보려는 두 번째 시도, 같은 금액의 벌금형·같은 형량의 집행유예가 나온 사건들을 비교해보는 방식이다. 벌금액수가 같고, 같은 징역형에 집행유예 기간까지 같다면 그 피고인들이 저지른 범행은 비슷한 수준 아닐까 하는 게 우리의 가설이었다. [마부작침]











*방정식의 답이 벌금 300만 원인 경우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판결에서 가장 비중이 큰 벌금형(46.8%, 202건). 그 벌금형에서 판사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벌금액수는 300만 원이었다.(27.7%, 56건) 벌금형 판결 4건 중 1건은 벌금 300만 원이었다.

먼저 범행 횟수. 벌금 300만 원 사건의 범행 횟수는 1회부터 54회까지 있었다. 평균 4.8회였다. (※벌금 300만 원 사건 중에는 범행 횟수 492회로 분류된 사건이 1건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피고인이 여성 피해자 1명만을 따라다니며 사진 촬영했기에 '성명불상' 피해자가 수십, 수백 명인 사건과는 다르게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이견이 나왔다. 그래서 이 사건과, 범행 횟수를 '수회'라고 표시해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려운 1건은 벌금형 사건의 평균을 따질 때 제외했다.)

다음은 동종 범행 전력. 같은 범죄로 적발된 전력이 있는 사건이 3건이었다. 과거 적발에선 모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범행 횟수 자체는 한 자리 수로 많지 않았다. 이들 범행 전력이 있던 피고인 3명은 벌금형 선고를 받고 한숨 돌렸겠지만 '초범'이면서 같은 한 자리 수 범행을 하고도 같은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던 44건의 피고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억울'해 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외에 '초범' 판결문 중에서 6건은 화장실에 침입해 용변 장면을 불법촬영했고, 2건은 탈의실 혹은 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다른 초범보다 죄질이 불량했으나 역시 벌금형에 벌금액수 차이도 없었다.

*방정식의 답이 집행유예 2년인 경우

<마부작침>이 분석한 2018년 불법촬영 판결에서 벌금형 다음으로 비중이 큰 집행유예(40.7%, 176건). 가장 많이 선고된 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37.5%, 66건)이다. 범행 횟수는 1회~171회, 평균 9.5회로 벌금형보다 많다.

범행 횟수 차이도 꽤 크지만, 여기에는 같은 범죄로 적발된 전력이 있는 사건이 18건 있었다. 약식기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범행을 재개한 사건, 선고유예와 벌금형을 2회 이상 받은 사건도 있었지만 그런 전력이 없는 48건과 마찬가지로 징역 6월에 2년 간 형 집행을 유예받았다. 초범인데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같은 결과를 받아든 피고인들이 역시 '억울'해 할 일일까.

헌법 103조는 법관의 양심과 독립에 관한 조항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양형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적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불법촬영 범죄의 양형, 적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나.

김영미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처음에 걸리면 기소유예, 또 걸리면 벌금이나 집행유예, 또 걸려도 한 번은 집행유예, 또 걸렸다 하면 그제서야 실형. 이런 식으로 법원이 선처해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가해자들이 '불법촬영해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재범의 경우 더 가중해서 양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유형의 범죄 '불법촬영'…양형기준 조속히 마련해야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유죄인 피고인이 받게 될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이 '양형'(量刑)이다.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은 '양형 기준'을 정한다. 판사는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 기준을 위반할 수 없기에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양형 기준은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성범죄의 경우 강간과 강제추행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으나 불법촬영 범죄는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다. <마부작침> 분석에서 확인된 것처럼 비슷한 정도의 범행이라도 때로는 너무 가벼운 처벌만 받는 등 양형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말 출범한 대법원 제7기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올해 안에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기로 한 건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기도 하다.

김현아 변호사는 재작년 발표한 논문에서 "피해자의 수가 많거나, 촬영기간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 있거나, 동종범죄전력이 있는 경우에는 상습성의 발현으로 보아 상응하는 양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카메라등이용촬영죄 처벌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2017)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간이나 강제추행 같은 경우도 양형기준이 생긴 뒤 법정형은 안 바뀌었는데도 형량이 상승했다. 불법촬영도 양형기준이 마련되면 지금보다 형량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조애리 디자이너·개발자 (dofl5576@gmail.com)
인턴: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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