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월 1천만 원 번다"? 청년 울리는 강남 부동산…노동청 조사

부동산은 계약으로 돈을 법니다. 매매든 전·월세든 계약 건수를 늘려야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포털이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경쟁의 구도는 더 명확해졌습니다. 어떻게든 먼저 부동산 사무실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부동산마다 갖고 있는 매물에 큰 차이가 없어서 일단 사무실에 앉히고 나면 계약을 성사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들이 몸집을 키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더 많은 매물을 확보하고 매도·매수인을 끌어들일 직원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 지나친 경쟁 탓에 허위매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매물로 사람을 유인해 비싼 매물을 권하는 식입니다. 직원을 뽑아 놓고 제대로 대우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일했던 사람들은 '노동 착취'라고 합니다. 이번에 취재한 서울 강남의 부동산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취재파일] '월 1천만 원 번다
● "월 1천만 원 번다"…부동산 채용 면접? 홍보?

"월 급여는 800만~1천만 원, 학력 고졸, 토익 없음, 자격증은 운전면허증 하나만." 직원이 170명 정도인 서울 강남의 한 기업형 부동산의 인터넷 홍보 영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중개 업무를 돕는 '중개보조원'으로 등록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직원은 수시로 뽑는데 채용 사이트에서는 "강남에 2천500개 부동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최대인 월 5천만 원 이상 광고비 지출을 한다"며 "회사에 들어오면 최소 월 200만 원, 많게는 1천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홍보합니다.

취재진이 채용 면접에 응시해 봤습니다. 1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했습니다. 면접은 3시간 넘게 이뤄졌는데 정작 부동산을 홍보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1차 면접 뒤 면접관은 지원자들을 모아 "매년 5천명 넘는 청년들이 지원한다"며 "전국에 이렇게 큰 부동산이 없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실제 이 회사는 2년 정도 만에 강남에만 3곳의 부동산을 차렸고 연내에 모두 10개의 부동산을 차릴 계획이라고 홍보했습니다. 회사 슬로건도 강조했습니다. '신입사원이 회사의 미래다.'

● 주 6일, 철저한 근태 관리…"차는 필수"

근무는 빡빡했습니다. 면접관은 "일요일을 뺀 주 6일제를 유지하는데 설, 추석,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한글날, 개천철 등 휴일도 출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데 "부동산 계약 업무의 특성상 손님이 원하면 새벽 1시에도 일을 해야 한다"며 "사실상 업무 시간이 24시간"이라고 했습니다. 3개월 일한 뒤에야 월 하루씩 휴가를 쓸 수 있고 "3번 지각하면 경위서까지 써야 한다"며 철저한 근태 관리를 강조했습니다.

임금은 기본급 유무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기본급 50만 원을 받으면 부동산 계약 건당 수수료의 30%를 가져가고, 안 받으면 수수료의 50%를 받는 식이었습니다. 면접관은 "팀장 정도 되면 한 달에 한 건만 계약해도 최소 월 400만 원을 벌 수 있다"면서 "대개는 기본급 없이 수수료 50%를 가져간다"며 은근슬쩍 기본급 없는 임금 방식을 권유했습니다. 기본급이 없으면 채용에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업체는 지원자들에게 차를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면접관은 "강남 일대를 돌아야 해서 차가 필수"라며 "저희는 그걸 일을 하려는 의지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취재파일] '월 1천만 원 번다
● "1천만 원은커녕 밥도 굶어요"…"외제차, 명품 자랑"

전직 직원들을 만나봤습니다. 먼저 업체 말대로 돈 버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한 전직 직원은 "다른 부동산은 물론 내부 직원끼리 경쟁도 심해 계약 하나 맺기가 쉽지 않다"면서 "유류비에 옷값 등 비용만 많이 나가 점심을 굶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했습니다.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정기보너스, 생활 안정 직원 대출 제도, 자기 개발비 등 복리후생도 "전혀 없다"며 "밥값도 따로 안 주는데 무슨 복지가 있냐"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도 물었습니다. 사실 별다른 회사 지원 없이 계약 건당 수수료를 받는 구조에 차까지 자기 돈으로 사야 하는 일을 왜 청년들이 의심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부동산 대표나 임원들이 돈을 잘 버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 게 그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외제차를 타거나 호텔 식사를 하는 모습, 명품 가방이나 신발 등을 계속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돈을 잘 못 벌어 힘들 때는 "처음에는 누구나 힘드니 조금만 참고 견디면 빛을 볼 수 있다"고 독려했다고도 했습니다.

● "국회가 인정한 부동산", 확인해 보니…

'국회가 인정한 부동산'이란 것도 업체를 믿는 데 한 몫 했다고 합니다. 업체는 지난 1월 한 인터넷 언론사가 주최한 상을 국회의원 6명과 함께 받았습니다. 부동산은 블로그에 국회 방문 모습과 시상식 사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네 부동산과 다른 큰 비전을 국회가 인정했다'고 합니다.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의심을 줄이는 가장 큰 무기로 '국회에서 받은 상'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상을 받은 건지 알아봤습니다. 상을 받고 축사를 한 의원은 "마침 국회 본관에 있어서 잠깐 들러 상을 받았다"며 "어떤 경위로 상을 받은 건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인터넷 언론사가 공동 주최했다고 소개한 의원실 관계자는 "인터뷰나 상을 주고 잡지 같은 것을 봐달라고 하는 회사"라며 "무작위로 상을 주고 남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당 인터넷 언론사도 "상금은 없고 대신 상 준 기업에 별도로 광고를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시인했습니다. 부동산 측 홍보대로 '국회가 인정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 "그만 두면 위약금 100만 원"…용역 계약이 문제

전직 직원들은 일을 쉽게 그만 두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위약금 약정'을 꼽습니다. 그만 두려고 하면 업체가 교육비 명목이라며 100만 원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일주일 남짓 일하고 퇴사한 공인중개사는 위약금 지급명령을 받고 현재 민사소송을 벌이는 중입니다. 전직 직원들은 "청년들은 소송이나 계약 등을 잘 모르니까 내용 증명 같은 것을 받으면 공포에 떨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업체는 "용역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위약금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본급이 없기 때문에 용역 계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용역 계약은 엄격한 근태관리나 겸업 금지 등을 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근로자에게 위약금을 약정하는 건 근로기준법상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업체는 직원들은 용역계약을 맺은 신분이라 근로자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취재파일] '월 1천만 원 번다
● "용역 계약 체결 안 돼"…"직원들은 근로자"

법률 전문가들의 말은 다릅니다. 업체 말대로 용역 계약을 맺을 수는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업무 내용을 업체가 지정하거나 구체적인 지시나 감독, 근태관리 등은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직 직원들은 "부동산이 하루에 매물을 올리는 양을 정해 시간마다 보고를 받고 출퇴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경고나 시말서를 쓰게 하는 등 근태 관리가 엄격했다"고 말합니다.

부동산이 위약금을 요구한 근거인 컴퓨터 등 비품과 등기열람비용, 부동산 앱 광고비 지원도 오히려 이들을 근로자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합니다. 용역 계약이라면 계약을 맺은 사람이 임무만 받고 이런 비용까지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 부동산은 소속 근로자에게 하듯 그런 비용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박도현 법무법인 울림 변호사는 "업체가 원래는 근로계약을 맺어 최저임금을 주고 퇴직금도 지급하는 등 근로자로서의 보호 의무를 해야 했지만 용역 계약을 맺어 이를 회피했다"고 말합니다.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이 안 되는 임금을 안 주거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것 모두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 그래도 기댈 건 '고용노동부'뿐

부동산 말대로 '신입사원은 회사의 미래'였습니다. 용역 계약이란 '마법'으로 부동산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기본급이 없기 때문에 채용에 부담 없이 직원을 마구 늘렸습니다. 게다가 용역 계약을 맺어 근로자로 인정받지도 않게끔 했기 때문에 최저임금 등 회사가 지켜줘야 할 법적 의무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둔 셈입니다. 민사소송 결과 위약금을 안 내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더라도 업체가 이런 영업을 계속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이럴 경우 청년들이 기댈 곳은 노동부밖에 없습니다. 위약금을 물게 된 전직 직원들의 진정으로 이제 곧 서울지방노동청의 조사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직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위반, 위약금 약정에 따른 제재 등이 모두 노동청 조사 결과에 달린 것입니다.

취재 과정 중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만약 이런 영업 방식에 문제가 없다면 서울 강남 부동산에는 보호받지 못하는 '청년 용역'들로 넘쳐날 거란 것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