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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금호아트홀 '라스트 콘서트'…기자도 울컥했다

광화문 금호아트홀 역사 속으로…신촌에서 새 시작

어떤 사건을 취재할 때, 기자는 일반적으로 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제 3자'이다. 하지만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기획공연을 취재한 날(4월 25일)은 '제 3자'의 입장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금호아트홀이 1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니, 나 역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진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금호아트홀이 개관할 때부터 때로는 취재기자로, 때로는 관객으로 이 곳을 종종 드나들었던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금호아트홀은 2000년 금호그룹의 옛 사옥 건물에 문을 연 390석 규모의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이다. 남다른 음악 사랑으로 예술 지원 사업에 앞장서 '한국의 메디치'라고 불렸던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문을 열었다. 1990년대 말부터 금호문화재단에서 시작했던 음악영재 지원 사업은 금호아트홀이 생긴 이후 더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금호아트홀은 말 그대로 '음악영재의 산실'이었다. 음악영재들에게 악기를 지원해주고, 연주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 수많은 음악가들이 어린 시절부터 금호아트홀 영재 콘서트 무대에서 성장했다. 20년간 이 곳을 거쳐간 음악영재가 천명을 넘는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손열음, 김태형, 바이올리니스트 고 권혁주, 첼리스트 고봉인 등이 대표적인 '금호 영재' 출신들이다. 또 영재콘서트 외에도 '영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로 고등학생 이상 연령대의 유망 연주자들을 소개해 왔다.

금호아트홀은 1년 내내 이어지는 다양한 기획공연들로 서울 도심권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라이징 스타 시리즈'를 통해 차세대 기대주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또 2012년부터 매년 상주음악가를 선정해 연간 음악가 1인의 음악세계를 집중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피아니스트 김다솔, 선우예권, 첼리스트 문태국,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조진주, 박혜윤이 상주음악가로 활동했고, 올해는 피아니스트 박종해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아름다운 목요일' '스페셜 콘서트' 시리즈 등을 통해 국내외 정상급 음악가들의 공연을 선보였다. '고음악' 거장 조르디 사발,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등이 금호아트홀 무대에 올랐던 해외 거장들이다. 다른 콘서트홀에 비해 저렴한 관람료로 최고의 연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금호아트홀 제공
금호아트홀은 또 '실내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초창기의 금호현악4중주단에 이어 금호 챔버뮤직 소사이어티,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등 실내악단을 창단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실내악 단체들의 기획공연을 열어왔다. 실내악 공연은 관객들에게도 독주나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차별되는 음악적 쾌감을 선사하며, 연주자들에게는 동료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장이 되었다. 금호아트홀 실내악 공연을 계기로 생겨난 실내악 단체들도 있을 정도로, 금호아트홀은 한국의 실내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금호아트홀이 문을 닫게 된 것은 공연장이 자리 잡은 건물 사용자가 바뀌면서 재계약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이 자리 잡은 건물은 공연장 개관 당시에는 금호그룹(2002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 사옥이었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인 2008년부터 대우건설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대우건설 인수 후 자금난에 시달렸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0년 대우건설을 재매각했다. 대우건설 사옥 건물은 2013년 도이치자산운용에 팔렸고, 이후에도 건물을 임대해 사옥으로 썼던 대우건설은 다음 달 사옥을 이전해 나갈 예정이다. 금호아트홀은 그동안 대우건설을 통한 '재임대' 형식으로 이 자리에서 계속 운영됐지만, 새로 이 건물을 임대해 들어올 로펌과는 재임대 계약을 맺지 못했다.

금호아트홀의 기획공연은 지난 2015년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연세대 백양누리에 지어 기증했던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어진다. 하지만 금호아트홀이 광화문에서 쌓아온 '역사'를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금호아트홀의 '이전'은 지난해 결정된 것이지만, 최근 주력기업인 아시아나 항공을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악화된 그룹의 경영 상황이 맞물려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메세나의 대표적 모범 사례가 모기업 자금난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금호문화재단은 재단의 재정은 모기업과는 별도이며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기획공연은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의 실내악 공연으로 '메모리스 인 광화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피아니스트 김다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이재형,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김민지가 리허설을 위해 일찍 도착했다. 모두 금호아트홀과 인연이 깊은 연주자들이다. 리허설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금호아트홀과 나'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취재파일] 금호아트홀 '라스트 콘서트'…기자도 울컥했다
피아니스트 김다솔은 2011년 라이징스타 시리즈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고 2013년 상주음악가로 활동한 이후 금호아트홀과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금호아트홀은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곳'이며 '늘 큰 의미가 있었던 장소'라며 이 공연장이 없어진다는 게 슬프고,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2006년 중학교 2학년 때 영재 콘서트로 데뷔했고, 영아티스트 콘서트, 라이징스타 시리즈 무대에도 섰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재형은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켜준 공연장'이라고 했다.

2001년 중학교 재학 중 금호아트홀 영재콘서트로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금호아트홀이자신이 가장 여러 번 공연했던 공연장이라며, '연주자의 도전 정신, 피와 땀이 배어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비올리스트 이한나는 2004년 금호아트홀 영아티스트로 데뷔했고, 2008년부터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에서 활동해왔다. 또 여기서 알게 된 음악가들과 '칼라치 콰르텟'이라는 실내악 단체를 결성해 금호아트홀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그는 금호아트홀이 '음악 활동의 뿌리'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비올리스트 이한나에게 '마지막 연주를 하면 어떤 느낌일 것 같으냐'고 질문했더니, 대답하다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 역시 울컥해져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잠시 후 눈물을 닦은 그가 맑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에서 마지막 연주라서 사실 슬픈데요, 그래도 마지막 연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기쁘고 영광이고, 오늘 연주는 지금까지 했던 많은 연주들과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인터뷰이로 나선 첼리스트 김민지는 금호아트홀을 '친정 같은 홀'이라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도 함께 했던 곳이며, 금호문화재단의 음악 사랑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광화문에 금호아트홀이 없다는 건 아무도 상상 못 할 것 같아요. 음악계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홀이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요. 모든 음악가들에게 항상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추억의 장소가 가슴 깊게 새겨지기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리허설 전반부를 촬영한 뒤 공연장 곳곳을 둘러보았다. 백스테이지 대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 걸린 공연 포스터들, 수많은 음악가들이 드나들어 닳아버린 대기실 앞 계단, 여기서 연주한 음악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아담한 방들, 로비에 자리한 고 박성용 회장의 흉상, 고 박성용 회장이 항상 앉았던 좌석에 붙은 명패……이 모든 것들이 나를 감상에 젖게 했다. 20년 가까이 알아왔던 금호문화재단 직원과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또다시 울컥해질 뻔했다. 그동안에도 마지막 공연을 앞둔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보다 길고 치열한 리허설인 것 같았다.

어느새 공연 시각이 다가왔다. 공연을 앞둔 금호아트홀 로비는 평소보다 북적거렸다. 금호아트홀을 거쳐간 연주자들의 사진 슬라이드 영상이 상영되고, 기념사진을 촬영해주는 이벤트도 진행되었다. 나도 공연장 로비에서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이런 거 잘 안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뭔가 기념할 만한 것을 남기고 싶었다. 인터뷰에 응한 관객들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금호아트홀 공연을 10년간 보러 다녔는데, 없어져서 너무 아쉽습니다. 연세로 옮겨도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후원을 많이 해서 클래식 음악계가 많이 성장했는데, 앞으로도 될 수 있는 대로 후원해 주시면 클래식 팬으로서 감사하겠습니다" (한지연 관객)

"저 금호아트홀 평생회원이에요. 금호아트홀은 바쁜 일정 중에도 매주 목요일 아름다운 밤을 선사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요.(아름다운 목요일 기획공연 시리즈) 마지막 공연이라니 너무 아쉽고, 신촌으로 가면 아무래도 이 곳 다니던 사람들은 예전만큼 가기는 힘들 것이고…"(임병해 관객)

"시간 날 때마다 금호아트홀 찾아서 음악 듣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힘들 때도 위로를 얻었어요. 사실 이 금호아트홀이 우리 젊은 음악가들의 산실 아니겠습니까. 많이 아쉽지만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어지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김동완 관객)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박종해 등 음악계 인사들도 관객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정경화는 '고 박성용 회장이 안 계셨다면 한국 클래식 음악이 이만큼 발전했겠느냐'며, 고인을 추억했다. 또 '금호아트홀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성장했고, 아름다운 공연들이 많이 열렸다'며, 금호아트홀 연세로 가서도 '음악은 계속, 꾸준히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금호문화재단이 힘들지만 계속해서 젊은 음악가들을 성장시켜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금호아트홀의 마지막 기획공연 프로그램은 브람스 피아노 4중주, 슈만 5중주였다. 최상의 호흡과 집중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킨 명 연주였다. 앙코르로 들려준 프랑크의 5중주 3악장 연주가 끝나자 따뜻한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관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눈시울이 붉어졌던 연주자들이 여러 번 커튼콜 끝에 미소 지으며 퇴장했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의 감동적인 '라스트 콘서트'였다. 연주자들의 땀과 눈물이 아로새겨져 있고,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들의 추억이 서린 곳, 모두의 '역사'를 담은 금호아트홀을 이렇게 함께 떠나보냈다. 
[취재파일] 금호아트홀 '라스트 콘서트'…기자도 울컥했다
금호아트홀의 기획공연은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계속 이어진다. 5월 2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 콘서트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책임진다. '라이징 스타'인 김봄소리 역시 금호 악기은행으로부터 악기를 지원받았던 연주자로 금호아트홀과 인연이 깊다.
[취재파일] 금호아트홀 '라스트 콘서트'…기자도 울컥했다
금호아트홀 연세는 광화문 금호아트홀처럼 390석 규모로 지어진 공연장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광화문보다는 떨어지는 게 단점이지만, 백스테이지 공간이 훨씬 넓고 최신식 시설을 자랑한다. 금호아트홀 연세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신촌에서 새로운 음악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없어지지만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또 새로운 역사가 쌓여가기를 바란다. 굿바이 광화문 헬로 신촌. 그래서 내가 쓴 방송뉴스 기사는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 첼리스트 김민지의 말로 마무리했다.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연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금호아트홀이 새로운 방향으로 힘차게 갈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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