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내 삶의 무대 공포증, 어떻게 극복할까? -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9.04.28 07: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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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87 : 내 삶의 무대 공포증, 어떻게 극복할까? -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나의 두 손으로
하늘을 만질 수 있다니
미처 생각지도 못했네.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의 시 中)

열심히 살고 있지만, 당장 내 삶의 이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노력이, 내 열정이, 어둠 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헛주먹질을 하거나 안갯속을 무작정 떠돌아다니는 짓 같은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힘이 빠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또는, 아마도 그런 고민들을 반복하다 놓아버린 꿈이 내게도 있었다, 는 것조차 잊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죠.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그런 방황이나 좌절, 고요한 절망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이 길의 다음 모퉁이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계속 걷고자 하는 '어른'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입니다.

"연주자들은 무대 공포증에 대해 압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죠? 이겨내려면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연주를 하도록 하면 됩니다. 이걸 없앨 수는 없어요. 자신이 하는 일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초인적인 무엇을 해야 해요. 음악가는 엄청나게 복잡한 음악작품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워서 연주해야 하죠. 배우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대본을 외워야 할 뿐 아니라 감정을 한껏 실어서 살려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도와줍니다. 그 책임감이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물론 그 때문에 긴장되겠죠.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정말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준비가 되었을까?
미천한 인간은 그래서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에게 마이클 래빈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손꼽히는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애석하게도 30대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이클 래빈의 반주자가 내 친구 미첼 앤드루스였어요. 마이클 래빈은 경력이 절정일 때 갑자기 무대에서 활을 떨어뜨리게 될 거라는 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그의 연주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참다못한 그는 악보 한 부분을 가리키며 반주자 미첼 앤드루스에게 말했습니다. '미첼, 이 화음 보이지? 자네가 이것을 연주하자마자 나는 활을 떨어뜨릴 거야. 그러니 각오하고 있어.' 공연 때 그는 그 화음에 이를 때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활을 놓쳤습니다. 활이 무대에 툭 떨어졌고, 청중은 깜짝 놀라서 얼어붙였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죠. 그는 허리를 숙여 활을 잡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봐. 나는 아직 건재해.

그러고는 처음부터 다시 곡을 연주했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시는 공포증이 일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에단에게 해주었습니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적이 있는 피아니스트는 아닙니다. 클리퍼드 커즌이나 나디아 블랑제 같은 '빅네임'들을 사사하고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일했지만 1970년대말에 은퇴를 했고, 그후 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름을 알 만한 음악가들은 정말 우리 시대 정상급 극소수죠. 시모어 번스타인은 그 한줌의 소수에 들지 않는,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과 인생과 영혼을 조화시키고 통합시키려고 '구도'해온, 길을 찾아온 진지한 음악가입니다. 그리고 80이 넘은 나이에 할리웃 배우 에단 호크를 어쩌다 알게 됩니다. 그의 삶과 음악에 감동을 받은 에단 호크가 시모어 번스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피아니스트 시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만들고, 이 다큐가 절찬을 받으면서 갑자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당신들이 내게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랬어요. 대체 왜 나 같은 사람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거지? 내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에단 같은 유명한 영화배우가 왜 감독을 맡고 싶어 하는 거지? 질의 응답 시간에 그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를 적어도 하나는 들었죠.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늘 삶이 내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모어를 통해 내가 연기하는 모든 것이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었죠.' 이것이 그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알아보려고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시모어는 어떻게 음악가의 측면과 개인의 측면을 통합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에단 호크와 공동의 친구인 종교학자이자 작가 앤드류 하비가 시모어 번스타인과 그의 자택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출판사 마음산책은 지금 '000의 말'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계속 해서 펴내고 있습니다. 헤밍웨이,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등등... 쟁쟁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시리즈에서, 시모어 번스타인은 아마도 그중에 가장 '무명'입니다. 그는 꼭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법한 개인적인 상처와 좌절, 삶이 비루해질 수 있는 순간들을 딛고 자신의 행복과 성취를 찾았습니다. (한국전쟁 참전도 그 경험 중 하납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히려 더, 세계 정상급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길과 영혼을 찾고자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하고 다정한 잠언들을 건네옵니다.

"번스타인 : 내가 가르치거나 작곡하거나 글을 쓰는 일에서 호평을 받아 성공하면, 비록 이 분야의 최고 이름들과 겨룰 수는 없더라도 내게는 여전히 엄청난 성과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하비 :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다는 유일한 것이에요.

번스타인 : 맞아요.

하비 : 다른 어떤 것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세계적 명성이 있거나 돈이 엄청나게 많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행복해지려면 쇼핑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세금을 내는 도중에라도 자신의 삶이 가장 깊은 진실, 가장 깊은 열정에 맞닿아 있으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번스타인 : 전적으로 동감해요. 나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얻어간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인 종교학자이자 작가 '앤드류 하비의 말'도 이 책을 펼쳐야 나타나는 '숨은 선물'입니다. 그는 시모어 번스타인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서 열렬히 배우고자 하는 친구로서 굉장히 솔직하게, 때로는 정열적으로 인터뷰를 이끌어갑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두 사람이 털어놓는 자신의 인생과 꿈, 지향점들이 어우러지면서 그야말로 대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인터뷰가 무르익어 간다는 느낌을 절로 받게 됩니다. 어느 틈엔가부터 끼어들어서 함께 대화하고 싶다는 기분을 안겨주는 인터뷰예요.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음악에 대한 시각, 삶과 예술,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눕니다. 시모어 번스타인이 이 인터뷰에서 털어놓는, 가혹하고 부당한 선생 때문에 음악학교에서 쫓겨난 에피소드는 영화 <위플래시>의 상황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시모어 번스타인은 영화 속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과 인생이 미처 펼쳐지기도 전에 부서질 수 있는 그 상황을 사람의 영혼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보여줍니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앤드류 하비두 사람이 자신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남긴 부모를 어떻게 극복하고, 용서하고, 또는 증오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스스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도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어느 페이지를 보든, 그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펼쳐놓는 말들에 '나의 일', '나의 인생', '나의 꿈'을 대입해 읽는다 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비 : 바흐를 제대로 연주하고 싶다면 누구의 연주를 들어야 할까요? 쇼팽을 연주할 생각이라면 누구를 들으라고 추천해 주시겠어요?

번스타인 : 내가 하는 대답을 좋아하지 않을걸요. 당신은 이런 작곡가들을 경험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그렇죠?

하비 : 그렇습니다.

번스타인 : 그러니까 당신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려는 것은 관심있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이해하려는 목적인 것이죠. 안 그런가요?

하비 : 바로 그겁니다.

번스타인 : 내 말 들어요, 앤드루. 음반은 듣지 말아요. 내가 하려는 말은 당신이 악보를 읽을 줄 안다고 가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초견 연주는 음악을 익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입니다. 먼저 이해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요. 음악에 마음을 활짝 열어요. 자신이 카메라의 필름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선입견도 갖지 마요.

......내 제자가 어떤 곡을 공부해야 하면, 유튜므로 스무 개의 연주를 듣고 이들이 모두 권위자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들은 것을 따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연습해서 내 앞에서 곡을 치면 나는 그들에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어떻게 했지? 악보에는 반대로 적혀 있는데.' '아, 그거요. 폴리니가 그렇게 치는 것을 들었어요.' 마치 폴리니가 모든 해석의 권위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죠. 이렇게 해서 대단히 왜곡된 관념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만의 결론을 얻어야 해요. 음악의 마술적 언어가 자신을 감동시켜서 눈물로 범벅이 되도록. 그러면 음악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결론을 끌어냈다면 이제 여러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멘토가 필요합니다. 좋은 멘토는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거나 당신 안에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도록 도와줄 겁니다. 최선을 다해 곡을 익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 그런 다음에는 다른 피아니스트가 곡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들어도 좋아요. 그게 순서입니다."

"우리는 연습한 대로 연주해요. 이런저런 이유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컴백해서 비참한 결과를 맞은, 나보다 훨씬 어린 음악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그런 결과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연습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더 준비해야 해요."


시모어 번스타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음악은 삶이고, 삶이 곧 음악이다. 예술가들은 어렵게 얻은 예술적 성취를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가진 재능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고 확신한다, 고요. 삶을 사는 것과 예술을 사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인생. 나의 일과 꿈을 나의 생과 분리하지 않는 인생. 그런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시모어 번스타인은 아흔의 나이에 이제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을 오늘, 느낍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난다고 혹은 특정한 뭔가를 탐구하려는 내밀한 욕망이 있다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재봉 기술, 정원 가꾸기, 혹은 요리가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재능이든 간에 우리가 가진 재능이 우리 존재의 핵심이라고 확신합니다."

* 출판사 '마음산책'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유튜브 'SBS뉴스' 계정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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