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중국은 왜 욱일기에 관대할까?

일본함정은 욱일기를 내린 적이 없다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4.28 14: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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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중국 산둥반도 칭다오항.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창설 70주년을 맞아 국제 해상열병식이 진행됐습니다. 안개가 자욱했던 그 날 칭다오 앞바다에선 중국의 최신예 해군 전력은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함정도 열병식에 참가했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스즈쓰키'호도 그중 하나였죠. 스즈쓰키호는 열병식 시작 이전부터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열병식 이틀 전에 칭다오항에 들어오면서 함미에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펄럭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때도 일본 해상자위대는 뉴스 메이커였습니다. 당시 주최 측인 우리 해군은 일본에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었죠. 그러자 해상자위대는 아예 관함식에 불참했습니다. 이랬던 일본 해상자위대가 욱일기를 달고 중국 칭다오항에 들어왔으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관심의 초점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제 침략의 과거가 있는 중국이 왜 일본 함정의 욱일기 게양을 특별히(?) 허용했는지로 모아졌습니다. 최근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통 큰 양보(?)를 한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기초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중국이 정말 일본 함정의 욱일기를 특별히 허용해 준 걸까요? '특별한 허용'이라는 건 과거 전례가 없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실제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중국 항구에 입항했던 사례는 이번 경우에 앞서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가 있었습니다. 언론들은 이 두 차례 모두 일본 함정이 욱일기를 내리고 중국항에 입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전제라면 이번 칭다오 입항은 중국이 특별히 욱일기 게양을 허용한 게 맞을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왜 그랬을까라는 분석 기사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2008년 잔장항에 입항한 일본 함정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먼저 2008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 '사자나미'호가 중국 광둥성 잔장항에 입항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대지진 구호물자를 싣고 5일간 잔장항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당시 일본 방송사가 촬영한 화면을 어렵게 구해 확인해보니, 사자나미호에 욱일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잡혀 있습니다.

두 번째인 2011년. 호위함 '키리사메'호가 이번과 같은 장소인 칭다오항에 5일간 머물렀습니다. 당시 영상은 찾기가 어려웠는데, 대신 키리사메호 입항 후 행사 사진을 찾아 확인해봤더니, 역시 함정 위에 펄럭이는 욱일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2008년에도, 2011년에도 욱일기를 단 채 중국항에 입항했단 얘기입니다. 따라서 욱일기를 내리고 입항했다는 보도는 최소한의 팩트 체크를 하지 않은 오보인 것입니다. 특별히 허용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너무 나가버린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과거에 욱일기를 내리고 입항했다는 보도는 홍콩 매체에서 제일 처음 봤다"고 전했습니다. 그 잘못된 기사를 중국 언론과 일본 언론을 거쳐서 한국 언론들까지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2011년 칭다오에 입항한 일본 함정일본 해상자위대 입장에선 자발적으로 욱일기를 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중국 정부가 욱일기 게양을 단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일제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에 이렇게 관대한 걸까요? 중국 국민들도 이렇게 관대한 정부 방침에 동의하는 걸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된 중국 사회 특성상 겉으로 많이 드러나진 않지만, 웨이보 등을 보면 욱일기를 질타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번 스즈쓰키호의 칭다오 입항 때도 욱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칭다오는 1914년 일본 군대가 칭다오시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며 점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역사적 상흔이 있는 칭다오에 일본 해상자위대 배가 욱일기를 앞세워 입항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런 여론을 알고 있지만, 욱일기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중국이 일본의 욱일기를 특별히 허용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는데도, 이를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대응입니다.

일각에선 중국의 이런 무대응 전략의 이유를 역사적인 배경에서 찾기도 합니다. 중국을 침략한 국가가 일본 제국주의만은 아닌데, 일본만 특별히 문제 삼을 수 있느냐? 혹은 중국은 승전국이고, 일본은 패전국이라는 주장인데, 모두 출처조차 확인할 수 없는 설에 불과한 얘기들입니다.
(왼쪽) 후시진 환구시보 총 편집장. (오른쪽) 후시진이 올린 공개글 캡쳐이런 상황에서 중국 사회의 한 유력 인사가 일본 욱일기를 문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공개글을 올렸습니다. 환구시보 총편집장인 후시진(胡錫進)이 그 장본인입니다.

후시진 총편집장은 "일본함이 욱일기를 게양하고 중국 항구에 들어오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중국은 이미 열강들의 침략을 받았던 모욕의 페이지를 넘겼고,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중국 앞에서 작은 국가가 됐다"고 했습니다. "일본도 이미 중국이 모든 면에서 넘어섰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성을 리셋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후시진은 지난해 제주 관함식도 언급했습니다. 우리 해군이 일본에 욱일기를 걸지 말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한국이 여전히 일본보다 약하기 때문이며, 중국이 이를 참고할 의미가 없다"고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상업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 총편집인의 '자뻑' 가득한 주장에 동조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질타하는 댓글도 많았습니다.

"악은 악이고, 까만색은 흰색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과거에 희생 당한 중국 국민들을 난감하게 하지 말라"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독일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나치 국기를 걸어도 되느냐"는 반문도 있고, "욱일기를 반대하는 것은 도량이 큰 지, 안 큰 지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시진의 망언에 가까운 발언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보다 중국 사회 주류의 과거사 인식의 속내를 엿본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와 똑같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상처를 갖고 있는데도, 중국은 이를 인식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것입니다. 일본 함정의 욱일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대응도 이런 기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