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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업은 국가에 의존한다는데 기다리자고만 할 텐가

실종된 외교와 통상

[취재파일] 기업은 국가에 의존한다는데 기다리자고만 할 텐가
"저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통상 부분은 전적으로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 22일 미국의 '이란산 원유 금수 유예 중단' 발표 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몇 달 전부터 우리와 협의하며 대비하라고 하긴 했었다"면서도 "자기들도 잘 모른다며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주진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따로 미국 조야의 정보를 취득할 로비 역량이 없어 정부만 바라보는 처지인데, 효용을 못 느꼈다는 거다. 결국 이 업체는 대체가 쉽지 않은 이란산 초경질유를 3월분까지만 계약하는 식으로 알아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해야 했다.

실제 외교·통상 당국의 대응은 참담한 수준이다. 미국이 한국 등 8개 국가에 허용했던 '한시적 이란산 원유 금수 유예'를 끝낼 거란 소식을 외신 보도를 통해서나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도 뒤 "아직 공식 통보나 발표가 없었고, 미국 측 입장을 확인 중"이라던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공식 발표 뒤에도 계속 "미국 결정의 뜻과 배경을 확인 중"이라고 할 뿐이었다. 외국 기자가 확인해 보도하는 내용을, 세금 써 워싱턴에 상주하는 수십 명 주재관 가운데 누구도 정확히 파악 못 했다는 얘기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 국무부 발표 두 시간 전 전화로 통보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고도 "(미국이) 사전에 알려준 거다" 포장한다. 부랴부랴 "미국 결정의 구체적 배경과 입장을 확인하고 협의하기 위해" 방미 대표단을 보내는 촌극엔 낯이 뜨거워진다. 동맹의 경제적 이해가 걸린 사안을 두 시간 전 전화로나 통보 받는 관계에서 뒤늦게 이뤄보겠다는 '협의'란 대체 무엇일까. 더구나 이번 발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도미해 직접 '금수 유예 연장'을 요청했다고 밝힌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안 지난 시점에 나왔다.

이 정부 외교·통상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산 등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근거가 될 지난 2월 '상무부 보고서' 내용 역시, 처음 알려진 건 외신을 통해서였다. 당시 산업부는 대책 회의를 열자고 자동차 업계를 불러 놓고는 "보고서 내용을 알아야 대응을 할 것 아니냐"며 "차분히 기다려보자"고 했다. "'기도 합시다'는 얘기와 다를 게 뭐냐"며 아연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보고서 내용을 파악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일련의 상황은 정말 우리가 외교와 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맞는지 묻게 된다. 우리 2위 교역국인 동맹의 정책 결정으로 입을 산업 피해가 뻔할 때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개방된 세계에서 경쟁한다는 민간 기업이 "국가에 의존했다"는 것도 내세울 일이 못 되지만, 그렇다고 정부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 국익을 지키는 게 정부 할 일이다. 이번에도 "차분히 기다려보자"고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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