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아니 되옵니다'가 트럼프 살렸다…뮬러 특검 보고서가 남긴 것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9.04.25 10:40 수정 2019.04.29 16: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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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 뮬러(뉴스브리핑 주요뉴스 DLP사용)● 트럼프 최우선 관심사 '뮬러 특검 수사 보고서'

'수사 기간 675일, 수사 비용 3천만 달러(347억원), 소환장 2천8백 건, 소환자 5백 명'

뮬러 특검 보고서와 관련해 인용되고 있는 기록적인 숫자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시작된 특검 수사는 미국 사회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 최우선 순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뮬러 수사 결과 보고서에 대통령에 대한 기소 의견이 나온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에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악관 전·현직 인사를 샅샅이 불러 오랫동안 조사한 결과였기 때문에, 미국 사회는 보고서가 나오는 이 순간을 숨죽이며 지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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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무부가 그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예상대로 엄청나게 양이 많았습니다. 아주 예민한 내용 10% 정도만 가리고는 전체 수사 보고서 448페이지를 공개했는데, 출력해놓고 보면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1,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러시아 내통 혐의, 2부는 사법 방해 혐의를 수사한 결과로 구성돼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서 보고서를 보면서도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도 하는데, 친절하게도 부록 편을 따로 만들어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정리해놨습니다. 양은 많지만 수사 내용이 워낙 생생해서 책으로 만들어도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부 출판사들이 발 빠르게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 북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는데,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를 휩쓸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처음엔 좋아했지만…'Crazy 뮬러 리포트'라며 돌변한 트럼프

보고서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뮬러 특검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말, 법무부에서 4쪽짜리 요약 보고서를 냈을 때부터 '완벽하게 면죄부를 받았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취임 초기부터 내내 발목을 잡았던 러시아 내통 혐의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불법 행동으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불법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실행되지 않아서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고서 전문이 공개된 뒤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Crazy 뮬러 리포트'라고 비난하며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아주 난처하고 당혹스러운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를 막으려 부당한 지시를 지속적으로 했고, 이를 은폐하려고 또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주 꼼꼼하게 기재돼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보고서를 백악관의 불신과 거짓, 두려움이 반영된 생생한 초상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백악관의 혼란상을 그린 책들이 몇권 나오기는 했지만, 특검의 수사로 이렇게 적나라한 내용이 확인된 건 처음이라 더 흥미롭습니다.

● 애매한 결론…정치 공방 부른 뮬러 리포트

러시아 내통 혐의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여러 가지 부적절해 보이는 장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특검이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사법 방해 혐의에 관한 부분입니다. 보고서에 뮬러 특검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방해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렇게 발표했겠지만, 조사된 팩트와 적용 가능한 법률에 비춰볼 때 우리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죄가 되기는 되는데, 기소 의견을 내기는 자신 없다는 듯한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결백이 입증됐다고 말하는 것이고, 반대 진영은 특검이 죄가 된다고 했다고 서로 맞서는 겁니다.
뮬러 보고서 8뉴스● 거짓말과 회유…10가지 생생한 사법 방해 혐의

뮬러 특검 보고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방해를 시도한 10가지 사례가 나와 있습니다. 2017년 뮬러 특검이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f자로 시작하는 욕을 써가며 '대통령직이 끝났다' '망했다'고 말했다고 보고서에 나옵니다. 수사 보고서는 이게 특정인의 일방적인 진술이 아니라는 걸 표기해놨습니다.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메모 증거를 일련번호를 기재해 보고서에 꼼꼼하게 첨부해놨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격한 표현은 뮬러 특검 같은 저승사자가 들어왔으니 이제 끝났다고 말했던 건 아닙니다. 특검을 수용하면 몇 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직을 망치게 된다고 불평했다는 취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맥갠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을 시켜 뮬러 특검 해임을 공개적으로 말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뮬러 특검이 특검 임명 전에 FBI 국장 지원자로 인터뷰를 했다, 트럼프와 특수관계에 있던 로펌에서 일을 했다, 트럼프 골프 클럽에서 멤버십 비용과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서 이해충돌을 근거로 특검 임명 불가론을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주장이 다 근거가 없었고, 트럼프와 가까운 참모들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맥갠 고문은 덫에 걸렸다고 느꼈지만, 사표를 낼 각오를 하고 이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언론에 뮬러 해임 시도와 관련한 기사가 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맥갠은 이를 또다시 거부했습니다.
로버트 뮬러또 눈길이 가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뮬러 특검 임명을 못 막았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세션 전 법무부 장관은 사표를 실제 냈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세션 전 장관을 다시 설득해 떠나지 못하게 했지만, 사표는 호주머니에 넣고는 한동안 돌려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사표를 쥐고 있는 대통령이 법무장관의 약점을 쥐고 있는 셈이어서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배넌 수석전략가는 이를 어떻게 돌려줄까 고민했다는 내용까지 나옵니다. 특검 보고서에 표현된 장면이 생생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장관을 시켜서 특검 수사를 공격하게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전 선거 매니저 르완도스키에게 부탁해 세션 장관으로 하여금 이번 수사가 대통령에게 매우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아 했던 르완도스키는 이를 질질 끌었고, 한 달 뒤에야 대통령이 어떻게 됐냐고 확인하자, 백악관 다른 참모인 릭 디어본에게 하라고 이를 떠밀었습니다. 이를 찜찜하게 생각했던 디어본도 결국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코미 전 FBI 국장에게도 수사 외압을 행사한 장면이 나옵니다. 마이클 플린 전 외교안보보좌관은 러시아와 대사와 접촉한 걸 거짓말하면서 해임됐는데, FBI가 이를 수사하자 코미 국장을 불러 '플린 보좌관을 해임했으니, 이제 좀 봐주라'고 했던 겁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코미 국장은 이를 똑똑히 기억한다고 증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린 밑에서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했던 맥팔랜드에게 러시아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했다는 걸 부인하라는 이메일을 쓰라고 했는데, 맥팔랜드는 자신은 이를 정확히 모른다며 거부해버렸습니다. 이 일로 싱가포르 대사로 내정됐던 맥팔랜드는 결국 물러났습니다.

● '아니 되옵니다'의 역설…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기소 막아

역설적이게도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많은 참모들 덕분에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 기소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시켰다는 이유로 참모들이 부당한 지시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면 특검 보고서에 기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말 안 듣는 '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결국은 대통령을 지켰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하지 않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표는 기본이고, 나가서도 불이익을 당할 걸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수사에 협조했던 전현직 백악관 관리들에 대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도 등장합니다. 사라 샌더스 대변인입니다. 물론 대변인이 수사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동원해 대통령을 두둔했던 게 드러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FBI 국장을 해임한 직후 샌더스 대변인은 "수없이 많은 FBI 요원들에게 들었다"며 "내부 직원들이 코미 국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브리핑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특검 사무실에 나가서는 이 내용이 사실 근거가 없고, 자신이 말실수한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거짓말을 일삼는 백악관 대변인에게 신뢰가 남아 있냐며,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뻔한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큰 후폭풍이 일어났을 겁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민주당 소속)● 탄핵 놓고 의견 엇갈리는 민주당…뮬러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뮬러 특검 보고서에 상당한 기대를 했습니다. FBI 국장을 10년 넘게 했던 뮬러가 특검이 됐을 때 민주당은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적인 법 위반을 잡아내 기소 의견을 내면 탄핵 추진의 강력한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하원의 과반, 상원의 2/3가 필요합니다. 하원이야 민주당이 과반이어서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원에 공화당의 반란표 없이는 애초 탄핵은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의 불법행위에 분노한 공화당 의원들의 동참 없이는 탄핵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뮬러 특검이 대통령의 불법 행위를 명확히 확인해줬다면 모를까 이런 상태로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 문제입니다. 뮬러 특검은 결국 민주당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었던 겁니다.

물론 민주당 강경파들은 닉슨 대통령이 하야했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나쁘다며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발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련한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일단 탄핵안이 발의돼 본격 논의가 시작되면 트럼프 지지층이 집결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모든 논의가 탄핵으로만 쏠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찬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유력한 민주당 후보인 버니 샌더스도 "일반 국민들이 관심 두는 주제로 얘기하자"며 탄핵 추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 기사회생 트럼프…정치적인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본인이 저지른 범죄가 없어 탄핵할 수 없다고 올렸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원들이라며 탄핵 논의는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트위터를 하루 사이 50개 정도 쓸 정도로 본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 자신을 공격했던 언론에 대한 비난과 공격입니다. 처음부터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주류 언론과 민주당에 대한 증오는 상상 이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 뉴스를 제외하고) 주류 언론에 대해 퍼붓는 독설은 한국 어떤 막말 정치인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뮬러 특검은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서 기소 판단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인 논쟁으로 결론을 미뤄놨습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특검의 기소 의견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뮬러 특검 보고서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