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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쳐 중용된 91세 '북한 외교 얼굴' 김영남…무대를 떠나다

3대에 걸쳐 중용된 91세 '북한 외교 얼굴' 김영남…무대를 떠나다
▲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내무부 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외교무대에서 북한의 '얼굴' 역할을 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기 김정은 권력 출범과 함께 60년 넘게 이어온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올해 91세로 고령이라는 점이 고려된 조치로 보이는데, 북한은 지난달 실시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줘 노정객의 은퇴에 예우를 갖췄다.

그는 1998년 김정일 정권의 공식 출범 이후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 직전까지 21년간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지켰다.

특히 김정일 정권에서는 대외활동을 기피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신해 사실상 정상외교를 도맡으면서 북한의 대표로 국제사회에 얼굴을 알렸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도 그는 평양주재 각국 대사들의 신임장을 접수하고 외국 정상과 축전을 교환하는가 하면 방북한 정상급 인사를 영접하는 등 정상외교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그는 작년 한 해에만 무려 100여 차례의 공식활동에 나서는 등 90대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북한에 긍정적인 대외환경을 마련하고 김정은 정권의 대외정책을 전면에서 집행하며 외교 업적을 쌓았다.

한반도 긴장 국면이 고조되던 작년 2월 고령에도 불구하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함께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하는 등 남북관계의 해빙 물꼬를 트는 데 기여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제일 왼쪽)이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과 함께 북한 예술단이 남쪽의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보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세 차례나 눈물을 흘리며 일제 통치와 해방,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 역사를 지켜봐 온 노정객의 감회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은 노동당 국제부와 외교부(현 외무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며 김일성 집권 시기부터 모든 외교 요직을 거친, 북한 외교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관답게 러시아어에 능하고 영어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구사하며 실무능력과 외교적 감각도 두루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이후 김일성종합대학 재직 중 구소련의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후 간부 양성 및 재교육기관인 중앙당학교(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를 거쳐 1950년대 중반 노동당 국제부에서 본격적인 당 및 외교 관료로 정치에 입문했다.

1960년대 차관급인 당 국제부 부부장,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외무성 부상 등을 거쳐 1970년대 초반 당 국제부장, 대외문화연락위원장으로 승진했다.

1975∼83년 당 국제비서(현 국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1983∼98년 정무원(현 내각) 부총리 겸 외교부장(현 외무상)으로 활동하며 김일성 체제의 전 기간 외교수장으로 활약했다.

또 1974년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른 이후 1978년 정치국 위원, 2010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특히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권력 체제의 변화 속에서도 고위간부라면 누구라도 한 번씩 경험하는 그 흔한 좌천과 '혁명화'를 단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인물로도 꼽힌다.

이념에 충실한 우직한 원칙주의자로 정치적 기류변화에도 민감해 일찍이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와중에 김일성의 권좌를 위협하던 '연안파' 비판에 앞장섰으며, 1967년 5월 당시 중앙당 국제부장이던 박용국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 '갑산파' 숙청에도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1970년대 중반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불거진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부주석이던 김동규의 숙청사건 때도 한몫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김 전 상임위원장에 대해 "고위간부 중에서 유일하게 혁명화 한번 안 간 사람", "단 한치의 업무상 과오는 물론 사생활마저 깨끗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그만큼 고지식하고 한치의 탈선 없이 오직 최고지도자의 지시대로, 원칙대로만 살아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의 동생인 사망한 김두남 대장 역시 김일성 주석의 무관을 지내며 북한에서는 드물게 형제가 모두 고위직에 오른 집안이다.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뒀으며 이들은 평양외국어대학과 국제관계대학, 외국 유학 등을 거쳐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외무성 등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영남과 함께 94세의 양형섭 부위원장도 태형철에게 자리를 내주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또 원로들에게 예우 차원에서 줘온 명예 부위원장직도 없앴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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