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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산가 前 의원도 '평생, 매달 120만 원'…여전한 특권 의식

[취재파일] 자산가 前 의원도 '평생, 매달 120만 원'…여전한 특권 의식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힘들 만큼 곤궁한 저소득층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가 70만 원, 중증 장애로 경제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주는 장애 연금이 최대 38만 원입니다. 취약 계층에게 이 정도 돈이 지원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복지 사회에 대한 공론화, 관련 법안의 입법 과정을 거치며 더디게 사회적 합의를 모아 왔습니다. 당연히 지원해야 할 돈처럼 보여도 국민의 주머니, 혈세로 나가는 돈인 만큼 다양한 찬반 논의와 진통 끝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전직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65세만 넘으면, 상당한 재산이 있어도, 매달 120만 원을 국가로부터 받아 갑니다. 그 인원이 올해만 380여 명에 달합니다. 놀라운 건 국회의원에게 노후 연금처럼 주어지는 이 돈에 대한 국민적 합의 과정은 거의 생략돼 있었다는 겁니다.

● 헌정회 육성법에 은근슬쩍 끼워 넣은 '의원 연금 조항'

전직 국회의원에게 주는 소위 '의원 연금'의 법적 근거는 1991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명시한 법입니다. 이렇게 받는 보조금 범위 안에서 헌정회는 소속 회원들(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게 1988년부터 품위유지 비용 명목으로 매달 수십만 원씩 지급해 왔습니다. 정말 보조금이 필요한 단체인지는 논외로 하고, 집행 받는 보조금 안에서 돈을 지급하는 셈이니 이때까진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2010년 이 법에 슬그머니 새로운 조항이 하나 생깁니다.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제2조의 2 (연로회원지원금): 헌정회는 연로회원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지급 대상과 지급 금액 등은 헌정회 정관으로 정한다. 의원 연금을 아예 법으로 명문화 시킨 겁니다. 이렇다 할 자체 사업 없이 보조금을 70억 넘게 받다 보니 예산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 나왔고, 이를 막기 위해 연로회원지원금 지급 조항을 법에 넣어 버린 겁니다.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을 직함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65세 이후부터 법적으로 다달이 120만 원씩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헌정회 / 의원 연금
● 신설된 헌정회 육성법 제2조의 2, 보조금 못 깎는 근거로 활용

이 조항이 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 만큼 헌정회가 넉넉한 보조금을 확보하는 데 있어 어떻게 효력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016년 7월 국회운영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한 공식 수석전문위원: "지난 2년간 헌정회에 불용액이 10억 원 넘게 발생했어요. 불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조금 지급 규모를 줄여 예산에 반영해야 합니다"

국회사무처 사무차장: "헌정회 육성법에 따라 연로회원지원금을 지급할 법률상 의무가 있습니다. 법적 의무기 때문에 수급 대상에게 돈을 못 주는 상황이 생기면 안 됩니다. 보조금을 여유 있게 보수적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개정안을 여야는 한마음 한뜻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상임위와 법사위, 본회의를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단 이틀. 법안 통과 뒤에야 알게 된 민심은 들끓었습니다. 성난 여론이 심상치 않자 19대 국회는 부랴부랴 새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을 통과시킵니다. 문제의 조항에는 연금 수급 대상을 19대 이전 국회의원으로 한정했습니다. 재산과 소득수준의 상한 기준도 두도록 했습니다.

● 납득 어려운 수급 기준…자산 18억 5천 미만이면 연금 받아야

납득하기 어려운 건, 바로 이때 설정된 수급 기준입니다. 당시 국회는 이 기준을 법이 아니라 헌정회 정관에 두도록 했습니다. 즉, 헌정회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재산과 소득 수준까지 월 120만 원을 줄지 정할 수 있게 한 겁니다. 헌정회가 정관으로 정한 수급 기준은 본인과 배우자의 순 자산 합산 18억 5천만 원, 가구 소득 585만 원 이하입니다. 이를 밑도는 재산을 가진 전직 국회의원은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본 거죠.
헌정회 / 의원 연금
최근 헌정회가 이 정관마저 개정해 수급 대상을 슬쩍 늘리려다 들통났습니다. 2013년도부터 수급 재산액 기준은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 합산 18억 5천만 원으로 고정되어 있던 상황. 최근 공시지가가 빠르게 상승해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회원들이 안타깝게(?)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일이 생기자, 정관에 공시지가 상승률을 반영해 자산 상한선을 설정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겁니다.

보유한 자산이 모두 부동산이라고 가정하면, 수급 대상이 되는 부동산 자산의 기준이 20억 1천 6백만 원까지 오르는 겁니다. 올해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상승률 9%를 적용했을 때 그렇습니다.

● 수급 기준 '셀프' 결정하는 헌정회 정관

헌정회 총회를 통과한 정관 개정안은 국회의장 재가를 받으면 곧바로 효력을 발휘합니다. 수급 대상과 수급 기준을 늘리려면 정치적 공방을 뚫고 여론을 모아,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지리하면서도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다른 공공부조금과 달리 매우 손쉽고 간편한 절차인 셈입니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헌정회는 수급기준을 정하는 정관과, 수급 금액을 정하는 내규를 그동안 대외에 비공개로 부쳐왔습니다.
헌정회, '국회의원 연금' 축소 완화
● 끈끈한 선후배 간 情 속에 지속되는 '의원 연금'

누가 봐도 이상한 이 국회의원 연금이 지속돼 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야를 막론한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입니다.

(2014년 11월 국회운영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
안규백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 헌정회 사무실에 어르신들 러닝머신이나 자전거 같은 것… 예산으로, 얼마 안 하는데 그분들 마음을 위로해주시지요.

(2015년 10월 국회운영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
이춘석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 필요성이 없다고 대폭 삭감했다가 수요가 늘어나서 늘리면 여론의 비판이 클 겁니다. 헌정회에 자금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지원금은 조금씩 줄여나가는 게…

(2015년 11월 예산결산특별소위)
서상기 위원(새누리당): 한꺼번에 이렇게 삭감해버리면 정말 선배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4월 국회 '탄력근로·최저임금·추경' 곳곳 지뢰밭
오랜 기간 사건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길 위에 서서 "나를, 우리를 좀 보아 달라"는 외침을 자주 듣게 됩니다. 특수학교 증설, 주거 빈곤 문제 개선, 장애인 활동 보조 시간 확대… 구호는 제각기 달라도 그 속에는 "우리의 기본권을 보장 해달라",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우리를 배제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가 공통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세금으로 처우를 개선하고 기본권을 보장받으려는 무겁고 치열한 투쟁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의원 연금 비판 기사에 대한 국회 측 반응은 너무 가볍습니다. 국회는 이렇게 해명합니다. "어렵게 사는 전직 국회의원이 생각보다 많다." 다달이 한 사람당 120만 원, 매년 70억 가까운 돈을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사유치곤 너무 간편합니다. 18억 5천만 원 자산을 못 가진 전직 국회의원에게, 우리 사회가 마련한 공공부조와 국민연금 외에 품위유지 비용까지 얹어 줘야 된다는 발상이, 아직 '특권 의식'을 한 줌도 내려놓지 못했다는 반증 아닐까요.

▶ 돈 한 푼 안 냈는데…자산가 前 의원도 '평생, 매달, 12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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