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인 줄 알았는데"…안중근 의사 '옥중가'에 숨겨진 이야기

장아람 PD, 심우섭 기자 shimmy@sbs.co.kr

작성 2019.04.11 18: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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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기자들이 뉴스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시청자들께 직접 풀어 드리는 '더 저널리스트(THE JOURNALIST)'! 이번 순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안중근 의사의 '옥중가' 취재기입니다. 정책문화팀의 김수현 기자가 옥중가에 담긴 이야기와 100여 년 만에 다시 불린 옥중가를 듣고 느낀 감동을 직접 전해드립니다.

1909년 10월 26일에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투옥됐습니다. 그리고 옥중가는 안 의사가 감옥 안에서 지어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는 이미 일본의 주권 침탈이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 의사의 거사가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당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거사를 성공시킨 안 의사도 옥중에서는 조금이나마 후련했겠지만, 조국이 아직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심정이 교차했을 겁니다. 옥중가에도 안 의사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 심경에 슬피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의 소식을 네가 아느냐
(중략) 때려라 부셔라 왜놈들 죽여라...
- 안중근 의사의 옥중가 中


◆ 김수현 기자 / 정책문화팀
(더저널/작성중) '슬픈 노래인 줄 알았는데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안 의사는 30대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30대를 오래전에 지나왔는데 제가 그 상황이었다고 상상해보니, 안 의사처럼 할 수 있을까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 사실 안 의사도 인간이니까, 감옥에 갇혀있는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가족도 그리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슬픈 감정뿐만 아니라, 항일 투쟁 의지도 옥중가에 담았습니다. 절망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노래를 부르며 울분을 달랬고, 독립을 위해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죠. 이런 안 의사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취재 중에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뭉클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노래에 굉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럿이 함께 부르다 보면 그 노래에 담긴 메시지가 체화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안 의사가 옥중에서 부른 노래를 취재해 소개해드렸지만, 유관순 열사와 동지들이 부른 옥중가도 있습니다. 이런 노래들이 악보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후손들이 듣고 부를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취재: 김수현 / 기획 : 심우섭, 김도균 / 구성 : 장아람 / 촬영 : 이용한 / 편집 : 이홍명, 이은경, 문지환 / 그래픽 : 이동근, 감호정 / 사운드 디렉팅 : 유규연 / 내레이션 : 김주우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