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년 만의 방송' 정태춘, 그의 40년 노래 인생

SBS 뉴스

작성 2019.04.08 17:09 수정 2019.04.08 20:3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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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정태춘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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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이분을 어떻게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 그러나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시청자 여러분 다 잘 알고 계십니다. 한때 여러분의 마음을 울렸던, 심금을 울렸던 그런 노래를 많이 부르셨다가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드신 다음부터는 거리에서, 이분은 텔레비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거리에서 노래를 하셨습니다. 그 노래가 곧 우리 사회에 던지는 노래이기도 했죠. 정태춘 씨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정태춘/가수: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가 데뷔 40주년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그러면 1979년에 데뷔하신 겁니까?

▶ 정태춘/가수: 78년에 데뷔를 했는데요. 박은옥 씨하고 같이 이렇게 햇수로 따지자면 지금 40주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죠.

▷ 주영진/앵커: 박은옥 씨가 데뷔한 게 그러면 79년.

▶ 정태춘/가수: 네. 저도 또 본격적인 활동을 79년에 했고요.

▷ 주영진/앵커: 79년에. 그 당시에는 텔레비전 통해서 하셨죠?

▶ 정태춘/가수: 좀 나왔죠.

▷ 주영진/앵커: 제가 어린 시절에 흑백 텔레비전에서 두 분 나오셨던 그 어떤 TBC인가요? 어디 그 쇼를 기억을 합니다, 그 순간이. 큰 안경을 쓰고 나오셨고 아주 순박하게 양복은 입으셨는데 영 어색해하시는 몸짓으로 그러나 노래는 눈을 감고 열심히 부르셨던 그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정태춘, 박은옥. 사실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정태춘, 박은옥이라고 하는 그 이름을 하나로 생각하시기도 하고 또 많은 분들은 정태춘, 박은옥. 따로 떼어서 나는 이분 노래가 좋아 이런 분도 있는데 선생님에게 정태춘, 박은옥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 정태춘/가수: 저도 노래를 좀 다양한 정서로 했었는데 이를테면 서정적인 데서부터 격정적인 데까지. 그런데 거기에 한 벽을 더 얹어준 그런 가수죠, 박은옥 씨는요. 그래서 우리의 노래가 조금 더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죠.

▷ 주영진/앵커: 박은옥 씨의 윙윙윙이 아마 데뷔곡 아닙니까?

▶ 정태춘/가수: 네, 그랬죠.

▷ 주영진/앵커: 그 목소리 들었을 때 사람들이 예전에 이미자 선생님 참 목소리 곱다 그랬는데 박은옥 씨 딱 나온 다음부터는 어, 이 가수 누구지 했던 기억이 나요, 저희 형님들이나 부모님들께서. 그 노래에 그 목소리에 반하셨던 겁니까?

▶ 정태춘/가수: 그런데 사실은 그런 노래 말고 조금 스타일이 다른 팝, 팝송들을 불렀을 때 사실은 제가 조금 깜짝 놀랐었죠.

▷ 주영진/앵커: 오히려. 텔레비전이나 이런 데서 잘 보여주시지 않았던 그런 모습들. 사실 많은 분들은 윙윙윙, 봉숭아 이렇게 좀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은옥 씨 목소리를?

▶ 정태춘/가수: 회상하고.

▷ 주영진/앵커: 회상하고요. 회상하고 또 얼마 전에 불후의 명곡 또 어제는 KBS 열린음악회 나오신 것도 제가 조금 봤습니다. 오랜만에 공연이고 노래를 텔레비전 통해서 하신 거죠?

▶ 정태춘/가수: 그렇죠. 20년 넘게 만에 방송국에 가봤습니다.

▷ 주영진/앵커: 20년 동안은 그러면 거리에서만 노래를 하신 겁니까, 소극장에서만 하신 겁니까?

▶ 정태춘/가수: 일반 초청 공연들은 좀 다녔고요. 그사이에 콘서트를 몇 번씩, 조금씩 하기는 했었는데 방송에 출연해가면서 행보를 한 적은 없었고요. 또 방송에 나가서 또 시청자들을 위해서 노래를 한 일은 없었죠.

▷ 주영진/앵커: 최근에 한 10년 정도는 작품 활동 특별히 안 하시고 사진작가, 시인이 되셨다 이런 얘기도 제가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

▶ 정태춘/가수: 노래를 적었고요. 그리고 시를 써서 시집을 냈었고 그다음에 사진을 좀 찍어서 사진전을 했었고. 그러다가 가죽공예도 좀 몇 년 매달렸었고.

▷ 주영진/앵커: 가죽공예도요.

▶ 정태춘/가수: 그러니까 창작을 안 하니까 노래 창작을 안 하니까 뭔가를 자꾸 만들어내고는 싶은데 또는 이야기를 계속하고는 싶은데 다른 방식들로 이제 가게 되는 거죠. 그랬는데 아무튼 한 10여 년 전부터는 붓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아, 이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도구 또는 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만났다. 그래서 거기에만 빠져서 지냈습니다.

▷ 주영진/앵커: 노래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 정태춘/가수: 많이 했죠. 많이 했으면서도 할 이야기는 계속 이제 나오니까 내 삶에 관해서 또는 이웃에 관해서 또는 세상에 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은데 그걸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하고 소통할까 그랬을 때 이제 노래가 조금 부적합하다고 봤죠. 노래는 시장에서 시장성으로 이렇게 유통이 되고 또 소통 뭐 이렇게 공유가 되고 하는데 그런 시장성까지 담보해가면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좀 무리였죠. 그래서 한번 접었고요.

▷ 주영진/앵커: 이제 다시 하시는 겁니까? 데뷔 40주년이어서 올해만 혹시 또 노래하고 안 하시는 건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 정태춘/가수: 작은 작은 초청 공연은 우리 생계를 위해서 계속 했고 앞으로도 얼마간은 할 건데.

▷ 주영진/앵커: 창작 활동, 노래 창작.

▶ 정태춘/가수: 네. 창작 활동은 아마 이번에 기념 앨범에 한 곡 쓴 거 그냥 우리 가족을 위해서 쓴 노래 하나, 기념 앨범이니까. 그 정도 말고는 노래를 만들기는 좀 어려워요.

▷ 주영진/앵커: 간략하게 참 지난 40년을 방송에서 짧은 시간에 정리해 드린다는 게 참 결례인 것도 같습니다마는 어쨌든 초창기에 정태춘이라는 가수는 시인의 마을 또 촛불 이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로 저희가 기억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시인의 마을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학교 다닐 때나 대학생 때 그냥 누가 옆에서 부르면 다 따라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 노래가 사실상 데뷔곡이었던 거죠? 시인의 마을. 노래 제목을 어떻게 또 저렇게 지으셨을까요? 저는 박목월 씨 시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저 제목을 보면서.

▶ 정태춘/가수: 사실은 내가 군대를 전투경찰을 나왔는데 군에서 있을 때 만든 노래예요. 군 그때는 군복무하면서 느끼는 어떤 답답함이랄까.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온 노래죠.

▷ 주영진/앵커: 가사, 제가 보니까 아까 창작 활동이라고 했을 때 저는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정태춘 선생님 노래에 많은 분들이 공감했던 거는 가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의 마을, 촛불, 북한강에서. 이런 가사가 금방금방 이렇게 쓰이는 겁니까? 아니면 오랫동안 고뇌한 끝에 나오는 겁니까?

▶ 정태춘/가수: 저한테는 가사 쓰는 일이 좀 쉬웠던가 봐요.

▷ 주영진/앵커: 오히려 가사가요?

▶ 정태춘/가수: 네. 아주 훌륭한 가사여야 했습니다마는 노래, 기타를 연주하는 것 그리고 음악적으로 더 좋은 작업들을 내는 것. 그런 욕심보다도 가사에서 어떤 문학적으로도 크게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요.

▷ 주영진/앵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초창기에 정태춘 씨의 노래를 좋아하셨고 지금도 아마 그 상태에서 머물고 계신 분도 많으실 거예요. 그런데 정태춘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노래를 들고 나오죠. 시청자 여러분, 이 노래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 버섯구름의 노래라고 하는 노래.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죠. 이 노래가 저는 개인적으로 정태춘이라고 하는 가수의 음악 인생이 달라지는 전환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저도 조금 깜짝 놀랐고요. 저 음반을 저도 사서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

▶ 정태춘/가수: 90년도에 발표했던 아, 대한민국이라는 앨범이고요. 거기에 버섯구름이라는 노래가 지금 나왔는데 그 90년대경에는 우리 사회가 요동치고 있었죠. 어떤 구시대의 어떤 야망성 같은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한 이제 시민들의 어떤 저항이나 그리고 곳곳에서의, 곳곳에서 일어났던 변화에 대한 어떤 갈망들. 그런 것들로 사회가 뜨겁게 요동치고 있었고 나도 그 속의 한 사람으로서 똑같은 마음과 똑같은 어떤 열정을 가지고 그냥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노래들을 모아서 앨범을 냈죠. 그래서 아주 거칠고 또는 거침없고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여기서 질문 드릴 게 있는데 저희가 준비한 영상을 하나 보고 나서 제가 바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작가와 편집 PD들이 특별히 만든 영상이 있는데 한번 보실까요?

#VCR

▷ 주영진/앵커: 저 당시에 마지막 영상에 표현의 자유 쟁취라고 하는 리본을 달고 계세요.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아주 구시대적인 나쁜 제도, 사전검열이라고 하는 제도를 사실은 정태춘 선생께서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라고 하는 것. 사실은 모르는 분들이 많거든요. 지금 우리 이 K-POP 문화 황금기 누리고 있는데 이게 사실 사전검열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저는 가끔 해 봅니다.

▶ 정태춘/가수: 제가 아니고라도 누군가가 했겠죠. 그거는 정말 야만적인 제도였으니까, 식민지 시대에 시작되어서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무언가 문화에 대한 정부의 어느 정도의 간섭은 필요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그 아주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보편적으로 퍼져 있던 그런 생각들을 좀 바꾸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죠. 그리고 창작자들이 곡을 쓰면서부터 아, 이거 이렇게 쓰면 검열당국에서 어떤 또 수정 지시가 내려올까 이런 창작 당시에 스스로 검열하는 그런 상황들을 또 해소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 주영진/앵커: 시인의 마을의 그 가사가 바뀌었다는 것도 말이죠, 예전에. 나는 원래 방황의 친구.

▶ 정태춘/가수: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그리고 그 다른 몇몇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가요는 건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명랑한 노래를 들려줘야 한다, 우울해서도 안 되고 문제의식을 가져도 안 되고 그런 분위기였죠. 지금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명랑함 일변도 또 건전한 어떤 건전하다고 하는 그런 어떤 강요가 풍미했던 그런 시대였죠.

▷ 주영진/앵커: 80년대 대중가요 음반 사면 맨 뒤에 항상 건전 가요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아직도 기억납니다. 어허야, 둥기둥기 이런 노래가 꼭 들어갔던 기억이 나는데 참 지금 세대들은, 자라난 세대들은 정말 상상도 못한 시대였던 것이겠죠. 1996년에 수사기관에 의해서 기소도 되시고 재판받다가 위헌 신청을 하셔서 96년 10월에 위헌 결정이 나옵니다. 그전에 도발적으로 두 장의 음반인가를 불법. 그러니까 그 당시 법에 따른다면 불법 음반을 내신 거죠, 사전 심의 받지 않으시고.

▶ 정태춘/가수: 네. 아, 대한민국이라는 앨범 90년 그리고 93년에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앨범을 심의, 대한민국은 심의를 받았는데 안 나왔기 때문에 나는 승복할 수 없으니 그냥 내겠다.

▷ 주영진/앵커: 심의 통과한 건 황토강으로인가 한 곡 말고는.

▶ 정태춘/가수: 한 곡만 받았고요.

▷ 주영진/앵커: 전부 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 정태춘/가수: 그래서 이제 나는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법적 조치를 하시오. 그리고 사전심의제를 철폐합시다. 그런데 첫 번째 그 기자회견 이후로는 아무런 반응도 정부에서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3년이 지나서 새 앨범을 내야 하는데 다시 또 그 사전심의를 받을 수는 없잖아요, 변화는 안 되었지만. 그래서 다시 이제 앨범을 내면서 또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서 사전검열 폐지를 주장하고 그렇게 되면서 결국 법정으로 올라가게 되고 그리고 국회의 개헌 작업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이렇게 가게 됐죠.

▷ 주영진/앵커: 천정배 의원이 당시 변호사였다고.

▶ 정태춘/가수: 네, 그랬습니다.

▷ 주영진/앵커: 92년 장마, 종로에서. 사실 이 노래를 후반부에 이 노래, 후반부에 내놓으신 음악 중에 이 노래 좋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제 친구도 나오신다고 하니까 이 노래를 한번 꼭 틀어달라고 하던데 저는 이 노래 중에 이 가사가 참 가음에 와 닿습니다. 제가 기자이다 보니까 사실 저 부분이 참 가슴에 아프게 와 닿습니다.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라고 하는 말을 왜 쓰셨을까 하는 생각을. 물론 제가 기자가 되기 전입니다만, 92년이면.

▶ 정태춘/가수: 이제 더 이상 거리에서 이슈를 만날 수가 없을 것이다라는 그런 표현, 표현이겠죠.

▷ 주영진/앵커: 선생님, 오늘 귀한 시간 내셔서 나와 주셨는데 말이죠. 40주년 공연이라고 하는 것 아마도 적어도 정태춘, 박은옥 두 분은 이걸 통해서 뭐 큰돈을 벌겠다, 공연을 많이 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공연하신다는 생각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안 하실 겁니다. 이번 40주년에 다시 노래를 하시게 된 그래서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한번 얘기를 해 주시죠, 어렵게 나와 주셨으니까.

▶ 정태춘/가수: 40주년이라서 제가 피할 수 없었는데요. 아주 과분하게 많은 부분에서 저희 노래를 조명하려고 하고 그것들을 드러내려고 하는데 지나치게 겸손해야 할 정도로 내가 젊지는 않다. 좀 내놓아도 큰 문제없겠다. 그리고 우리 노래에 무엇이 있다면 다 가져가시오. 그리고 나를 다 내놓겠습니다. 그래서 그간의 노래들이 이제 무엇이었는지. 그다음에 특히 후배 음악인들 또 후배 예술인들한테 그런 우리의 노래나 어떤 우리들의 얘기했던 어떤 담론이나 또는 우리가 가졌던 미의식이나 또는 우리가 실천했던 어떤 행동들이 그분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거나 자극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소 좀 과한 것 같기는 한데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말씀하신 것처럼 다 내놓을 테니까 시청자 여러분 올해 정태춘, 박은옥 씨의 노래 다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나와 주시는 김에 제가 정말 어렵사리 부탁을 해서 기타를 갖고 나오셨습니다. 서해에서라는 노래 불러주실 거죠?

▶ 정태춘/가수: 네.

▷ 주영진/앵커: 이 노래 들으시면서 정말 큰 위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여러 가지로 건강상이나 또 살면서 어려움 겪으시는 분들 이 노래 들으시고 힘내시기 바라고요. 이 노래 끝날 때까지 여러분께 꼭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정태춘 씨의 서해에서라는 노래입니다.

▶ 정태춘/가수: (노래)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 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간다 어두워지는 저녁 바다에 섬 그늘 길게 누워도 뱃길에 살랑대는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네 저 사공은 노만 저를 뿐 한마디 말이 없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육지 소식 전해오네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육지 소식 전해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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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