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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레이와(令和) 특수'로 들썩이는 일본…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연호 교체기 이벤트' 속출…"젊은 층 소비를 잡아라"

[월드리포트] '레이와(令和) 특수'로 들썩이는 일본…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개원(改元, 연호를 고침)의 분기점을 1글자로…이름과 함께 신문에 싣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제(3일) 산케이 신문 1면에 실린 내용입니다. 본문을 읽어보니 일종의 이벤트 광고입니다. 독자가 현재 연호 '헤이세이(平成, 1989~2019)'의 기억, 또는 새 연호 '레이와(令和, 2019~)'의 바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한자(漢字) 한 글자와 함께 본인 또는 본인과 가족의 이름, 거주지와 함께 보내면 신문 지면에 내 준다는 겁니다.

그래픽을 통해 친절하게 어떤 모습으로 지면에 나올지도 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름만 낼 경우는 3천 엔(우리 돈 약 3만 원)입니다. 가로 1cm 세로 1.2cm의 사각형 안에 한자 한 글자와 이름(6글자 이내라는 조건), 지역을 넣어 줍니다. 자기 이름과 가족 이름까지 한자 한 글자와 함께 넣는 가격은 4천 엔(우리 돈 약 4만 원)으로, 크기가 가로 2cm, 세로 1.2cm로 조금 커집니다. 물론 20자 이내라는 조건을 지켜야 합니다. 참여를 원하는 독자는 신문사가 개설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14일까지 신청하라고 되어 있고, 실제 게재는 4월 30일부터 5월 5일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라는 안내도 나와 있습니다.

이 '개원 이벤트'에 참가하는 신문 독자들이 어떤 글자를 '헤이세이 시대의 기억'으로, 또 '레이와 시대의 바람'으로 고를지도 물론 궁금하긴 합니다. 또 '중앙 일간지에 나와 가족의 이름, 그리고 직접 고른 한자 한 글자(많이 겹칠 것 같긴 합니다)가 인쇄돼 나온다는 것은 좋은 기념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일본은 4월 27일(토)부터 5월 6일(월)까지 무려 열흘간의 긴 연휴가 예정돼 있습니다. 연휴 기간에는 큰 사건사고나 자연재해를 제외하면 대체로 기삿거리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면, 신문사로서는 이 이벤트로 지면도 좀 채우고 펀딩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을 겁니다. 이 이벤트에 산케이 신문의 독자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참가할지, 즉 신문사의 펀딩 계좌에 얼마가 모일지도 솔직히 궁금합니다. 4월 30일부터 5월 5일 사이에 지면을 채울 개인·가족 칸이 몇 개나 될지 일일이 세어보면 알 수 있을까요.

일본 정부가 5월 1일부터 사용할 새 연호 '레이와'를 지난 1일 발표한 이후 다음날까지 이틀 정도는 '레이와'의 의미와 출전, 아쉽게(?) 채택되지 못한 후보작들, '레이와'가 선정되기까지의 막전막후 움직임, 각계의 반응들이 거의 모든 언론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한바탕 지면과 화면을 훑고 지나간 다음, 사흘째인 3일부터는 새 연호로 인해 유발되는 효과로 관심이 옮겨 간 느낌입니다.

일본인에게 연호가 바뀐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강해 연호 교체기에 그동안 미뤄왔던 다이어트나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거나, 본인이나 가족에게 '기념'이 될 만한 무언가를 사거나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길 거라는 예측입니다. 게다가 앞에서 말씀드렸듯 연호가 교체되는 5월 1일을 전후로 무려 10일의 연휴가 펼쳐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일본의 4월 말 5월 초는 이른바 '골든 위크'라고 해서 일주일 가까이 휴일이 이어져 소비의 견인차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올해는 휴일도 더 늘어났고, 여기에 '연호 교체'까지 겹쳤으니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 만도 합니다.
새 연호 '레이와' 발표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보험회사인 다이이치생명 부설 경제연구소는 최대 10일 연휴까지 가능한 이번 골든위크에 특히 여행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골든위크와 비교해 28.9%, 3천 323억 엔(우리 돈 3조 4천억 원)이 증가해 전체 여행 소비가 1조 4천 824억 엔(우리 돈 15조 원 추산)에 이를 거라는 겁니다. 이 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구마노 씨는 "여행 외에도 '심기일전'을 키워드로 교양이나 건강 등의 분야에서 소비를 촉진하는 이벤트들이 줄지어 나올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20세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세대가 '4말 5초' 소비 촉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도 팽배합니다. 60년이 넘게 이어졌던 쇼와(昭和, 1926~1989)에 비해 헤이세이(平成, 1989~2019) 시대는 30년 남짓으로 끝나게 되죠. 이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이른바 '헤이세이 세대'의 전위가 새 시대를 맞이하며 지갑을 열 거라는 관측입니다. 주로 20대인 이들은 아직 자동차나 주택 같은 '물건' 보다는 취미나 여행 등 '행위'를 중시하고 유행에 따라 소비를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반짝 특수가 의외의 분야에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왕 교체 한 달 전에 미리 새 연호를 공개해 '레이와' 붐을 일으킨 의도는 분명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갑작스러운 연호 교체로 인한 혼란을 막겠다는 것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런 목적도 있겠지만, 역대 최장기 급의 '골든 위크'에 연호 교체를 더해 살짝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는 소비 심리를 일으켜 보겠다는 겁니다. '경제 성과'를 앞세운다면 그 뒤 바로 이어지는 6월 G20 정상회의와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여당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른바 12년 주기 '돼지 해 선거'의 징크스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베 정권의 속셈이 아닐까 합니다. 보수적 관점을 대표하는 산케이 신문까지 새 연호 이벤트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도 이와 결코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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