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북한에 여러 번 속았다…죽은 말 또 살 수 없다"는 미국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9.03.30 11: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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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이하 미국 시간) 워싱턴 미 의회에서는 북한 관련 청문회가 4개나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습니다. 상하원 외교위원회와 하원 군사위원회 등 상임위원회도 다양했습니다. 의회 청문회에는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 슈라이버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관계자까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회 위증을 중범죄로 다루는 미국의 경우, 공직자들이 거짓말을 할 엄두를 못 내고 따라서 청문회 증언은 말 그대로 미 행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청문회를 특징지은 발언은 "북한에 여러 차례 속았다. 죽은 말을 또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을 여전히 믿을 수 없기에 제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행정부는 물론 의원들도 여야 없이 일치된 목소리를 냈습니다. 슈퍼 매파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한 사람의 '몽니'가 아니라 미국 조야가 전반적으로 북한에 더한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는 자신의 인준 청문회에서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스틸웰은 공군 준장 출신으로 중국에 대해 유독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온 인물입니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대북 특별대표와 함께 대북 정책에 관여하지만,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차관보,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와 함께 북한의 제재 회피 행위에 대해 채찍을 드는 악역을 담당합니다.

스틸웰은 이날 청문회에서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여러 차례, 충분히 속아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실패한 대북 협상을 지칭하는 "죽은 말(馬)을 또 사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제재와 압박의 효용도 강조했습니다. "압박 캠페인을 펼친 지난 2년 동안 핵실험도 미사일 발사도 도발도 없었다"면서 "꾸준한 대북 압박은 계속해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도 북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발언이 속출했습니다.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우리가 관찰한 북한의 활동은 비핵화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긴장은 감소했지만 북한군은 여전히 강력하고 위험하며 지난해와 병력 및 준비 태세에 뚜렷한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슈라이버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도 "우리의 문은 외교를 위해 열려 있지만 지금까지 비핵화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북한의 위험한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은 "북한은 목전의 위협이며, 북한이 핵무기와 생산능력 전체를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단했습니다. 지난 1월 북한의 핵 활동을 경고한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수동적이고 순진하다"고 정면으로 타박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행정부와 군 당국자들의 인식은 당시 정보기관 수장들과 다르지 않은 겁니다.

상하원 의원들도 행정부 관계자들의 견해에 적극 동조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셔먼 하원 외교위 소위원장은 "북한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합의에 동의할 정도로 충분한 압박을 받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면서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더 좋은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 정부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은 한술 더 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걸어 나온 것을 잘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맥카울 하원의원은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걸어 나왔고, 결국 냉전 종식으로 이어졌다"면서 "우리는 이란과의 거래처럼 불충분한 거래가 아니라 좋은 거래를 원한다"며 폼페이오 장관을 칭찬했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이날 청문회 발언을 죽 들어보면 트럼프가 미워서가 아니라 북한을 믿지 못한다는 인식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북한 성토장을 방불케 하는 청문회장에서 북한과 협상을 책임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은 방어에 가까웠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바랬던 완전한 비핵화라는 큰 움직임은 보지 못했다"고 현실 인식은 의원들과 같이 하면서도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폼페이오 미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서 북한 비핵화 발언폼페이오는 "여전히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 희망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베트남처럼 경제를 성장시키고 주민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무기 체계의 역량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는 이전 단계로 유엔이 결의한 대북 제재의 이행과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히 했습니다.

이날 청문회에서 행정부 관계자들이 또 하나 같은 목소리를 낸 지점은 한미 동맹 관련이었습니다. "한국과의 동맹은 철통(iron-clad)같이 지켜지고 있다"는 말이 상임위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남북 협력과 북미 관계의 진전 속도가 같지 않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 심심찮게 나온 상황이라, 한미 동맹이 철통 같다는 말은 철통 같아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의 패를 명확히 한 이상, 남북 협력을 넘어서는 보다 정교한 틀을 마련해 양측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에 북한과 조기 대화를 설득하는 게 행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회까지 고려해야 하는 한층 복잡한 방정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 미 상·하원 청문회였습니다. (끝)

(사진=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