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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현대 미술, 꿈보다 해몽인가요?

# 넓다란 시멘트 운동장에 로봇공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갑니다. 영국 작가 크리스 쉔의 <위상 공간>에서는 로봇공들이 스스로 움직이다가 부딪히면 알아서 비켜서고 그 궤적은 시멘트 운동장에 연결된 모니터에 그려집니다. 이건 우주 공간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소멸하는 기본 입자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 입자들은 우주의 문자처럼 은하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겁니다.
# 동그란 로봇 청소기 두 개가 선반에서 돌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을 뱅뱅 도는 데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 좀 높은 선반 위에서는 다른 청소기 한 개가 마찬가지로 돌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능을 갖춘 가전 제품이 비좁은 공간에서 맴돌면서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 모습은 중국 사회의 현주소를 암시한다고 중국 작가 차오 페이는 설명합니다.

급속한 경제 발전, 첨단 기술 발전으로 빠르게 경제 대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양극화 같은 사회 갈등으로 거기서만 돌뿐 더 발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했다고 하네요. 요즘 TV에 나오는 로봇 청소기 광고를 보면 바닥을 감지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어 마루에서 현관으로 떨어져 외출(?)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데, 이런 걸 그럴싸한 미술관 선반에 올려 놓으면 작품이 된다고 주장하다니! 마르셀 뒤샹이 변기나, 자전거 바퀴를 미술관에 전시하면서 기성품 즉, <레디메이드>라는 현대 미술의 장르를 만든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근 개막된 <불온한 데이터 展>에는 디지털 시대의 토대인 데이터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 14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붉은 네온등 아래 설치된 컴퓨터에서 웹 카메라가 집계한 관람객 수 등을 집계해 자신의 작품 가치를 숫자로 환산한 작품도 있습니다. 붉은 네온등은 유럽의 바(BAR)를 연상시키는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영국 작가 레이첼 아라는 성매매를 위해 네온등 아래 서 있는 여성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 위에 숫자로 자신의 가치가 표시된다는 겁니다.
[취재파일] 현대 미술, 꿈보다 해몽인가요?
영상 설치 작품들은 난해한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김실비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금융-신용-영성 삼신도'에서는 영상 속 여성 3명이 때로는 이어지고 때로는 분리되면서 데이터망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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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불온한 데이터>에서 '불온'은 영어 'Vertiginous'를 번역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현기증이 나는', '변하기 쉬운'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데이터를 매개로 급변하는 현대 문명사회를 표현했는데, 블록체인, 빅 데이터, AI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사회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입니다. 이런 주제로 어떻게 예술품을 만들었는지. 설명을 보면 더 어렵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데이터를 갖고 노는데 익숙한 젊은 관람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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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데이터 전/ 7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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