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각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도 평양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최 부상의 작심 발언이 쏟아진 자리였죠.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최선희 부상 발언의 진의가 궁금했지만, 그전에 리커창 총리 입장에선 좀 무안해진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리 총리가 북한과 미국이 계속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북한측이 안 만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선언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과거 혈맹 수준으로 관계가 복원됐다는 최근 북중 관계에 비춰보면 다소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커창 총리가 받은 질문이 즉석 질문도 아니고 미리 제출받은 것이었는데, 최 부상의 돌발 발언에 대한 사전 대비가 안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스탠스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하노이 회담 전이나, 회담 이후에도 중국이 내놓는 메시지는 일관됩니다. '대화를 통한 단계적인 해결'을 강조하는 내용 그대롭니다. 최선희 부상의 작심 발언이 나온 이후에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문턱을 높이거나 일방적으로 비현실적인 요구를 해선 안된다는 중국의 주장은 듣기에 따라선 미국에게도, 북한에게도 주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중국의 메시지엔 조심스러움과 함께 북미 양쪽에 같은 거리를 유지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런 예민한 상황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예정된 공개 행보가 있죠.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했던 평양 답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4차례나 베이징을 찾아왔던 만큼, 외교 관례상 시 주석의 평양 답방은 정해진 수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선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회담 직후 자신이 직접 베이징을 방문한 것처럼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 주석의 평양 답방 시기와 관련해 몇 가지 전망들이 오르내립니다. 우선 거론되는 날짜가 김정일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입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그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다른 나라 행사 때 맞춰서 그 나라를 방문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국가 행사에 묻혀 본인의 방문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고, 동시에 본인의 방문으로 국가 행사가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태양절에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시 주석은 김일성 주석 참배도 불가피해 보이는데, 이 장면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해석될지는 중국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다음으로 거론되는 시기가 일본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된 오는 6월입니다. 시 주석은 해외를 한번 움직일 때 여러 국가나 행사를 묶어서 방문하는 스타일입니다. 이에 비춰보면 오사카 G20 회의 참석차 일본을 오가는 길에, 평양을 방문하거나 더 나아가 서울도 방문할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겁니다. 현재로선 차라리 태양절 평양 답방설보단 이 시나리오가 더 자연스럽다는 게 외교가의 전망입니다.
그래선지 한반도 문제가 항상 외교 우선순위라고 얘기하는 중국의 태도가 최근엔 곧이곧대로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엔 한반도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 감지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지금 시 주석 처지가 경제 위기 같은 복잡한 국내 이슈 해결도 버거운 지경이라는 얘기도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금 시 주석의 속내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시 주석은 평양 답방 의미를 가능하면 작게 해석되길 바라는 반면, 북한과 관련국들이 그 의미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걸로 보인다"라는 것이죠. 시 주석의 마음속을 어떻게 들여다볼 순 있겠습니까만은 그래도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얘기였습니다. 정말 시 주석은 평양 답방을 주저하는 걸까요?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