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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에스카베 공장 임금 체불 사태, 인도네시아 한류에 찬물 끼얹지 않으려면

[취재파일] 에스카베 공장 임금 체불 사태, 인도네시아 한류에 찬물 끼얹지 않으려면

배정훈 기자 baejr@sbs.co.kr

작성 2019.03.19 09: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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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에스카베 공장 임금 체불 사태, 인도네시아 한류에 찬물 끼얹지 않으려면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1천만 명이 거주하는, 한 나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라는 위명에 걸맞게 자카르타 시내에는 수많은 마천루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납니다. 도시 곳곳에 뚫린 잘 닦인 고속화 도로는 온통 일본산 SUV 차량들로 가득 메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한 시간여 외곽으로 달려나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도로의 포장 상태부터 달라지는 것은 물론, 고층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단층 공장 건물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한인 사장이 도주해 임금이 체불된 봉제공장 에스카베(SKB)가 있는 곳. 자카르타 근교 버카시에 있는 공업단지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공장에 취직해 벌 수 있는 돈은 버카시 최저임금인 한국 돈 30만 원가량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에스카베 봉제 공장 관계자는 "에스카베에 취직하는 것이 그곳 근처 주민들에게는 꿈이었다"고 말합니다. 에스카베는 철저하게 인도네시아 버카시의 최저임금을 준수해왔고, 월급을 밀리는 경우도 없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신화'는 얼마 전 산산이 깨져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장 야반도주 ● 밀린 월급과 깨어진 꿈, '에스카베 신화'

계약직 직원을 포함해 3천여 명에 달하는 에스카베의 공장 노동자들은 지난 10월부터 월급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공장의 소유주인 김 모 사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부사장을 포함한 한국인 직원들도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받지 못한 체불임금은 (각자의 주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퇴직금을 빼고도 한국 돈으로 수억 원에서 십수억 원 규모에 달합니다.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외에 김 사장이 회삿돈을 야금야금 횡령한 것만 해도 한국 돈으로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노동자들은 직접 거리로 나섰습니다. 김 사장이 마음대로 자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조를 짜서 24시간 공장 앞을 지키기로 한 겁니다. SBS 취재진이 인도네시아 현지 에스카베 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임금이 체불된 지 5개월 가까이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은 전혀 그런 상황에 굴할 기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차분하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돼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노동자들의 상황을 홍보하는 데 사용하려는 듯 취재진의 모습을 스마트폰 동영상과 사진으로 조용히 담을 뿐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이슈가 된 건, 지난달 27일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의 연설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인도네시아 한인 사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임금체불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7일에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마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공조를 주문하고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한인사장 야반도주 ● 체불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이번 임금체불 문제도 그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밀린 임금을 주려면 공장을 재가동하든, 공장의 기계나 땅을 팔든 해야 하는데 공장의 소유권조차 명백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에스카베 공장의 소유는 김 모 사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10년부터 공장을 운영해왔는데, 그 이전 공장 소유주는 역시 한국인인 또 다른 김 모 회장이었습니다. SBS 취재진과 어렵사리 연결된 김 회장은 자신이 2010년 회사의 주식을 김 사장에게 위탁하고 갔을 뿐 여전히 에스카베의 소유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에 김 사장이 동의를 하지 않는 모양인지, 그를 찾기 위해 한국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두 사람의 법적 분쟁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 법원의 1심 판결의 경우 원래라면 지난주에 결론이 났어야 하지만, 아직 끝을 맺지 못하고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노조 및 노동자 측과 한국인 직원들 간의 의견 불합치도 문제입니다. 봉제협의회, 한인상공회의소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장을 재가동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장을 인수할 만한 사람도 찾고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는 에스카베 노조 측에는 최대한 보상을 많이 받기를 원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공장 청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면, 에스카베 공장 노동자들은 이 한국인 직원을 그저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결국 자신들을 떠난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두 주체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에스카베 ● '한류에 찬물' 빠른 문제 해결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2천여 개에서 수많은 한인 기업가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김 사장과의 거래에서 수천만 원의 대금을 받지 못한 한인 사업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떼인 돈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보다 인도네시아 사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하락할 것을 더 크게 우려했습니다. 당장 인도네시아 정부가 점차 외국인 기업인들에 대한 규제를 옥죄어오는 상황에서 이미지에까지 타격을 입는다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슈퍼마켓에서든 진열된 한국음식을 만날 수 있고, 쇼핑몰에서는 K-POP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곳.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친숙하고 반가운 나라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에스카베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그 분위기에는 언제든 찬물이 끼얹어질 수 있을 겁니다. 실제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악덕 기업'을 색출하기 위한 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져 옵니다. 외교당국과 수사당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에스카베 문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최근 행적이 묘연했던 김 사장이 체불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서 빨리 에스카베 문제가 해결돼, 한국이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의 좋은 벗'으로 남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 3,500명 임금 떼먹은 김 사장…인니 뒤집은 '15억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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