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4년 전, 그 사건 - ① 에밀 졸라를 인용한 무죄구형 검사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9.03.17 15:11 수정 2019.03.17 21:3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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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임은정 부장검사(청주지검 충주지청)가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임은정 검사 "나는 고발한다" 정동칼럼 ]

파장은 컸다. 누군가는 앞서 수차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되풀이했을 뿐이라 평가 절하했지만, 실은 그게 핵심이다. 벌써 몇 번째 제기한 문제인데 달라진 게 없다는 것. 그렇기에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칼럼 기고 행위 자체가 심각성을 방증했다.

● "주권자 국민 여러분들이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 주십시오"

검사가 국민들이 고발 내용을 판단해 달라며 글을 썼다.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할까? 향후 수사공보준칙 위반이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적용을 검토해야 하나? 본인이 고발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검사로서 배당받은 사건이 아니라, 자신이 고발한 사건을 공개했다.

'그렇다 한들 어떻게 현직 검사가 언론에 실명 기고할 수 있나?' 지난해 검찰은 폐쇄적 조직문화를 극복하겠다며 신고만 하면 대외적으로 검사들도 의견을 표명할 수 있게 했다. 소속 기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검사윤리강령(제21조)을 '신고'만 하면 되도록 개정한 것인데, 다만 피의사실 공표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사공보준칙이 적용되게 했다. 서지현 검사와 안미현 검사, 박병규 검사 등 지난해 연이어 있었던 일선 검사들의 공개적 문제제기가 선례, 혹은 계기가 된 것이다.

칼럼의 제목은 '나는 고발한다'였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1898년 독일 간첩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며 '로로르' 지면에 발표한 격문(J'Accuse)의 제목과 같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이 가득한 밤 말이지요.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군부는 드레퓌스의 무죄 확인이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라 판단해 뒤늦게 진짜 간첩으로 드러난 에스테라지 소령을 무죄 석방한다.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피카르 중령까지 투옥되자 졸라는 단숨에 '나는 고발한다'를 작성, 발표한다.

이후 졸라는 엄청난 고난에 빠졌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컸던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듯 의회가 그를 서둘러 기소했기 때문이다. 1898년 7월 베르사유 중죄재판소는 졸라에게 징역 1년에 벌금 3천 프랑을 선고한다. 선고 당일 졸라는 런던으로 망명을 떠났다. [참고: 에밀 졸라 [FranZola, Emile Zola] - 19세기 프랑스의 문호 (인물세계사, 배문성)]

임 부장검사를 두고 검찰에선 조직의 일을 부러 논쟁거리로 만든다는 비난이 존재한다. 비난은 그녀가 과거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을 때부터 등장했다. 반골, 튀는 사람. 한데 바꿔 질문하면, 그녀는 왜 내부의 일에 대해 세상의 판단을 구해야만 하는 걸까? 조직 내 통용되는 상식이 사회의 그것과 같다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

... 지난 2012년 故 윤중길 진보당 간사의 재심에서 상부의 백지 구형 지시를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했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던 임은정 충주지청 검사는 행정소송을 냈고, 1심부터 상고심까지 모두 승소했다. 소송에서 패소한 법무부는 2017년 12월 임 검사의 정직 기간 중 급여와 법정 이자 등 5000만 원가량을 지급했다. [출처: news1 <검찰 징계, '제식구 감싸기' 급급 ·'검사 길들이기' 남용>]

이번 칼럼을 두고 일부에선 '다 끝난 일인데 과도한 문제제기'라는 취지의 비난이 있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고발 사건의 시발점이자 (칼럼의 표현대로라면) '중세시대 흑사병마냥 흉흉'했다던 4년 전, 그 소문은 검찰 내 문제해결 능력의 수준, 혹은 그 기준이 세상의 것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여러모로 복기해 볼만 하다.

다만, 해당 사건은 여러 해에 걸쳐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단적으로, 글에서 언급한 고발 대상(문무일 현 검찰총장 등)과 실제 그녀가 검찰에 고발한 대상(김진태 전 총장 등)은 다른 인물들이다. 지속적으로 팔로우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2편에 계속)

** 에밀 졸라 글의 부제는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임 부장검사가 쓴 칼럼의 부제는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한다. 그녀는 공수처 도입안이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황이라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참고: 임은정 검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