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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내놓은 카드가 영변 핵시설의 일부냐 전체냐의 논쟁은 양측의 주장에 편차가 있긴 하나 북한의 주장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놓은 역사가 없다"고까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북한이 영변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고 말했다. '입회'라는 말은 보통 참관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리 외무상의 말은 미국의 전문가, 기술자들을 영변에 불러 폐기 작업을 하기는 하겠으나 시료 채취를 통해 과거 핵의 자취를 찾는 과학적 검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2008년 6자회담 좌초의 이유가 됐던 과학적 검증을 여전히 수용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변 핵시설을 전부 폐기하는 대가로 최근의 유엔 제재 5건 가운데 민생 제재, 즉 북한이 아파하는 거의 모든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영변 이후의 비핵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겠느냐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개발의 상징적 장소이고 여전히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영변이 북한 핵의 전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영변 외 지역에 존재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과 이미 추출된 핵물질, 핵탄두, ICBM 등의 문제는 영변 핵시설이 폐기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영변 핵시설은 이미 실체가 알려진 곳이지만, 영변 이외의 핵시설과 핵물질 등은 실체가 명확히 파악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변 폐기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제재들을 교환해버리면, 더 어려운 영변 외 비핵화를 강제할 협상카드가 미국과 국제사회에게는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사실상의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협상용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일단 크게 불러놔야 일부 제재라도 해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사실상의 전면 제재 해제를 협상용으로 올려놓았다면 영변뿐 아니라 영변 외 비핵화 역시 협상용으로 올려놓았어야 했다. 자신들은 영변 폐기 의사만을 밝히면서 사실상의 전면 제제 해제를 요구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범위는?
지난해초 북한이 국면전환을 시작한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은 여전한 논란의 대상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상황에서 딱히 이를 부인할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북한의 말을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비핵화의 범위를 영변으로 한정하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변 외 핵시설과 핵물질 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영변 외 지역의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의 카드를 거부한 만큼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카드의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북한이 영변 외 지역의 핵폐기를 받아들일 것이냐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이 있는지 '진실의 문'을 마주할 때가 된 것이다.
● 北, '진실의 문' 통과할까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의외의 결렬로 끝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중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가 괜찮다는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을 접촉해 교착상태의 돌파구를 찾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있게 될 남북 접촉의 핵심은 북한이 '진실의 문'을 통과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 확인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진실의 문'을 통과하는데 미온적이라면 우리 정부가 설득해서 그 문을 넘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미국을 설득해 제재의 일부 완화라도 추진해볼 수가 있다. 우리 정부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