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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축제의 끝은 예고가 없었다…'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순간

베트남 하노이 현지 취재 뒷 이야기

대형 교차로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북미회담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스크린의 아래에는 '평화의 도시 하노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주변 옷 가게엔 성조기와 인공기가 오묘하게 뒤섞인 티셔츠가 쇼윈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투어용 전기차엔 미국과 북한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었습니다. 현지 시간 2월 28일 오전 11시 반, 베트남 하노이 시내 중심 호안끼엠 호수 인근 풍경입니다.

오후 12시 40분쯤 평화롭던 교차로에 긴장감이 감돌고 이내 베트남 경찰들의 교통 통제가 시작됐습니다. '무슨 일일까' 혹시 몰라 휴대폰으로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러던 순간 북미정상회담 취재팀 SNS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북미 정상 오찬 취소된 듯'.

허겁지겁 교통 통제가 이뤄지는 교차로로 뛰어갔습니다. 그 길은,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회담장으로 이동할 때 지나간 길목이었습니다. 30분쯤 뒤,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은 그 길을 지나 숙소로 향했습니다. 교통 통제가 풀렸고,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숙소로 이동하려던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꺼져버린 호안끼엠의 대형 스크린이었습니다. 축제의 끝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2월 28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 대형스크린이 꺼져있다. 이 스크린은 정상회담 기간 동안 회담 관련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하노이 선언'은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의 오찬은 물론 합의문 서명식도 취소됐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좋은 만남이었지만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을 남긴 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노이 현지엔 아직도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있고, 두 정상이 악수를 하는 모습을 상징한 그림이 곳곳에 붙어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습니다.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기까지 8개월, 하지만 등을 돌리는데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합의 무산이라는 공식 발표가 나온 뒤, 하노이의 공기는 달라졌습니다. 기대감에 들떠있던 하노이 도심은 순간 고요해졌습니다. 사실 이번 회담은 당사국(미국·북한·한국)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에게도 큰 축제였습니다. 회담 시작 전부터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당사국만큼 이 축제의 화려한 피날레를 기대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습니다. 공식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베트남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취재 현장 곳곳에서 느껴진 베트남의 기대감
 
지난 25일부터 하노이 곳곳을 취재하면서, 베트남이 역사적 회담을 주최한 것에 대한 자부심, 그로 인해 주목받는 도시가 되길 바라는 기대감이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베트남 정부만이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 다수가 그런 마음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취재 현장에서 접했던 소소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을 취재할 당시 길거리에 모여있는 취재진들에게 껌과 사탕을 팔려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이 계속 기자들을 상대로 판매를 시도하자, 갑자기 동네 주민 몇몇이 모여 와 '외국 기자들한테 그러지 마라, 베트남이 욕먹는다'며 노인을 강하게 만류했습니다. 그 모습을 저와 함께 보고 있던, 베트남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한국인은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라고 전했습니다.

외신 기자를 상대로 인터뷰를 하는 베트남 언론의 질문에도 자부심과 기대감은 늘 깔려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 앞, 그리고 회담장 주변에서 심심찮게 만났던 베트남 매체들은 대부분 같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베트남에서 북미회담이 열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베트남이 북미회담을 주최할 수 있었던 저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번 회담으로 베트남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무산된 다음 날인 3월 1일, 베트남 현지 언론은 <평화든 아니든 베트남은 훌륭한 주최국이었다><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data-captionyn="Y" id="i201288040"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90302/201288040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평화에게 기회를" → "평화든 아니든, 베트남은 훌륭한 주최국"

베트남은 고속 성장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 국가입니다. 그런 성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베트남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합니다. 4박 5일 취재를 함께 동행해준 한인 사업가는 "북미정상회담으로 베트남이 세계적으로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번 회담이 베트남 경제 발전의 또 다른 계기가 되길 바라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1차 북미정상회담을 유치했던 싱가포르가 회담 주최를 위한 투자 대비 수천억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있는 만큼, 베트남도 이와 같은 효과를 기대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합의 무산 소식이 알려진 후 시내에서 만난 베트남인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한 베트남 주민은 "하노이에서 열린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는데 슬픈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지켜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회담 기간 청년 자원봉사단으로 일한 하노이대학교의 한 학생은 "모든 베트남인들이 이번 회담을 위해 마음을 다해 준비했다. 합의문이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베트남의 노력이 헛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왼쪽 사진은 북미정상회담 2일 차였던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현지 언론의 1면 기사고, 오른쪽 사진은 다음 날인 3월 1일 같은 매체의 1면 기사다.
정상회담 당일인 28일 오전, 베트남 현지 한 매체는 두 정상이 전날 만찬에서 악수하는 모습과 함께 <평화에게 기회를 주세요 (GIVE PEACE A CHANCE)>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이 매체는 <트럼프는 회담장을 걸어 나갔지만 문은 열어두었다(TRUMP WALKS AWAY FROM SUMMIT BUT DOOR LEFT OPEN)> 그리고 <평화든 아니든, 베트남은 훌륭한 주최국이다 (PEACE OR NOT, VIETNAM PLAYS PERFECT HOST)> 라는 제목의 기사로 아쉬움과 함께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노이를 배경으로 시작된 평화를 위한 담판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는 이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회담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그리고 하노이는 그들의 바람대로 평화의 도시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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