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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집단매장된 '천인갱'…무관심에 버려진 원혼들

<앵커>

다시 탑골공원입니다. 오늘(1일) 대통령도 3·1절 기념사에서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자고 얘기를 했는데 세월만 흘렀을 뿐, 바로잡지 못한 역사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당장 일제가 강제로 해외로 끌고 갔다가 숨진 우리 조상들 중에 유해로나마 돌아온 경우는 2~3% 정도입니다. 우리가 요즘 여행 많이 가는 중국 하이난에 조선인 집단 매장지가 아직도 방치돼 있습니다.

고정현 기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이곳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중심에서 차로 15분 거리, 지금도 '조선촌'으로 불리는 곳에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1천 명이 집단매장됐다는 뜻의 '천인갱'이 있습니다.

1995년 중국 하이난성 정부에서 엮은 일제 피해자 구술집을 통해 처음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언론을 통해 국내에서도 알려지자 하이난성에서 망고농장을 운영하던 우리 기업이 묘역화를 해도 좋다는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담장을 치고 추모관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담장 곳곳이 허물어졌고 현지 주민이 묘를 쓰지 못해 몰래 버린 관들이 쌓여 있습니다.

[김제달/재단법인 '천인갱' 전무 : 저 빨간 담장까지 전부 (담장이) 다 처져 있었는 데 여기서 그걸 헐어버리고 돼지우리를 만든 거죠.]

사실상 버려진 추모관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영락제, '영원히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모시겠다' 이 정도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건물 바로 옆 부지는 여전히 수많은 조선인 강제 징용 피해자가 일제에 죽임을 당한 채 그대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보시는 것처럼 근처 주민들이 농사를 지었는지 밭이랑과 고랑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고요, 근처 축사에서 흘러나온 오물이 가득 쌓여 심한 악취를 계속 풍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1939년 하이난섬을 정복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43년부터 조선 전체 수형자의 10%에 달하는 2천 명을 '조선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하이난섬에 보냈습니다.

이들 중에는 특히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사상범도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혜경/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 (하이난으로 끌려갔던 수형자 중에) 함흥형무소가 있거든요. 함흥형무소는 주로 사상범들이 많이 가 있던 곳이에요. 사상범이라고 하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죠.]

위안부도 최소 2백10명이 끌려가 1백30명 넘게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대부분 비행장 건설이나 탄광 작업 같은 강제 노역에 동원됐는데 사망률이 군인 전사율과 같은 60%에 달할 만큼 혹독했습니다.

생존자와 현지 주민은 당시 일본군이 도망자들을 죽이는 것은 물론 살아 있는 사람도 병에 걸리면 전염을 우려해 학살했다고 증언합니다.

[고복남/2014년 작고(대독) : (도망가다 걸려) 내가 석 달 열흘을 (나무에) 매달렸어요, 이렇게. 손에서 수갑을 여니까 (수갑이) 살 속으로 들어가서 뼈가 하얗게 보여 가지고선….]

[쭈지메이/'조선촌' 주민 : 한명 한명씩 나무에 매달아서 때리고 자르고, 목도 자르고 시체도 자르고….]

당시 귀환 기록이 없는 강제 징용자가 1천2백 명이 넘는 만큼 '천인갱'은 이들의 유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0년 전 우리나라 한 기업이 확보한 천인갱 부지는 3만3천㎡에 달합니다.

하지만 지금 천인갱이라고 불리는 부지는 20분의 1에 불과한 1천6백㎡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해당 기업이 자금난으로 5년간 토지사용료를 내지 못하자 중국 정부가 허가를 취소한 겁니다.

그나마 남은 부지도 지키기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문용수/재단법인 '천인갱' 이사 :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부동산값이 뛰고 하다 보니까 지역 주민이 처음에 황무지였을 때에는 그분들이 무척 협조적이었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암적인 존재가 되는….]

허허벌판이었던 천인갱 근처에는 고속도로가 생겼고 본토로 들어가는 고속철도 역까지 들어왔습니다.

코앞까지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가 언제 비집고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인 겁니다.

[린콴차이/'조선촌' 주민 : (주민들이) 총이랑 칼로 못이랑 칼도 있었고, 여기에 두고 ('천인갱') 관리인을 (위협했어요.)]

우리 역사의 아픔과 민족의 한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천인갱'은 무관심 속에 그대로 지워져 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 30cm만 파도 유해 나오는데…24년간 방치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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