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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절대 못 끊는다"는 프로포폴…병원 돌며 쇼핑하듯 맞아도 '깜깜이'

반나절 만에 3∼4곳 돌며 '우유주사' 찾는 사람들

[취재파일] "절대 못 끊는다"는 프로포폴…병원 돌며 쇼핑하듯 맞아도 '깜깜이'
● "한 번 맛 들이면 절대 못 끊는다"

"제가 손님을 태우고 다니다가 목격한 병원만 열 곳 정도 됩니다. 피부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주로 서울 강남 일대 병원들이죠. 누구 소개받고 왔다면서 이름만 대면 그 자리에서 현금 내고 맞을 수 있다고 하고요. 매일 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사람도 있어요. 돈이 없어서 조절해서 가는 거겠죠. 중독이 심하다, 본인 입으로도 이야기를 해요. 이거 한 번 맛 들이면 절대 못 끊는다고…."

일부 손님들이 여러 병원을 돌며 암암리에 '프로포폴'을 맞고 다닌다는 내용의 제보. 일명 '콜 뛰기' 차량 운전자 A 씨는 "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다"며 취재진에 구체적인 제보를 보내왔습니다.

실제로 A 씨의 차량을 이용하는 일부 손님들이 반나절 만에 3~4곳, 많게는 5~6곳의 병원을 돌며 프로포폴을 찾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여성은 잠에서 덜 깬 듯 병원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섰고, 차량에 타자마자 다른 병원으로 향할 정도로 의존 증세가 의심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병원을 돌며 프로포폴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중독이 가장 무섭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두 번으로 시작하다가 끊을 수 없게 되고,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시술을 받을 때는 가격이 비싸지 않지만, (시술 용도가 아닌) 프로포폴만 맞는 경우에는 최하 20만 원부터 30만 원, 그런데 이게 10분 있다가 깨고, 5분 있다가 깨고 이렇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가서 100만 원도 쓰고, 200(만 원)도 쓰고…한 달 티켓(회원권)에 1천만 원도 있고요." - 프로포폴 투약 경험 B 씨

"주사 용량을 조절하면서 주는 것 같아요. 천천히 잠이 들 듯 말 듯 놓는 식이죠. 서서히 잠에 드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결국 그게 다 돈이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다 보면, 결국 빚에 시달리게 되고, 악순환이죠." - 프로포폴 투약 경험 C 씨


● "불법 투약 없다"면서도 "중독 의심되는 환자가 신분 속이면 방법이 없다"는 병원

제보에 들어온 병원들을 추려 8곳을 특정해, 그중 4곳을 가봤습니다.

모두 "불법 투약은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 중인 '마약류 통합 관리 시스템' 때문에 프로포폴 취급 내역을 전산 시스템으로 매일 보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남용이나 목적 외 투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의존 증세가 의심되는 일부 내원자가 있는 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 내원자들의 명단을 정리한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프로포폴 중독이 의심돼) 문제가 됐던 (환자) 리스트를 저희가 열두 명인가 달라고 해서 그래서 입수를 했어요. 그분들이 보통 한 명은 아니신 것 같더라고요. 저희도 (일부 의심 환자가) 병원에 너무 자주 오시면 문제가 좀 있다고 인식을 해서, 환자에게 곤란하다는 식으로 권고를 하긴 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아예 진료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기에는 명분이 조금 그래요." - ○○병원 원장

"환자가 본인 신분을 속이고 주민등록번호까지 다른 사람 번호를 대고, 그런 식으로 마음먹고 들어오면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 ○○병원 관계자

"주삿바늘 자국이 많다든지, 멍한 상태로 들어온다든지, 그런 분들도 있는데…. 주로 아침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술을 드시고 오신 건지, 약(프로포폴)을 하시고 오신 건지 (불분명합니다.)" - □□병원 간호사

"저희가 환자의 신분이나 직업 같은 것을 세세하게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주민번호까지 다른 사람 번호를 대고 들어오면 막을 수가 없죠. 환자를 걸러 받는 수밖에 없는 건데, 환자가 간단한 시술을 요구하면 그것까지 못 하게 할 수는 없고요. 그분이 여러 병원을 돌면서 프로포폴만 맞고 다니는 것인지 저희로서는 확인하기가 어려우니까…." - △△병원 원장

프로포폴 앰플 (사진=연합뉴스)
● 프로포폴 취급 내역 보고되고 있지만…관할 보건소는 "접근이 안 된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마약류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프로포폴을 취급하는 전국 모든 병원에서 사용 내역과 입고량, 잔여 물량 등을 매일 보고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통합 관리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깜깜이'였습니다.

현장 점검을 해야 할 관할 보건소는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통합 관리하는 전산 정보를 보건소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관할 구역 내 프로포폴을 취급하는 병원이 몇 곳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18년 5월 18일 이후부터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은 마약류 취급 정보를 식약처의 마약류 통합 관리 시스템에 보고해야 합니다. 식약처에서 해당 취급 보고에 대한 요약 통계를 2월 말 지자체에 통보할 예정이므로, 그 자료를 확인한 뒤 실제 프로포폴 취급 병원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예정입니다." - 서울 강남구 보건소 공식 입장

"(환자의) 개인정보나 이런 것 때문에 (지자체와) 공유가 힘든가 봅니다. 아마 2020년쯤에는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고 지금 (추진)하고 있고요. 관련 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가 된 상태입니다." -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


식약처에서는 지자체 보건소의 현장 점검과는 별개로 자체 특별점검을 통해 오남용이나 불법 투약이 의심되는 사례를 찾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9개월 동안 수사 의뢰는 단 한 건에 그쳤습니다.

●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 더는 없었으면"

프로포폴은 마취 효과가 빨라서 각종 수술과 시술 등에 널리 쓰이는 수면마취제입니다. 하지만 중독성이 심하고 과다 투약 시 무호흡증 같은 부작용도 있어서 엄격하게 관리되는 마약류입니다. 종종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 최근 9개월 동안 국내 498만 2천465명의 환자에게 565만 2천642건의 프로포폴이 처방됐습니다.

시스템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오남용 가능성을 막기 위해선 주무부서와 지자체 보건소 간 정보 공유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오남용 사고와 불법 투약으로 인한 중독자 양산을 막는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병원의 자정 노력도 중요합니다. 마약류를 보관하고 반출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과 내부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돌아본 병원들은 주로 개인 병원들로, 원장이나 소수 관계자들이 병원 운영이나 진료 등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병원들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지시하면 투약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언제든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콜 뛰기' 차량 운전자)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해요. (프로포폴 때문에) 누구는 잠적했다, 누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구는 빚더미에 앉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실제로 손님 중에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안 보이는 사람도 있고요. 예뻐지고, 더 나아지려고 병원에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사람이 망가져서 나오니까….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 '콜 뛰기' 차량 운전자 A 씨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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