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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포크 대부'…일흔셋 이장희의 인생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이장희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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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반가운 분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지금 영상에서 이미 다 짐작하셨을 겁니다. 대한민국 포크의 전설, 우리 이장희 선생님이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장희/가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반갑습니다.
 
▶ 이장희/가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그 영상 보니까 젊은 시절에는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콧수염은 이제 기르지 않으시네요.
 
▶ 이장희/가수: 맞아요. 콧수염이 원래 제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었는데 나이가 오십이 되면서 콧수염을 깎고 육십이 되면서 머리도 깎았어요.
 
▷ 주영진/앵커: 왜 그러셨어요?
 
▶ 이장희/가수: 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마 뭐 취향도 아니고 어쨌든 좀 깨끗하게, 이제는 좀 깨끗하고 말쑥한 게 보기가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깎고 나서 저는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특히 머리를 깎고 나서는 어디 가서 뭐 하여튼 금방 세면대에다 머리를 넣고 한번 닦아내면 그냥 깨끗하니까 저는 좋습니다.
 
▷ 주영진/앵커: 젊은 시절의 이장희 선생님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지금 모습이 좀 생소할 수도 있는데.
 
▶ 이장희/가수: 맞아요. 옛날에는 콧수염도 있고 머리도 장발이었고 했었는데 이제는.
 
▷ 주영진/앵커: 얼마 전에 저는 개봉됐던 영화 쎄시봉. 쎄시봉에서 아마 진구 씨가 이장희 선생님 역할을 맡았던 것 같은데.
 
▶ 이장희/가수: 맞아요.
 
▷ 주영진/앵커: 장발에 콧수염 이 부분이 기억이 납니다. 연기를 잘했습니까, 어떻습니까?
 
▶ 이장희/가수: 저는 잘 모르는데 잘한 것 같아요. 구수한 사람 같아요. 진구 씨 좋은 사람 같았어요, 저는.
 
▷ 주영진/앵커: 이장희 선생님은 본인을 가수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작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작사, 작곡가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제가 이 질문 드린 게 대단히 어리석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 이장희/가수: 아니, 저는 이 질문을 제가 처음 받아봤어요. 그런데 정말 저도 그 얘기 들으면서 아, 이런 질문은 제가 처음 받아보구나. 그러니까 아마 시대선으로 변한 것 같아요, 저는. 맨 처음에는 음악의 애호가로서 음악을 듣다가 음악을 만들어서 그다음에 가수가 됐다가 그다음에 한때는 방송국에서 DJ도 했다가 그다음에는 장사를 하고 있다가 후배들이 자꾸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바람에 판을 제작해서 제작자로도 변신하고.
 
▷ 주영진/앵커: 그러니까요.
 
▶ 이장희/가수: 이제는 은퇴했다가 갑자기 사십몇 년 만에 다시 나왔습니다.
 
▷ 주영진/앵커: 울릉도에 사시는데 다음 달에 공연을 하신다. 이제 그 공연 위해서 서울로 오시는 건데.
 
▶ 이장희/가수: 서울로 왔죠.
 
▷ 주영진/앵커: 이거 정말 오랜만에 하시는 공연 아니세요?
 
▶ 이장희/가수: 네. 한 6년 만 된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6년 만에. 이번에 공연 같이 하시는 분들도 평생의 벗이다 이런 표현들 많이 쓰시던데.
 
▶ 이장희/가수: 네. 정말 저는, 정말 저는 왜 나이가 먹어갔죠. 먹어가면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제 음악 하는 친구들 20대 때 만난 친구들이거든요. 음악만 좋아서 그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음악만 서로 논하고 음악만 이야기만 하루 종일 해도 끝이 안 날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을 내가 지금 다시 만나서 정말 나이 칠십에 아마 제 친구 중에 아마 이런 사람이 있나. 이렇게 칠십에 옛날 50년 전 막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가깝게 지내면서 같이 저녁에 술도 한잔하고 음악을 같이 할 수 있는.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 주영진/앵커: 노래를 혹시 제가 아까도 질문 드렸던 게 나는 노래를 좀 잘 못하니까 노래 잘하는 내 친구들에게 노래를, 나는 노래 만드는 재주는 있으니까 내 친구들에게 좀 더 주는 게 좋겠다. 그래서 그 시절 노래를 저는 좀 어린 세대인데 항상 보면 원곡자, 처음 이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노래들이 꽤 있어요.
 
▶ 이장희/가수: 맞아요.
 
▷ 주영진/앵커: 여러 명이 불렀기 때문에.
 
▶ 이장희/가수: 저는 제 친구들 중에 어릴 때 음악을 좋아하던 시절에 같이 음악 애호가 중에 한 명이, 두 명이. 한 명이죠. 아, 두 명이죠.윤형주하고 송창식이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대한민국의 스타가 됐어요.
 
▷ 주영진/앵커: 그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 이장희/가수: 그래서 우리 다 무명으로 같이 지내던 사이에. 갑자기 그래서 그런데 저는 그때 느낌에 아, 이 사람들은 왜 그때 이제 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히트를 했는데.
 
▷ 주영진/앵커: 번안곡이었요.
 
▶ 이장희/가수: 번안곡이었어요. 그래서 번안곡인데 저거를 우리나라 노래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들한테 윤형주 씨한테는 비의 나그네.
 
▷ 주영진/앵커: 비의 나그네~
 
▶ 이장희/가수: 네. 송창식 씨한테는 애인 그다음에 김세환 씨한테는 좋은 걸 어떡해, 조용남 씨한테는 불꺼진 창. 전부 이렇게 작곡을 해주다 보니까 그거를 옆에서 보던 음악 프로듀서인 당시에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이종환 씨가 아니, 직접 한번 어때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 주영진/앵커: 밤의 디스크쇼 이종환 씨.
 
▶ 이장희/가수: 네. 그래서 제가 갑자기 가수로 등장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마추어에서 그렇게 변신한 것 같아요. 그다음에는 지금 조금 전의 그 질문이 하나가 그러고 있고 저는 제 노래를 갑자기 했는데 그것도 다행히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아서 뭐 그건 너, 한잔의 추억 이렇게 쭉 하니까 끝나고 나서 저는 이제 제가 예전에 대마초 파동이라고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기억합니다.
 
▶ 이장희/가수: 그때가 아마 거의 죽일 것처럼 그렇게 됐는데 그래서 그만두고 나서 저는 다른 사업을, 사업이 아니라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장사를 왜 했느냐 하면 제가 대학교를 졸업 못했어요. 그래서 어디 취직을 못했어요. 그래서 장사를 하게 돼서 장사를 하고 있다가 후배들이 노래를 좀 만들어달라고 해서 그 중 하나가 사랑과 평화죠, 그렇죠? 한동안 뜸했었지 이런 노래를.
 
▷ 주영진/앵커: 아, 한동안 뜸했었지는 뭐 대단했죠.
 
▶ 이장희/가수: 제 노래로 발표한 게 아니고, 제 이름으로 한 게 아니라 다른 이름을 빌려서 그렇게 하고 나서 그게 이제 레코드 제작자의 스타트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입니다.
 
▷ 주영진/앵커: 제 기억에는 말이죠. 이장희 선생님께서 만드신 노래가 70년대 젊은이들을 그전에 트로트계의 음악에 익숙해 있던 젊은이들이 70년대에는 이제 대한민국 포크계의 새로운 노래고 아마 히트 안 친 노래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어린 세대인 저도 조금 전에 말씀하신 노래가 다 기억이 나요. 저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던 거거든요. 그랬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을 그만둬야겠다, 그 대마초 파동 조금 전에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때 정말로 가슴이 아프고 어떤 대한민국에 대한 환멸까지 느끼지 않았을까 저는 감히 한번 짐작을 해 보는데 어떠셨어요, 그 당시에는.
 
▶ 이장희/가수: 그거는 저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제가 대마초 파동으로 지금은 서대문구치소입니다, 독립문 옆에 있었던.거기서 있는데 그게 12월이에요. 12월 3, 4일인가 됐는데 거기에서 창문, 구치소에 가면 이만한 창에 그 안에 한 7~8명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조그마한 창에 눈이 내려요, 12월이니까. 눈 내리면서 저는 저를 한번 돌아보게 됐어요. 아, 나는 뭔가. 내가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만들고 그래서 유명한, 유명하다기보다는 어쨌든 0시의 다이얼 DJ도 하고 뭐 작곡가로서도 가수로도 이랬는데 결국은 내가 이 자리에 서 있구나. 그래서 저는 그때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를 주는 건가. 그리고 저는 생각해 보니까 아, 이제 그만하라는 거구나. 그래서 저는 그때 아, 그러면 그만해야지. 그래서 저는 정말 다른 이런 이야기하면 이상하지만 다른 동료 가수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해금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저는 안 기다렸어요. 그다음 날부터 다른 걸 해야지. 그런데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어디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할 데가 취직을 못하지 않습니까,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데. 그래서 제가 아, 그럼 뭘 할까? 그러다가 친구 중에 하나가 장사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한테 의논하고 그럼 나도 장사하자.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저는 거기로 갔습니다.
 
▷ 주영진/앵커: 구치소의 창밖으로 내리는 흰눈을 보면서 나는 이제 그만둬야겠구나. 그 생각하실 때 얼마나 쓸쓸했을까,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안 그러셨습니까, 혹시?
 
▶ 이장희/가수: 저는 그렇게 뭐 그게. 그런데 이제 많은 분들이 그래요. 제 노래가 많이 금지도 당하고 그래서 핍박을 받아서.
 
▷ 주영진/앵커: 시대가 그래서.
 
▶ 이장희/가수: 그래서 이게 정부의 시책에 내가 좀 그런 좀 약간 반감을 갖고 있는데 저는 그게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제가 그러더라도 뭐 노래 가사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대마초 사건에 그만두게 하는 거. 이거는 뭐, 그렇죠. 내가 대통령이라고 해도 똑같은 거죠. 그런 생각을 해서 저는 한 번도 그런 걸로 원망해 본 적은 이상하게 저는 없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 이장희/가수: 그냥 뭐 순응했다는 건 이상하지만.
 
▷ 주영진/앵커: 조금 전에 구치소 창밖에 내리는 눈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불 꺼진 창이라는 노래의 대목이, 첫 대목이 생각나네요. 지금 나는 우울해 왜냐고 묻지 마세요 이렇게 시작하는 그 노래가 기억이 나는데.
 
▶ 이장희/가수: 어떻게 옛날 노래를 그렇게 많이 알아요?
 
▷ 주영진/앵커: 제 형님들이 다 50년대생이어서 대학생 때 그 노래를 부르는 걸 옆에서 늘 같이 들었거든요. 저는 그때 꼬마였지만. 그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이 오래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 이장희/가수: 그게 젊었을 때가 있는 건데, 감수성 제일 예민할 때 그랬던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그렇죠. 초등학생 때 들은 노래가 지금도 기억이 나고 그런 거죠.
 
▶ 이장희/가수: 지금도 젊은애들은, 음악은 젊은애들 거 아닙니까? 그렇죠?
 
▷ 주영진/앵커: 늦은 밤 쓸쓸이 창가에 앉아
 
▶ 이장희/가수: 하하하. 아, 그때 저는 그때 노래를 듣는데 노래 이제 애호가도 시작했는데 그때는 주한미군 방송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보통은 라디오에서는.
 
▷ 주영진/앵커: AFKN 말씀하시는 겁니까?
 
▶ 이장희/가수: 네, AFKN이죠. 그때 당시에는 전부 가요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길거리에서도 나왔는데 거기서는 이제 외국 노래가 나왔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좋아보였어요. 저는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게 이런 이야기하면 어떤지 모르겠지만 해리 벨라폰테라는 가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자메이카 출신인데 그 친구가 바나나보트송이라는 바나나를 따는 노예들의 애환을 담은 뭐 그런 비슷한 노래였는데 그걸 들으면서 저는 그 정글이 생각이 나고 너무도 이런 분위기가 어린 마음에 아주 중학교 1학년 때인데 너무 좋게 느껴졌어요, 왜 그랬는지.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외국 노래를 주로 듣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작곡을 할 때 아, 왜 우리나라 노래는 미국 그러니까 서양 팝처럼 왜 가사가 직접적으로 안 부르나. 뭐 이를테면 야! 이러는 게 있는데 뭐 헤이 이러는 게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런 걸 안 쓰나. 그리고 다 그때 당시에는 다 뭐 거의 이제 시어체를 썼어요, 문어체. 흘러가는 뭐 그런 식으로 써서 저는 그런 걸 좀 탈피해보려고 했던 게 그때 기억이 납니다.
 
▷ 주영진/앵커: 바로 그런 새로운 시도가 그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에 와 닿았던 거겠죠? 가슴의 문을 열어준 거겠죠.
 
▶ 이장희/가수: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면 고맙고.
 
▷ 주영진/앵커: 늘 새로운 시도는 때로는 모험적이지만 그것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 거죠. 그래서 오늘 이장희 선생님 나오셨는데 말이죠. 친구분들 하면 다 아시는 분들인데 여러분, 왜 이분이 이장희 선생님과 잘 아시는지 의아해하실 만한 분과 저희가 전화통화를 한번 해 봤습니다. 한번 누구인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주영진/앵커: 파이팅이요. 김완선 씨는 아마 이 노래인가요? 어떤 인연이죠?
 
▶ 이장희/가수: 김완선 씨는, 김완선 씨가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제 노래를 하나 이젠 잊기로 해요라는 노래를 했어요.
 
▷ 주영진/앵커: 그거를 만들어주신 겁니까?
 
▶ 이장희/가수: 만들어준 게 아니라 제 노래를 그냥 했어요.
 
▷ 주영진/앵커: 리메이크를 한 겁니까?
 
▶ 이장희/가수: 네, 리메이크를 했죠. 그래서 그때 제가 88년에 한국에 왔었거든요. 그래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래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 판에 관여해서 새로 좀 작곡을 하게 됐는데 그런데 저는 김완선 씨 하면 당시 최고의 댄싱스타였고 젊은 애들의 거의 우상으로 그때 저는 봤어요. 그런데.
 
▷ 주영진/앵커: 사실 제가 김완선 씨 또래입니다.
 
▶ 이장희/가수: 아, 그래요? 그런데 저는 김완선 씨를 보고 깜짝. 이야, 댄싱하고 이런 게 굉장히 발랄할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 보면 완전히 이거는 소녀예요. 그리고 마음씨도 너무 여리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지만 너무 순수한 것 같고 그래서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야, 이거 보통 이야기하는 댄싱스타 그러면 춤추고 여자들이 그렇게 하면 좀, 좀 발랄하고 그랬는데 저는 의외라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김완선 씨 참 순수하신 분이에요.
 
▷ 주영진/앵커: 이장희 선생님 나오셔서 참 시간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방송은 늘 시간과의 싸움 아니겠습니까?
 
▶ 이장희/가수: 맞아요.
 
▷ 주영진/앵커: 죄송합니다만 이장희 선생님이 생각하는 음악이란. 그리고 이제 일흔둘이신가요.
 
▶ 이장희/가수: 네, 일흔둘이에요.
 
▷ 주영진/앵커: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삶이란, 인생이란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만 이야기해주세요.
 
▶ 이장희/가수: 저는 인생의 삶에 저는 이제 나이가 먹었지 않습니까? 하여튼 저는 제 인생을 이렇게 생각해요. 저는 지금 인생의 황혼에 섰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황혼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좀 불타는 황혼 같은. 우리 바닷가에서 어떨 때 불타는 황혼 있죠. 모든 게 빨갛고 멋지게 진 노을이 지는데 저는 그 멋진 노을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멋진 노을 속에는, 아름다움 속에는 약간. 약간이 아니죠.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원초적인 외로움, 쓸쓸함 이런 것도 같이 저한테 있지 않나. 그런데 저는 바로 이 이야기를 왜 하냐 하면 이런 기분인데 이거를 내가 노래를 해보고 싶은데 그게 지금 제 꿈입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앞으로 오래오래 음악 들려주시고요.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노래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혹시 맞습니까?
 
▶ 이장희/가수: 네.
 
▷ 주영진/앵커: 외람되지만, 죄송하지만 한 소절만 불러주시면서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을 좀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장희/가수: 그럴까요? 처음인데.
 
▷ 주영진/앵커: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 이장희/가수: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가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나 그대에게~ 그다음에 것까지 들려주셔야 하는데 모두 드리리. 알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 이장희/가수: 고맙습니다.
 
▷ 주영진/앵커: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선생님.
 
▶ 이장희/가수: 이거 뭐 잡아당겨?
 
▷ 주영진/앵커: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이장희 선생님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끝으로 오늘 순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든까지 노래하고 싶다는 이장희 선생님의 꿈,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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