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강제징용 판결에 노골적 불만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19.02.12 22:47 수정 2019.02.12 22: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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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에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부소 측은 손해배상 인정 판결에 대한 양 전 대법원장의 부정적 입장을 확인한 뒤 법원행정처 수뇌부와 적극 접촉해 '판결 뒤집기'를 시도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김앤장 송무팀을 이끄는 한 모 변호사를 2013년 3월 직접 만나 "2012년 대법원 판결 선고 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해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일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도 모르겠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이후 김앤장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현홍주 전 주미대사 등 전직 외교부 고위공무원과 법관으로 구성된 강제징용 사건 대응팀을 만들어 양승태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수시 접촉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강제징용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면 외교부의 공식적인 의견이 필요하다면서 김앤장 측에서 '정부 의견 촉구서'를 제출하라는 '컨설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김앤장 측에서 써온 촉구서를 직접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김앤장 측에 "(외교부에 지금) 촉구서를 내라, 주심 김용덕 대법관과도 얘기가 됐다"고 문서 제출 시기까지 세밀하게 조율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김앤장이 촉구서를 제출한 직후인 2016년 10월쯤 한 변호사를 만나 "잘 되겠지요"라며 전원합의체를 통해 청구 기각 판결을 내주겠다는 취지의 말도 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이 최소 네 차례에 걸쳐 한 변호사와 직접 만나 전원합의체 회부 등 일본 전범기업이 원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해 줄 것이란 점을 전달했다"고 적시했습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국회 입법 추진에 반대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2015년 국회에서 '일제강점하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되자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은 박병대 전 대법관,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법률안이 제정될 경우 소급 입법에 해당해 위헌 시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보고했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기산점으로 삼아 민법상 소멸시효 3년이 지나도록 재상고심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승인 아래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법률 제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고, 법안은 결국 2016년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2000년과 2005년 각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2심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파기 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이 2013년 7월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해 사건을 다시 대법원이 넘겨받았으나, 양승태 대법원은 이후 5년간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한일관계를 고려해 소송 결과가 번복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