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게이와 이방인 : 관용의 경제학

대한민국과 난민, 솔루션 저널리즘 ③편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19.02.08 13:59 수정 2019.02.11 0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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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본령은 감시와 비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냉소를 불러 민주주의를 되레 침식시킬 수 있습니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언론이 흔히 즐겨 쓰는 '법 개정', '처벌 강화', '지원 확대' 같은 표제어가 꼭 솔루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변화를 위한 상상력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데이터 저널리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데이터 없이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적확한 솔루션도 어렵습니다. 솔루션에는 데이터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루션이 어려운 주제로 모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멘 난민 논란으로 촉발된 이방인에 대한 혐오 문제입니다. 워낙 반감이 거세 기자로서 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난민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려 합니다. 솔루션의 밑천은 데이터에 있는 만큼, 데이터 분석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난민의 사회학 : 낯선 자에 대한 공포
② 98년생 김철수 : 블루칼라의 반란
③ 게이와 이방인 : 관용의 경제학
④ 이방인의 변호권 : 이자스민의 추억
⑤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 미국 하이테크 도시 TOP 25

역시 미국 사례로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표는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가 꼽은 하이테크 산업이 발전한 미국의 25개 도시의 순위입니다. 2018년 발표된 리포트인데, 2017년 기준입니다.
관련 사진1위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입니다. 산호세는 첨단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로 유명한 곳입니다. 2위는 역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3위는 수도인 워싱턴 DC입니다. 보스턴과 시애틀, 뉴욕, 시카고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들이 많이 포함됐습니다. TOP 25에는 캘리포니아의 도시들이 유독 많았는데, 1위를 한 산호세를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오클랜드, LA와 오렌지 등이 포함됐습니다.

앞서 ①편 '낯선 자에 대한 공포'와 ②편 '블루칼라의 반란'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위해 외국 태생 인구(Foreign Born Persons)의 비율과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의 득표율 데이터를 분석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의 인기 비결은 그의 '아메리칸 퍼스트', 이른바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지역일수록 이방인에 대한 반감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석 전 가정은 이랬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중요했다면, 트럼프는 이방인이 많은 지역의 토박이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미국의 각 주(州) 별 이방인 규모의 척도로 '외국에서 태어난 인구 비율'로 삼았습니다. 미국의 각 주(州) 별 이방인에 대한 반감의 척도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득표율'로 정했습니다. 미국의 정치학계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측정할 때 트럼프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각 주(州) 별 이방인 규모 :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인구 비율
미국 각 주(州) 별 이방인 반감 : 2016년 대선 트럼프 득표율


결과는 분석 전 가정과 정반대였습니다.

"이방인이 많은 곳이 오히려 트럼프 득표율이 낮았다. 즉, 이방인이 많은 곳일수록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낮은 걸로도 분석된다."

하이테크가 발달한 미국 도시 TOP 25에 이런 분석을 적용시켜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지표는 하이테크가 발달한 TOP 25의 외국에서 태어난 인구(Foreign Born Persons) 비율입니다. ①편 '낯선 자에 대한 공포'에서는 미국 통계청 자료를 활용했는데, 여기서는 국가 통계 사이트 인덱스 문디(Index Mundi)를 참고했습니다. 개별 도시별 통계는 인덱스 문디의 자료가 잘 정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점 이하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두 번째 지표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각 TOP 25의 득표율입니다. 이들 도시의 이방인에 대한 반감의 척도로 쓰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의 인포그래픽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자료 : Presidential Election Results, 뉴욕타임스)

TOP 25 이방인 규모 :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인구 비율
TOP 25 이방인 반감 : 2016년 대선 트럼프 득표율


그리고 TOP 25의 트럼프 득표율과 외국 태생 인구 비율 옆에는 그 도시가 소속된 주(州)의 평균을 기재했습니다. 주변 도시와 비교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사진미국의 하이테크가 발달한 TOP 25 도시는 상대적으로 트럼프 득표율이 매우 낮았습니다. TOP 25 평균이 25%를 밑돌았습니다. 반면, 외국에서 태어난 인구 비율, 즉 이방인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TOP 25 평균이 20%에 가까웠습니다.

캘리포니아나 뉴욕같이 이방인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곳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 남부 텍사스 주는 공화당 지지자가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멕시코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히스패닉 문제에 꽤 민감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텍사스의 트럼프 득표율은 52.2%였습니다. 그런데 하이테크가 발달한 텍사스의 오스틴이나 달라스는 트럼프 득표율이 각각 27.1%, 34.6%에 그쳤습니다. 이곳은 텍사스 내에서도 이방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텍사스 평균은 17%인데, 달라스는 23.1%였습니다.

미주리 주는 이방인 비율이 4.1%, 트럼프 득표율은 56.4%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미주리 주에서 하이테크가 발달한 캔자스시티는 트럼프 득표율이 38.1%에 그쳤습니다. 이방인 비율은 5.7%였습니다.

하이테크가 발달한 곳에서 트럼프 득표율이 낮았다는 것, 즉,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덜 하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이테크 산업의 발달 수준과 이방인의 규모, 이방인에 대한 반감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뉴욕의 게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게이와 이방인

사실 위의 데이터 분석과 유사한 선행 연구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의 석학 리처드 플로리다의 연구를 참고했습니다. 플로리다는 도시 연구의 권위자로 꼽힙니다. 그가 만들어낸 '창조 계급'과 지역 개발의 개념은 많은 나라에 국가 경영의 영감을 줬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도, 실제로 거리감은 있지만, 그의 '창조 계급'을 참고한 사례로 꼽힙니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의 다양성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로 게이들의 밀집도를 삼았습니다. 게이 지수(Gay Index)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첨단 산업이 발전한 도시 순위와 그 관련성을 분석했습니다. 다음 표는 그 결과물입니다. 그의 2002년 논문인 '기업가 정신과 창조성, 지역개발'(Entrepreneurship, Creativity, and Regional Development)을 참고했습니다.
관련 사진결론은 하이테크가 발달한 도시일수록 게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990년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LA, 워싱턴 DC, 애틀랜타는 하이테크 TOP 10 도시임과 동시에 게이 지수 TOP 10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한 분석 역시 같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LA, 달라스, 애틀랜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게이가 똑똑해서 첨단 산업이 발달했다는 건 아닙니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그 맥락을 분석합니다. 게이 공동체를 받아들일 만큼 관용이 있는 곳에 다양한 인재들이 몰린다는 겁니다. 다양성, 개방성에 근거한 관용의 문화가 첨단 산업의 발달, 나아가 경제에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플로리다의 최근 저서인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에서도 이런 맥락이 담겼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도시와 대도시 지역은 이른바 '경제 발전의 3T', 즉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 측면에서 탁월한 곳이었다. 이들 도시는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지이며 인재를 배출하는 훌륭한 학교 시스템과 연구 대학을 갖추고 있으며 개방적이고 관용적이어서 성별, 인종, 민족, 성적 취향에 개의치 않고 인재를 끌어모으고 유지할 수 있었다.

- 리처드 플로리다, 안종희 옮김, 2018,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매경출판, 10쪽

'동성애는 사회적 다양성의 마지막 전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성애자에 관대한 지역은 모든 종류의 사람을 환영할 준비가 돼 있을 겁니다.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위 데이터 분석에서 알 수 있듯 첨단 산업이 발달한 곳은 이방인도 많았습니다. 이방인들이 첨단 산업의 발달을 추동했다는 게 아니라, 타자를 품을 수 있는 시선이 있는 곳에 다양한 인재가 몰리고, 그러게 경제적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 한국인은 어디에 많이 살까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디에 많이 모여서 살까요.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도 이른바 '관대한 지역'에서 많이 살고 있을까요.

리처드 플로리다가 게이 밀집도 순위와 하이테크 발달 순위를 비교한 방식을 활용해보려 합니다. 미국의 주(州한) 별 한국인 밀집도와 이방인에 대한 반감을 토대로 분석을 해봤습니다.

한국인 밀집도는 미국 이민정책 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의 2017년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각 주별 한국 출신 인구, 정확히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통계입니다.

이방인의 반감을 알기 위한 척도로는 이번에도 트럼프 득표율을 활용했습니다. 기존 데이터 분석에는 득표율을 그대로 활용했는데, 이번 분석에는 리처드 플로리다가 했던 대로 순위로 따져봤습니다. 트럼프 득표율이 적은 순서, 즉,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적은 순위입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관련 사진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주(州) 별로 10위까지 나열했습니다. 그 옆에는 트럼프 득표율이 낮은 순위입니다. 한국인 밀집도 TOP 10은 트럼프가 득표율이 낮은 10곳 가운데 5곳과 겹쳤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은 미국에서도 유난히 트럼프 지지율이 낮은 곳이었습니다. 워싱턴, 일리노이, 메릴랜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주목할 곳은 캘리포니아입니다. 캘리포니아에 한국인 출신이 많이 사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앞서 하이테크가 발달한 TOP 25 도시 가운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도시가 6곳이나 있었습니다.

①편 '낯선 자에 대한 공포'에서 캘리포니아 사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유난히 이방인이 많은 지역입니다. 일하다가 만나는 사람 10명 중 한 명이 이른바 '불법 체류자'입니다. 반면, 트럼프 득표율이 가장 낮은,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는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했던 곳입니다. 외국인이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토박이들의 저항이 시작됐고, 이방인을 차별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들과 소통이 늘면서 오해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을 차별하는 법을 폐지하는 데 앞장서는 토박이들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캘리포니아는 이방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됐습니다. 물론 캘리포니아가 완전히 평등한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사회에서 캘리포니아는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 한 곳이었습니다. 이방인이 모이는 만큼 인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GDP가 가장 높은 곳입니다. 한국의 2배, 프랑스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즉, 우리 역시 미국의 '관대한 지역'을 선호한 역사, '관대한 지역'에 편입해 그 지역의 경제에 기여했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미국 이민자 캐러밴 철조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돈이 드는 관용 vs 돈이 되는 관용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당연한 본능입니다. 그 공포를 자극하는 사회적 환경도 있습니다. 이방인을 수용했을 때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 그들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공포는, 우리 사회가 '관용의 비용'에 그만큼 예민하다는 걸 뜻합니다.

물론, 관용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관용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입니다. 관용은 이득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규범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이방인 공포는, '관용은 손해'라는 경제적 관점이 두껍게 깔려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관용의 이윤'은 '관용의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반론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이유로 공포를 느낀다면, 이 문제를 풀 열쇠 역시 경제적 근거에서 찾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관용의 경제성을 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은 지금까지 논의와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공포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 방식을 풀어보겠습니다. 어쨌든 상대에 대한 반감을 거칠게 표현하는 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19대 국회에 출입했을 당시, 이방인 출신으로 우리 사회 반감의 대상이 됐던 이자스민 전 의원에 대한 사례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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