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난민의 사회학 : 낯선 자에 대한 공포

대한민국과 난민, 솔루션 저널리즘 ①편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19.02.06 10:18 수정 2019.02.11 08: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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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본령은 감시와 비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냉소를 불러 민주주의를 되레 침식시킬 수 있습니다. 비판을 넘어 대안을 찾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언론이 흔히 즐겨 쓰는 '법 개정', '처벌 강화' 같은 표제어가 꼭 솔루션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변화를 위한 상상력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이 그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데이터 저널리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데이터 없이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적확한 솔루션도 어렵습니다. 솔루션에는 데이터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루션이 어려운 주제로 모험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멘 난민 논란으로 촉발된 이방인에 대한 혐오 문제입니다. 워낙 반감이 거세 기자로서 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난민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해법이 무엇인지 곱씹어보려 합니다. 솔루션의 밑천은 데이터에 있는 만큼, 데이터 분석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난민의 사회학 : 낯선 자에 대한 공포
② 98년생 김철수 : 블루칼라의 반란
③ 게이와 이방인 : 관용의 경제학
④ 이방인의 변호권 : 이자스민의 추억
⑤ 순수(純粹)로부터의 해방

● 이방인과 토박이

2016년 미국 대선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거셌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이민자와 미등록 외국인, 난민, 히스패닉은 공동체에 무임승차해 미국인들의 삶을 갉아먹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방인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트럼프의 구호는 대중의 거친 무의식과 결합하며 호응을 얻었고,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그를 미국의 45대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놨습니다. 아메리칸 퍼스트. 달리 말하면, 아메리칸이 아닌 이방인을 배제할 수 있다는 자유 이용권과 같았습니다.

트럼프가 이방인에 대한 반감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미국 대중이 그의 메시지에 열렬히 환호했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서 트럼프에게 가장 큰 환호를 보냈을까요. 조금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떤 주(州)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이 높았을까요. 논의의 가정은 이렇습니다.

"이민과 난민,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중요했다면, 트럼프는 이방인이 많은 지역의 토박이들에게 큰 지지를 받아야 한다."

당연한 말입니다. 이방인이 불편하다면, 토박이들이 불편함을 느낄만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환경은 이방인을 자주 마주칠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환경을 경험하고, 범죄를 일으키는 소식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각 주(州)별 '외국 출생 인구'와 '트럼프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두 가지 지표를 활용했습니다.

첫 번째 지표는 미국 각 주(州)별 외국 태생 인구(Foreign Born Persons)의 비율입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른바 토박이가 아닌 사람들의 규모입니다. 귀화 외국인을 비롯해 영주권자, 난민, 미등록 외국인 등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단일민족 국가인 우리에게는 낯선 말이지만, 미국에서는 인종 다양성 등을 학술적으로 파악할 때 흔히 쓰는 지표입니다. 미국 통계청의 커뮤니티 조사 결과입니다. 미국 대선이 있었던 2016년 자료입니다. (자료 : Foreign Born Persons, Percent, 2016, U.S. Census Bureau's American Community Survey)

두 번째 지표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득표율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반감의 척도로 쓰려고 합니다. 실제 미국의 정치학계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측정할 때 트럼프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인포그래픽 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자료 : Presidential Election Results, 뉴욕타임스)

미국 각 주(州)별 이방인 규모 :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인구 비율
미국 각 주(州)별 이방인 반감 : 2016년 대선 트럼프 득표율


두 지표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위의 명제를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데이터를 표로 정리했습니다. 미국 각 주의 외국 태생 인구 비율, 즉, 이방인이 많은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은 각 주별 트럼프의 득표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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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캘리포니아가 27.2%로 가장 높았습니다. 뉴욕, 뉴저지 순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1.7%로 가장 낮았습니다. 트럼프 득표율은 어떨까요. 이방인이 많은 캘리포니아나 뉴욕, 뉴저지는 40%를 밑돌았습니다. 반면, 외국 태생 인구가 5% 아래로 떨어지는 16개 주의 경우 대부분 트럼프에 대한 득표율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트럼프는 이방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득표율이 낮았고, 오히려 이방인을 별로 마주치지 못하는 곳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데이터 분석의 가정은 "트럼프는 이방인이 많은 지역의 토박이들에게 큰 지지를 받아야 한다."였지만, 오히려 결과는 반대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누군가 반박할 것 같습니다. 이방인 규모를 나타내기 위해 쓴 '외국 태생 인구'에는 귀화 외국인도 포함됩니다. 귀화 전에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을 배척하는 트럼프에게 투표를 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좀 복잡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외국 태생 인구 가운데 투표권이 있는 귀화 인구를 아예 빼고 계산했습니다. 투표권이 없는 이방인을 '진짜 이방인'으로 치고, 따로 떼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즉, 투표권이 없는 비시민권자(noncitizen)의 비율로 다시 분석했습니다. 귀화한 사람까지 제외한 '원래부터 토박이'들의 표심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역시 자료는 2016년 미국 통계청의 커뮤니티 조사입니다. 비시민권자의 인구 비율을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역시 그 옆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입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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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인구를 포함했던 외국 태생 인구 비율과 비교했을 때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뒤로 갈수록, 즉, 진짜 이방인이 줄어들수록 트럼프의 득표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방인 규모'와 '반감'의 상관관계

정밀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이방인이 사는 규모와 트럼프 득표율의 상관성을 좀 더 통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상관 계수 값을 활용하려 합니다.

상관 계수는 두 지표의 상관성을 알아볼 때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통계 기법입니다. 상관 계수 값은 반드시 -1과 1 사이에 위치하는데, -1에 가까울수록 강한 음의 상관관계, 1에 가까울수록 강한 양의 상관관계입니다. 0에 가깝다면 상관성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0.5 이상 혹은 -0.5 이하면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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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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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음의 상관관계입니다. 주별 이방인의 규모와 트럼프 득표율의 상관 계수는 -0.63이었습니다. 비시민권자만 따로 추려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상관 계수는 -0.60이었습니다. 이방인이 많은 곳일수록 트럼프의 득표율은 낮았고, 반대의 경우 트럼프 득표율이 높았습니다.

의외의 결과입니다. 이민자나 난민, 미등록 외국인 같은 사람들이 싫어서 트럼프를 찍었다면, 트럼프는 이방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자주 접해보지 못한 지역에서 트럼프의 '아메리칸 퍼스트'에 환호했습니다. 이방인을 자주 접해본 지역은 트럼프의 메시지를 별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통계적 이상치일까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유럽도 비슷했습니다. 유럽 역시 이민과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혐오 범죄나 테러리즘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습니다. 트럼프처럼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반감에 편승해 지지를 얻으며 세(勢)를 얻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대안당(AfD) 등입니다. 모두 외집단에 대한 반감을 주요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이방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이방인이 많은 지역은 이들을 별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9월 독일의 연방 선거에서 AfD는 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외국 출신 인구가 가장 적은(4% 미만) 작센주에서 다른 모든 정당을 쓰러트렸다. 비슷하게, 2015년 12월 결선투표에서 마린 르 펜(국민연합 전 당수)은 프랑스의 노드-파-드-칼레-피카르디 지역, 현지 인구의 5% 미만이 외국 출신인 곳에서 42%의 득표를 기록했다. …… (이방인에 대한 반감에 편승하는 세력은) 폴란드와 헝가리 같은 중부 유럽 국가에서 특히 위력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과거 10년 동안 매우 이민 증가율이 낮았고 현재는 서부의 이웃 국가들보다 훨씬 더 민족적으로 동질하다.
 
-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18, 224쪽
난민심사
● 공포와 불안의 방정식
 
우리는 이방인 비율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이 덜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방인이 많이 사는 곳은 이들과 소통을 자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인종적 동질성이나 순수성에서 자유롭습니다. 반면, 외딴 지역에서 이방인을 자주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과 소통할 기회나 신뢰를 구축해 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낯선 자에 대한 공포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방인에 대한 반감의 근거는 '현실의 구체적 경험'이라기보다는 '미래의 막연한 공포' 혹은 '불안감'에 근거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하고 있다고 타박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막연할 때 더 불안하고 더 무섭습니다. 당연합니다. 공포는 원래 그렇습니다. 군대 가기 전날이 입대했을 때보다 더 초조한 법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는 비관적 상상력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군대 가서 훈련받다가 크게 다치는 것 아닐까, 고참한테 갈굼 당하다 사고 치는 건 아닐까, 이런 식입니다. 원래 공포는 예측 불가능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난민 사태를 다뤘던 방식 역시 공포와 불안이 본질이라고 진단합니다. 사실 우리는 예멘이란 나라에 대해 막연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난민이 어떤 존재인지도 불확실합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아는 이슬람은 테러리스트가 많은 곳이고, 부인을 여럿 거느릴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인 예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멘 난민도 잠재적 테러리스트, 잠재적 성범죄자일 수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와중에 나왔던 수많은 혐오 표현은 공포와 불안의 상형문자였을 뿐, 세상이 각박해서, 우리가 인격적으로 못나서, 도덕과 윤리가 어그러져서 그랬던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멘 난민을 두려워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 지식인들의 접근 방식은 이런 본질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언론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난민에 대한 공격을 그대로 전달한 보도는 차치하더라도, '가짜 뉴스'라며 '진실'을 가르치려 들거나, 난민을 동정하며 '인권'을 훈계했던 보도가 많았습니다. 무섭고 불안하다는데, 공자님 말씀하면 기분 더 나쁩니다. 난민 관련 보도의 댓글에 '기레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던 이유는, 이런 식의 '훈계 저널리즘'에 대한 불쾌감이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이방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 가짜 뉴스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심한 경우 법적 처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본질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공포와 두려움, 불안의 방정식을 어떻게 풀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우리의 미래, 나아가 국가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변형시킬만한 가공할 위력이 있습니다.

공포가 과장됐을지라도, 이들이 그렇게 느낄 만한 상황을 인정해야 대안이 나옵니다. 고작 몇백 명의 난민을 왜 두려워하느냐, 왜 이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가정하느냐 타박해선 안 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두려움이 증폭되는 건, 우리가 마냥 겁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공포와 불안이 돌아가는 방식 때문입니다.
미국 이민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캘리포니아의 이방인

이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분석한 데이터 가운데 캘리포니아 사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유난히 이방인이 많습니다. 미국 사회 논란이 되고 있는 히스패닉 비율이 40%에 달하고, 미국 미등록 외국인의 4분의 1이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합니다. 노동자 가운데 9%가 미등록 외국인입니다. 일하다가 만나는 사람 10명 중 한 명이 이른바 '불법 체류자'라는 얘깁니다.

반면, 유난히 트럼프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곳이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는 이민자나 미등록 외국인, 난민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지역으로 통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지상 낙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캘리포니아가 미국 내에서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가장 적은 곳 가운데 하나라는 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 역시 이방인에 대한 반감은 매우 거셌습니다. 1980년대 이방인들이 대거 들어온 게 계기가 됐습니다. 불과 10년 새 외국 태생 인구 비율은 15%에서 22%까지 치솟았습니다. 토박이들의 저항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피트 윌슨 주지사는 이런 반감에 편승해 지지를 얻었습니다. 반감은 금세 제도화됐습니다. 주민투표로 '법안 187'이 통과됐습니다. 미등록 외국인의 자녀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했고,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의료 조치를 금지했던 매우 강력한 법이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가 캘리포니아를 연방법원에 제소하면서 법은 시행되지 못했지만,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이방인의 반감과 공포, 두려움이 얼마나 거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 토박이들은 이방인을 자주 마주치며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학습해 나갔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그렇게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가장 관용적인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민자를 차별했던 법을 폐지하는 데 토박이 백인들이 앞장섰습니다. 이방인들이 더 모여들었습니다. 성소수자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핑크 경제라는 거대 산업을 창조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효과를 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GDP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2배, 프랑스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이방인에 대한 지난한 역사는 우리의 자화상과 같습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마저도 새로운 이방인이 급증한다는 건 불편하다 못해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공포를 줄일 수 있었던 건 그들과의 지속적인 접촉과 소통 때문이었습니다. 막상 이야기해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상대에 대한 막연함을 줄여나갔습니다. 정책적 지원도 있었습니다. 이방인을 맞이할 여건과 시설이 조금씩 체계를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적으로 준비가 돼 있다는 자신감은 공포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이건 정부의 몫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았던 지역은 이방인에게 더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유독 이방인 공포가 더 심한 이유일 겁니다. 사실 예멘 난민 사태가 그리 새로울 건 없었습니다. 미등록 외국인,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 역시 불편함은 축적돼 왔습니다. 외집단에 대한 혐오가 거세지고 있었던 상황 속, 예멘 난민 입국과 맞물리며 곪았던 반감이 터진 결과였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사례는 타자에 대한 막연함을 우리와 소통하는 상대로 구체화시킴으로써 공포를 극복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천천히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공포를 가장 절실히 느끼는지 사람이 '누구인지'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를 분석하면 구체적인 해법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