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갑작스러운 외모 변신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평소 안경을 잘 쓰지 않는 아베 총리는 지난달 30일 정기국회에 출석해 각 당 대표 질의에 답변하는 시간이 되자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등단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정기국회 개원 때와 이튿날 있었던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영접 때도 쓰지 않았던 안경이었습니다.
아베 총리의 뿔테안경이 새삼 주목받은 것은 안경을 착용한 그의 모습이 부친을 빼닮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입니다.
집권 자민당의 가토 가쓰노부 총무회장이 제일 먼저 그 점을 거론했습니다.
그는 지난 1일 기자들에게 아베 총리가 검은 뿔테안경 낀 모습을 보고는 그의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친은 외무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로, 친한파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일제 시절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하며 반전과 평화주의를 주창했던 아베 간의 아들인 신타로 전 외무상은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54년 당시 외무상이던 기시 노부스케의 비서로 정치에 몸담았습니다.
신타로는 훗날 기시의 장녀와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가 아베 총리입니다.
이런 얽힘으로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기시는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태평양전쟁 막판에 도조 히데키 당시 총리와 대립한 점 등이 참작돼 기소되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기시는 이후 총리 자리까지 올라 미국과의 신안보조약 체결을 이끌어 '쇼와의 요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보수우파의 대부로 명성을 날렸지만 이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 여파로 결국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신타로는 일본 정계 거물인 기시의 사위로 1958년 총선 때 야마구치현에서 34세의 젊은 나이로 당선한 뒤 관방장관, 자민당 정조회장,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하며 총리 자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1991년 췌장암으로 숨졌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일본 사람들은 검은 뿔테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정치 분석가들은 아베 총리가 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 뿔테안경을 새삼스레 쓰기 시작한 배경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성장 과정에서 평화주의를 좇은 친할아버지보다는 전범으로 지목됐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경화와 군국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여온 그의 행보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의 부친인 신타로 전 외무상은 주변에서 '기시의 데릴사위'라는 말을 가끔 듣곤 했는데, 그 말을 무척 싫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아베 간의 아들'이라며 평화주의를 주창했던 아버지의 기개를 존경한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그런 아버지의 화신처럼 외모를 바꾼 아베 총리의 향후 행보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됩니다.
(사진=UPI, 연합뉴스/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