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국빈급 대우' 북한 공연단…중국의 속내는?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9.02.02 09:38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북한 예술단원들이 베이징역에 도착,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1월 24일 오전 10시, 평양발 특별열차가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을 왔다 간지 보름 만에 평양서 출발한 특별열차가 또 왔습니다. 이번엔 북한 예술공연단입니다. 이미 베이징 공연이 예고된 상황이라 베이징역 앞엔 각국 언론 매체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역 주변 경비가 심상치 않습니다. 곳곳에 깔린 공안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취재진의 신분증을 요구하며 이름도 적어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방중 때보다 더 삼엄한 분위기. 그러다 보니 북한 공연단이 베이징역에 도착해도 촬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 일본 매체에 잡힌 짧은 영상이 특종이 되버린 상황. 공연단이 탄 버스만 하염없이 찍고, 또 찍었습니다. 역에서 호텔까지는 불과 2~3킬로미터에 불과한 거리. 공연단이 머물 호텔 정문도 공안들이 가득했고, 호텔 앞 대로변에도 경비 인력이 돌아다녔습니다. 호텔은 예약이 금지된 상태. 외부인은 누구도 북한 공연단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한 중국TV 기자가 푸념하듯 한마디 뱉더군요. "어느 나라 장관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국빈 못지않은 극진한 환영이었습니다.
북한 모란봉악단의 2015년 중국 방문 당시 모습 시계를 2015년 12월로 돌려봅니다.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을 방문했습니다. 모란봉 악단은 북한판 걸그룹이라며 관심이 컸었죠? 당시 모란봉 악단도 베이징 시내 중심가의 한 호텔에 묵었습니다. 이번 공연단 방문 때와 달리 언론 매체들이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호텔 로비를 오가는 단원은 물론 현송월 단장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현 단장은 취재진들의 인터뷰 요청에도 거침없이 응했었죠. 현 단장이 들고 다니던 명품 핸드백까지도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공연은 불발됐습니다. 공연 시작 4시간을 앞두고 공연을 전격 취소하고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공연무대 배경에 등장하는 미사일 장면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측이 교체를 요구하자, 현송월 단장이 미련 없이 귀국해버렸다는 겁니다. 모란봉 악단의 돌연 철수는 언론 매체에도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갈등 상황이 여과 없이 그대로 알려진 상황입니다. 양국 우호를 다지겠다던 공연은 오히려 양국 관계를 꽁꽁 얼려버렸습니다.
북한예술단 공연 팜플렛다시 1월 26일로 돌아옵니다. 북한 예술공연단은 베이징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말 그대로 꼭꼭 숨었습니다.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숙소와 5분 남짓 거리인 국가대극원 공연장을 오가는 버스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국가대극원 남서쪽 차량 출입구에 기다려봐도 공연단원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외신 매체들도 손을 들어버린 상황. 공연단의 리허설 모습을 취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연 스케줄도 오리무중. 26일부터 28일 사이일 것으로 알려는 졌지만, 누구도 그게 확정된 스케줄이라고 확인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공연을 관람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3년여 전 모란봉 악단은 공연 티켓을 판매했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취재진 입장에선 하염없이 국가대극원을 배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다만 북한 공연단 공연 장소가 국가대극원 안 가극원(오페라 하우스홀)임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공연장은 일반 공연이 진행됐지만, 오페라 하우스홀은 계속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 시각도 저녁 7시 반쯤으로 예상했습니다. 공연 시각 두 시간 전까지도 별 움직임이 없었는데, 저녁 6시가 넘어가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공연장으로 중국 관원,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갑자기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은 북한 공연단 공연을 보러왔냐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 관람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공연장 입구에 설치된 안면 인식기로 실명 인증을 하고, 순식간에 오페라 하우스홀로 들어갔습니다. 비밀 작전 같던 북한 예술단의 베이징 첫 공연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3년여 전 모란봉 악단 공연 때와는 이렇게 확연히 달라진 북한 공연단의 보안경비 수준은 중국의 의지일 거라는 게 외교가의 분석입니다. 북한은 공연단이 평양을 출발할 때부터 영상을 공개한 것만 봐도 딱히 비밀스런 공연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 원수도 아니고, 예술공연단을 위해 중국에 이렇게까지 보안경비를 요구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동원되는 인력이나 비용 따져보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왕 북·중 우호를 과시하러 간 것인데, 북한은 공연단이 외부에 많이 노출될수록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중국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 이유를 한 외교가 소식통은 모란봉 악단 철수 트라우마를 지목했습니다. 북한 공연단이 외부로 너무 많이 노출된 게 당시 패착으로 판단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북·중 간 조그마한 마찰도 고스란히 외부로 알려지는 게 얼마나 수습하기 어려운 일인지 직접 체험했던 거죠. 그래서 중국은 이번에도 혹시나, 행여나 하는 마음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북한 공연단을 아예 노출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는 겁니다.
중국 베이징 대극원에서 열린 북한 친선예술단 공연 모습북한 공연단의 첫 공연이 끝난 다음 날인 27일은 국가대극원 전체가 완전히 비워졌습니다. 모든 공연이 취소됐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오는지 감이 옵니다. 시진핑 주석이죠. 시 주석은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지난해 4월 중국 예술단이 평양 공연을 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리설주 여사와 함께 관람했던 것처럼 시 주석도 똑같이 부부동반 모양새를 그대로 갖췄습니다. 1시간 반 동안의 공연이 끝난 뒤 시 주석은 무대로 올라가 공연단을 직접 격려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어색한 포즈도 취하고. 이 장면도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과 그대로 겹칩니다. 극진까지는 그렇더라도 최대한 성의 표시를 하려는 게 충분히 눈에 보일 정도였죠. 다음날인 28일도 마찬가집니다. 중국 권력서열 '넘버 쓰리'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춘절 맞아 안 그래도 바쁠 중국 최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공연을 봤습니다. 대단한 예술 공연도 아니고, 북·중 우호를 찬양(?)하는 공연에 중국이 이렇게까지 성의 표시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메시지라는 이야기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계자와 인사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북한 예술공연단의 베이징 공연이 뭐 그리 대단한 이벤트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적어도 공연 내용만 놓고 보면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북한 공연단의 3년여 만의 방중, 이를 대하는 북·중 양국의 태도나 속내를 생각해보면 분명 함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4차례 방중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북한과 중국은 지난해 서로가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미국을 상대로 한 지렛대로 충분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서로 간의 필요성이 확인된 이상 좋든 싫든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겉으론 더 성의있게 잘 대접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 아닐까요? 이왕 대접할 바엔 확실하게 티 내는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중국 베이징 대극원에서 열린 북한 친선예술단 공연 모습중국 입장에선 북한이 가장 절실한 먹고 사는 문제에 현재로선 딱히 도와줄 수 없는 현실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과의 대규모 경제원조나 협력은 대북제재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임을 강조하는 중국으로선 유엔 제재를 거스르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모순입니다. 하지만 인적, 문화 교류는 예욉니다. 얼마든지 북한이 섭섭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해 줄 수 있는 분야는 확실하게, 때론 과하게 해줘야 하는 건 인간사 미덕 아닐까요? 3년여만의 북한 예술 공연단에 대한 국가원수급 환대는 중국의 이런 속내를 읽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