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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환기 블루'의 최고봉을 만나다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은 흥선대원군이 사랑했던 정자 석파정(石坡亭)을 정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2012년. 그해 가을에 미술관에 갔었습니다. 미술관보다는 단풍이 곱게 든 정원과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한옥, 그리고 북악산과 이어지는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석파정을 보며 가을 정취를 한껏 즐겼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생각하며 '한 번 더 와 봐야지' 했지만 다시 가보진 못했습니다.
서울미술관 내 정원
7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 정원은 겨울이라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고풍스러운 한옥과 오래된 나무들이 더욱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안동, 영주, 구례 등에서 공수한 수백 년 수령의 모과나무, 회화나무, 산수유 등을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정원 풍경을 미술관 3층에서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거인展, 서울미술관 신관
개관 7년을 맞아 새로 신관을 지어 기념 전시를 합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데 특히 지하 1층은 층고가 5m나 돼 커다란 작품들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환기 블루" 시대 최고봉으로 꼽히는 김환기의 작품 <십만 개의 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김환기,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1973, 면천에 유채, 263x205cm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액자 틀이 발광하는 것처럼 신경 쓴 조명도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큰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폴 자쿨레展, 서울미술관 신관 2층 전시관
신관 2층에서는 '아시아를 그린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폴 자쿨레(Paul Jacoulet)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20여 점이 전시됩니다. 신관 전시회를 직접 기획했다는 안병광 회장으로부터 폴 자쿨레전 기획 의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 회장이 미술품 수집에 나서게 된 계기는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였습니다.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다가 눈에 띈 것이 건물에 전시된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황소가 여전히 앞으로 전진하려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작품 인쇄물을 7천 원에 사 아내에게 선물하면서 "언젠가 원작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겁니다. 30여 년 후 안 회장은 결국 이중섭의 <황소>를 사게 됐고, 국내 경매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그 뒤부터 이중섭의 <황소>를 계속 수집했습니다. 이 중 하나인 <싸우는 소>를 지난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마음먹고 100만 달러를 불렀는데, 85만 달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팔지 않았답니다.
이중섭, 싸우는 소, 1955, 종이에 애나멜과 유채, 27.5X39.5cm
안 회장은 '왜 우리 작가 작품은 가치를 높게 쳐 주지 않는가'며 아쉬운 마음에 팔지 않았고, 뉴욕의 한 교포가 이중섭의 작품을 싸게 팔지 않아서 고맙다며 폴 자쿨레의 그림을 하나 선물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그의 작품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된 겁니다.

미술관 측은 신관 개관을 계기로 미술관 문턱을 더욱 낮춰 젊은이들도 자주 찾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정원만 따로 볼 수 있는 입장권 등 입장권을 다양하게 나누고 각종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안 회장은 "잔칫집에 손님 많으면 마음이 뿌듯한 것처럼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면 부자 된 것 같아요"라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미술품들을 보면서 지나치게 감정적이기보다는 감성에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암동 서울미술관 신관 전경
부암동에 자리 잡은 서울 미술관은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은데 특히 광화문에 시위가 있으면 차가 꼼짝을 못 해 관람객이 확 줄어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미술관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수 있도록 (시위를 안 할 수 있도록) "제발 정치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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