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인 택시기사 얼굴로 주먹이 날아옵니다. 뒷좌석에서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는 승객. 택시기사가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요금을 내라고 하자, 이번엔 손목을 꺾습니다. 폭행은 차에서 내려서도 계속됩니다. 지난 11일, SBS 사회부에 들어온 제보 영상입니다.
☞ 참고 기사 : "손 뒤로 꺾고, 계속 폭행"…만취 승객에 맞는 택시기사
승객은 당시 만취해있었습니다. 왜 차를 빨리 세우지 않냐고 하더니, 폭행이 시작됐다는 게 택시기사 설명입니다. 10차선 도로, 5차선을 가는 동안 끊임없이 맞았다고 합니다. 택시기사 강 모 씨는 전치 3주 부상을 입었습니다.
4년 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한 강 씨.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또 노부모님 용돈도 드립니다. 하지만 3주 동안 아예 일손을 놓게 됐습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트라우마입니다. 강 씨는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눈을 감으면, 자꾸 그 날 승객에게 폭행당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강 모 씨/택시기사 :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그 생각이 자꾸 나니까. 힘들죠. 일 못하는 거도 속상하고... 무엇보다 운전대 잡기가 싫어요. 일 하기가 싫고. 그렇다고 손님이 많아서 술 취한 사람을 골라 안 태울 수도 없는 상황이고. 하기 싫어도 이게 직업이니까 뭐 어쩔 수 없죠. 낫고 나면 또 해야 되는 게 현실이고...]
● "맞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택시기사 A : 뭐 술 취해가지고 뒤에 타고 있다가 목적지 도착해서 깨우니까 막 주먹 휘두르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목적지에 다 왔는데 빨리 더 가라고 막 그런 사람 있었고.]
[택시기사 B : 저희는 안 맞고 했으면 제일 좋겠어요. 겁이 나요. 취객, 주취자를 태우면 목적지도 얘기 않고 무조건 그냥 가라고만 하고 어제 같은 경우는 세 바퀴를 돌렸어요. 세 바퀴. 주먹 날아오면 피하고 그랬어요, 넘어오면. 블랙박스에 다 있고 그래요. 근데 방법이 없잖아요, 승객인데.]
"택시기사 폭행은 하루에 2,3건씩 꼭 들어온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모 경찰서 형사과장 설명입니다.
● '보호 칸막이' 사업은 지지부진
사실 그동안 대책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3년, 국토부는 버스와 마찬가지로 택시도 운전자 보호 칸막이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서울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 여성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보호 칸막이 설치 시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칸막이 설치비용은 20-25만 원가량 드는데, 그 가운데 많게는 절반 정도를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취재해봤더니, 당시 설치한 건 고작 20여 대.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바로 중단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공약으로 내걸면서 5년 만에 다음 달부터 시범사업을 다시 합니다. 그런데 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 택시 전체 7만여 대 가운데 250대만 합니다.
다른 지역도 살펴봤습니다. 대구와 부산 역시 신청이 저조하단 이유로 지난해 시작했다가, 바로 사업을 접었습니다. 울산과 광주, 인천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 '머리 받침대'같은 '보호 칸막이'…있으나 마나
보호 칸막이가 설치된 택시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서울의 경우 현재 단 3대, 대구에는 단 2대만 설치가 돼있었습니다. 나머지 기사들은, 아예 칸막이를 떼 버렸다고 합니다. 이만큼 호응이 없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택시기사 C : 저는 승객이 하는 얘기 그대로 하는 거거든요. 걱정을 너무 해주니까. 타신 분마다 옆이 다 파였네, 손 다 들어가고, 손도 뻗어보면서 이래요. 손도 다 들어가고 다 붙잡겠네 뭐. 위에도 이게 뭐야, 여기 위를 더 막아야지. 이걸 왜 공간을 띄어놔 막 이러고요. 이거 너무 어설프게 해놨다는 거예요. 외국에는 아주 잘해놨다는 거예요. 앞에도 못 타게 한다든가. 외국에는 안전하게, 그렇게 해놨다고.]
그래도 뭐 여기까진 괜찮습니다. 대구 사례를 한번 보실까요?
● '니즈'를 반영한 디자인 필요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보호 칸막이가 유일한 대책이니만큼, 실효성을 높이려면 '니즈'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택시기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디자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현재 50% 수준에 불과한 재정 부담을 70-80% 정도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취 승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보다는 적다는 겁니다.
[안기정/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 연구위원 : '보호 칸막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지금 50% 수준인 보조금 지원을 70%, 80%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기사들이 꺼려한다는 건 결국 '보호 칸막이'가 사용자 편의적이지 않다는 뜻이니까, 되도록이면 이용하시는 기사 분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디자인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택시에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시민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개인택시 하시는 분들이 심야에 안 나오고, 초저녁에 퇴근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심야 시간에 택시가 부족합니다. 특히 고령 운전자들이 젊은 승객하고 마찰 빚는 것을 피해서 야간에 운행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보호 칸막이'는 그분들이 심야에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택시 승차난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속은 1%…'솜방망이 처벌'
지난해 택시기사, 버스 기사 등을 폭행해 검거된 피의자 2천8백여 명 가운데, 구속된 건 단 29명. 1% 수준입니다. 기사들은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폭행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술과, 심신미약에 관대했던 사회 분위기와 법이 한몫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처벌 강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매 맞는 택시기사' 란 표현을 자주 쓰게 되지 않기를, 해마다 나왔던 대책들이 더는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