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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의원과 판사 사이…'재판 청탁'의 재구성

[취재파일] 국회의원과 판사 사이…'재판 청탁'의 재구성
상고법원이 목적이면 재판 개입은 수단이었습니다. 청와대에 재판을 '협조 사례'로 홍보하던 법원행정처가 여야 국회의원을 상대로 재판 민원을 들어준 정황이 최근 수사결과 드러났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 추가 공소장과 법원행정처 문건을 토대로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둘러싼 국회와 법원행정처의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 상고법원 도입 둘러싼 국회 법사위 상황

2015년 상반기는 상고법원 도입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윌리엄 태프트(지금의 미국 연방대법원을 자리 잡게 만든 연방대법원장)를 언급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사법부의 제일의(第一義)로 삼았습니다.

당시 행정처는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2015년 하반기에 임종헌 실장은 '대법관 0순위'로 꼽히는 법원행정처 차장이 됩니다) 주도하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뜻을 관철시키려 상고법원 추진에 사력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말, 상고법원 법안은 국회의원 과반이 넘는 168명 동의를 받아 이미 발의가 됐습니다. 문제는 법사위 통과인데 상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법원행정처의 분석으로는 법사위 의원 다수가 상고법원에 반대했습니다.

<법원행정처 문건 中>
여당(새누리당) : 김진태, 김도읍 의원 등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반대
야당(민주당 등) : 전해철 의원 등 민변과 연계성이 강한 친노 의원들이 반대 세력을 형성,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극도의 반대 편향성'


● '재판 청탁' 사건 일지

2015.04.20 상고법원 설치 법사위 공청회 실시
법사위 공청회 다음날 법원행정처는 문건을 만듭니다. (2015.04.21 공청회 후 의원별 대응전략 문건) 상고법원에 대한 입장을 토대로 표를 셌습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공청회에서 '유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분류됐습니다.

법원행정처 문건(법사위원 입장 분석)

당시 법사위원이었고 상고법원에 반대의견을 냈던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은 "서영교 의원이 원래는 상고법원 안에 찬성을 했었다. 그런데 법사위 공청회에서 좀 유보적인 입장의 발언을 하면서 법원행정처는 다급해졌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2015.05.01 법사위 1소위 안건 상정됐지만 우선순위 밀려 논의 안 함
법사위 1소위에서 상고법원 안건 논의가 이뤄지지 않자, 며칠 뒤 법원행정처는 국회의원별 개별 접촉 및 맞춤 전략을 준비합니다. (2015.05.06 상고법원입법을 위한 대국회전략 문건)

행정처는 찬성 또는 유보 입장을 밝힌 의원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집약된 접촉 추진'이 필요하다며, 의원 별로 접촉 루트를 정리합니다. 서영교 의원과 노철래 의원의 경우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임종헌 전 차장과의 친분을 접촉 루트로 표시했습니다.
법원행정처 문건(노철래, 서영교 의원)
특히 전병헌 전 의원의 경우 '설득 거점 의원'으로 분류가 되어있는데 "개인 민원으로 법원에 먼저 연락"이 왔다며, 민원 해결을 매개로 상고법원을 설득 추진할 수 있다는 부분도 명시돼있습니다. 전병헌 전 의원은 2014년 11월 친척이자 자신의 보좌관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게 되자 임종헌에게 재판 선처를 부탁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문건(전병헌 의원 관련)

2015.05.18 서영교 의원 국회파견 판사에 재판 언급
이처럼 상고법원 법사위 통과가 점점 더 불확실한 상황에서, 법사위원이었던 서영교 의원이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 재판을 청탁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입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서영교 의원은 지역구에서 자신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 A씨의 아들 B 씨가 성범죄로 재판을 받게되자 국회 파견 판사를 의원실로 부릅니다. 서 의원은 판사에게 'B씨에 대해 벌금형으로 선처해달라'는 취지로 요청을 전달합니다. B씨 사건은 재판 선고를 3일 앞두고 있었습니다.

2015.05.19 임종헌 기조실장, 담당 재판부에 전달

국회 파견 판사는 요청 내용을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에게 전달했습니다. 다음날 임종헌 기조실장은 투 트랙으로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합니다. 먼저 B씨의 재판이 열리는 북부지법의 법원장에게는 '재판 변론재개와 기일 연기'를 해주라고 요구했습니다. 법원장은 담당 판사를 불러 '내가 이런 걸 막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해 미안하다'며 임종헌 실장의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또 임 실장은 담당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을 통해서도 서영교 의원의 요청 내용을 전달했다는 게 조사 결과입니다.

2015.05.21 해당 재판 선고(벌금 500만원)

서영교 의원이 재판 민원을 넣은 B씨는 길가에 지나가는 여성에게 다가가 성기를 노출하고 강제로 껴안으려고 시도해 강제추행미수 혐의를 받았습니다. B씨는 비슷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전과가 있었고, 재판에서 범행에 대해 진지한 반성은 없었습니다. 공연음란죄가 아닌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그대로 선고됐지만, 벌금 500만원에 그쳤고 성범죄에 따라오는 신상공개 명령은 면제됐습니다. 검찰은 관계자는 "구속을 우려하고 있던 B씨에게 결국 벌금형이 선고된 것"이라고 봤습니다.

● '재판 청탁' 그 이후

당시 법원행정처는 법사위원들에게 당근뿐 아니라 채찍도 줬습니다. 판사 출신이자 상고법원 반대의지가 확고했던 서기호 의원에게는 '법관 재임용 탈락 취소소송' 재판에서 불이익을 주려한 정황도 나옵니다. 또한 '설득 거점 의원'이자 재판 민원을 요청한 바 있는 전병헌 전 의원을 통해서 또 다른 반대자였던 전해철 의원을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방안도 세웠습니다. 법원행정처의 전방위적 전략에도 상고법원의 무리한 추진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할까
법원 재판-정의의 여신상
추운 날에도 법원 앞에는 재판의 당사자들이 억울하다며 1인 시위를 합니다. 최근에는 대법원장 차량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대법원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다소 극단적인 행동도 나왔습니다. 일반적인 재판 당사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담당 판사를 개인적으로 만나 볼 길은 없습니다.

일반인들과 달리 국회의원은 판사를 만나 지인의 재판 선처 요청을 하고, 담당 판사에게 뜻이 전달되도록 할 수 있었다는 게 수사 결과입니다. 법원에 대해 감시와 견제를 할 의무 가 있는 국회 법사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판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음에도 현직 의원인 서영교 의원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서 의원에게 여러 차례 참고인 조사를 위해 출석하라고 했지만 거절했고, 결국 서면조사에 그쳤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수사가 끝나면 '재판 개입'에 관련된 당시 청와대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처벌을 검토 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느 선까지 기소가 될지는 불투명합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을 둘러싸고 터져 나온 일들을 돌아보면 헌법보다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더욱 와닿는 건 사실입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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