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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쉬워도 너무 쉬운 해고"…어느 예술단의 눈물

지난해 말, 제보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발신인은 '양주시 예술단원', 합창단과 교향악단을 포함한 단원 60명이 12월 31일 자로 해고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성탄절 다음날, 연습실에 날아든 해고 통지서

때는 크리스마스를 막 넘긴 26일, 어김없이 연습실로 출근한 단원들은 벽에 붙어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단원 모두의 이름과 함께 나흘 뒤 그러니까 31일 자로 해촉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사전에 시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겁니다.

[단원 A : 아, 이게 이렇게 없어질 수가 있는 건가? 일단 그냥 황당한 게 컸어요. 아, 이렇게 종이 한 장으로 우리가 사라질 수 있구나. 그런 거.]

단원들이 받아온 월급은 60만 원 수준. 한 달 수입의 2/3를 통째로 잃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단원 A : 뭘 절차라도, 솔직히 절차라도 해줬으면 저희가 좀 준비라도 했었을 텐데...아무 절차 없이 갑자기 길거리에 나앉게 되니까 많이, 솔직히 많이 어려워요. 그래서 솔직히 당장 생계가 좀 어렵고. 가족들한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게 좀 굉장히 속상하고.]
양주시 예술단원 해고
● '노조' 때문에 해체?

양주시 예술단은 10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지역에서 소소하게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지역민들을 위한 정기연주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없어진 이유가 뭘까요? 양주시는 예산이 전액 삭감돼서 예술단을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양주시 올해 예산은 전년보다 728억 원 증가한 7천714억 원, 양주시 예술단 한 해 예산은 7억 원입니다.

양주시 예산심사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시의원들의 발언록을 살펴보니 느닷없이 '노조' 이야기가 튀어나옵니다.
지휘자 갑질 리사이징(취파용)
지휘자 갑질 리사이징(취파용)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조차 별다른 저항 없이 의원들의 예산 삭감 요청을 받아들였고 한마디 상의 없이 단원들을 해고했습니다.

● '갑질' 때문에 노조 만들었더니…

이미 지자체 예술단 30곳 정도가 노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동에 관련된 근로자라면 누구나 노조를 만들 권리가 있습니다. 단원들은 무엇보다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지휘자 갑질 때문입니다. 지휘자 A씨가 시에 보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과 은사 등을 위한 외부 공연에 단원들을 동원했다는 겁니다. 단원들이 저항할 수 없었던 이유는 지휘자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슈퍼 갑'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원 B: 지휘자 선생님이 점수를 안 주면 단원이 여기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선생님 앞에서 (안 된다고) 말을 못 하는 상황이었죠.]

이건 잘못됐다고 항의한 단원도 있었습니다. 그 단원은 결국 수석 단원에서 일반 단원으로 강등됐습니다. 주된 이유는 연습 중에 손톱을 깎았단 거였습니다. (이 단원은 이후 양주시를 상대로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강등 구제 신청을 했고 승소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성 단원에 대한 성희롱 발언부터, 또 다른 지휘자 B씨로부터는 상습적으로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고 단원들은 털어놨습니다.
지휘자 갑질 리사이징(취파용)
처음에는 시에 기대려고 했다는 게 단원들 얘기입니다. 여러 번 문제 제기도 하고 지휘자에 대한 탄원서도 냈습니다. 하지만 시는 묵묵부답. 지휘자를 연임하고, 항의한 단원을 부당 강등시키려는 지휘자의 뜻도 그대로 받아들여 줬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예술단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든 겁니다. 지휘자의 갑질, 시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담당 공무원 A(지난 10월, 시의회에서) : 개인 간의 갈등 문제에 관이 깊숙이 개입하기가…]

● 양주시 "호응이 없어서…"

양주시는 노조 때문은 아니라면서, 투자에 비해 효과가 낮고 호응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그렀다면 애초부터 올해 예산은 왜 신청한 걸까요? 왜 10년 넘게 운영해온 걸까요? 예산을 줄이거나, 운영방식을 바꾸거나, 시민들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10년 넘게 이어온 예술단을 하루아침에 해체한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양주시 예술단원은 '근로자'

양주시는 앞서 예술단원들을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지방 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했다가 진 적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단원을 '위촉'했을 뿐이지, 근로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사건 근로자(예술단원)는 이 사건 사용자(양주시)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이 사건 사용자는 형식적으로 위촉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매월 고정수당 60만 원을 지급하고, 공연 연습 계획을 정하여 이 사건 근로자의 일정과 장소를 구속하며, 주 2회 근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예술단의 연주나 행사에 지장을 주는 외부공연 출연은 불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지각, 조퇴, 병가, 이석 등 복무와 관련하여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2년 이상 재위촉된 지자체 예술단원은 '무기 계약직'에 해당된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수원지법은 성남시장을 상대로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성남시립예술단 단원 3명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2년 이후부터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그러니까 무기 계약직 근로자가 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들을 해촉하는 것은 해고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당한 사유 없는 부당해고"

때문에, 이번 해고는 부당 해고라는 지적입니다. 근로기준법상 해고는 원칙적으로 한 달 전에 해야 되고 그렇게 못 했다면 한 달 치 임금을 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해고할 수 있습니다.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는 게 정당한 사유일까요? 노무사들은 사용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판단입니다.

[유재관 노무사 : 정당한 사유라고 하면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근로자의 귀책 사유라고 봐야 되는데 예산의 문제는 결국 사용자 측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귀책 사유와는 연결될 수 없다고 보시는 게 맞겠죠. 시에서 했던 행위는 근로자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프리랜서나 위촉 당사자로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로자라고 하면 말씀드렸듯이 계약 기간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됐다는 부분, 그리고 근로계약이 해고로 귀결될 수 있는지 여부, 상당히 고민이 필요했던 부분인데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고 판단했던 문제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단원들은 매일 양주시청 앞에서 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 매주 수요일 함께 모여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할 예정입니다. '갑질'을 막아 달라 외쳤지만 돌아온 건 집단 해고. 쉬워도 너무 쉬운 해고에, 을들의 마음은 새해부터 멍들고 있습니다.

[단원 C : 우리가 무슨 양주시를 홍보하기 위해 존재했다가 조금도 우리는 정말, 당연한 권리를 부탁했는데 시끄럽다고 그냥 버려진 일회용품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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