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이기흥 회장을 파면하거나 해임할 수 없습니다. 어제(16일) 문화체육관광부 오영우 체육국장도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서의 지위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헌장 27조 6항'에 따르면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정치·법·종교·경제적 압력을 비롯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IOC는 해당 국가의 자격을 정지시킨 뒤 국제 스포츠 행사 참가를 금지해왔습니다.
체육계에서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이기흥 회장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회장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을까요? 법률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오는 2월11일 열리는 2019년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해임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기흥 회장은 2월 11일 대의원총회에서 해임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한체육회 한 관계자는 "통과는커녕 발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체육회장의 임기는 4년인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물러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이기흥 회장이 15일에 밝혔듯이 마지막 각오로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한 만큼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또 조만간 새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을 선임하는 등 인적 쇄신도 이뤄진다. 지금 당장 해임안을 발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올해 안에 또다시 이런 폭력과 성폭력 사태가 재발되면 그때는 사퇴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현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체육인들도 있습니다. 정부가 이기흥 회장으로 도저히 이 사태를 매듭짓지 못한다고 판단한다면 여러 경로를 통해 대의원들에게 정부의 뜻을 확실히 전달할 경우 해임이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체육인도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정부가 이기흥 회장의 해임을 대의원들에게 은밀히 지시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만약 IOC가 알면 국제적 문제가 되고, 만약 부결될 경우 정부와 체육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 대신 매년 정부에서 지원하는 4천억 원가량의 예산을 무기로 전방위로 압박한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진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였던 지난 1920년 조선체육회로 출범한 대한체육회는 내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자진 사퇴한 대한체육회장은 있었어도 대의원총회에서 해임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기흥 회장이 최초의 불명예를 안게 될지 주목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