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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기흥 체육회장 2월 11일 해임될까?

[취재파일] 이기흥 체육회장 2월 11일 해임될까?
최근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관리 주체인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가 열린 서울 올림픽파크텔 현장에는 문화연대, 체육시민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등 체육·시민사회 단체들이 찾아와 이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국회에서도 이 회장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이기흥 회장의 사퇴와 파면을 요구하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기흥 회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그를 어떻게 물러나게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이기흥 회장을 파면하거나 해임할 수 없습니다. 어제(16일) 문화체육관광부 오영우 체육국장도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서의 지위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헌장 27조 6항'에 따르면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정치·법·종교·경제적 압력을 비롯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IOC는 해당 국가의 자격을 정지시킨 뒤 국제 스포츠 행사 참가를 금지해왔습니다.
쿠웨이트 선수단 입장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쿠웨이트 선수단은 자국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쿠웨이트 선수들도 쿠웨이트 국가대표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출전했습니다. 당시 쿠웨이트 정부가 올림픽 헌장을 어기고 자국 올림픽위원장을 비롯해 경기단체장들을 직접 임명해 IOC로부터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쿠웨이트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때도 정부의 간섭이 드러나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해야 했습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인도가 똑같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2012년 11월 인도올림픽위원회(IOA)가 집행부 선거를 치렀는데 인도 정부 간섭 아래 이뤄져 IOC로부터 자격정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IOC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올림픽 운동을 지키기 위해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체육계에서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이기흥 회장도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회장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을까요? 법률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오는 2월11일 열리는 2019년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해임시킬 수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
대한체육회 정관 제21조(임원의 불신임) 3항에 따르면 "해임안(해임을 요구하는 이유가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은 재적대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발의되고, 재적대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되, 그 의결에 앞서 해당 임원에게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현재 대의원은 각 경기단체 대표, 시도체육회 대표, 선수위원회 대표, 유승민 IOC 선수위원 등 총 119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19명의 절반인 60명이 해임안을 발의한 뒤 3분의 2인 80명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해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흥 회장은 2월 11일 대의원총회에서 해임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한체육회 한 관계자는 "통과는커녕 발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체육회장의 임기는 4년인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물러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이기흥 회장이 15일에 밝혔듯이 마지막 각오로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한 만큼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또 조만간 새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을 선임하는 등 인적 쇄신도 이뤄진다. 지금 당장 해임안을 발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올해 안에 또다시 이런 폭력과 성폭력 사태가 재발되면 그때는 사퇴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현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체육인들도 있습니다. 정부가 이기흥 회장으로 도저히 이 사태를 매듭짓지 못한다고 판단한다면 여러 경로를 통해 대의원들에게 정부의 뜻을 확실히 전달할 경우 해임이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체육인도 있습니다. 대한체육회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정부가 이기흥 회장의 해임을 대의원들에게 은밀히 지시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만약 IOC가 알면 국제적 문제가 되고, 만약 부결될 경우 정부와 체육회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 대신 매년 정부에서 지원하는 4천억 원가량의 예산을 무기로 전방위로 압박한다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진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였던 지난 1920년 조선체육회로 출범한 대한체육회는 내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자진 사퇴한 대한체육회장은 있었어도 대의원총회에서 해임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기흥 회장이 최초의 불명예를 안게 될지 주목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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