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위기의 한국영화, "2019년엔 파이팅 해 주길 바라!" ②

2018년 키워드로 찾는 '해법'

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작성 2019.01.16 13:39 수정 2019.01.16 15: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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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위기의 한국영화, "2019년엔 파이팅 해 주길 바라!" ②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보셨나요? 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워낙 화제를 모은 데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2달 넘게 흥행을 이어가며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요. 그럼, 혹시 영화 '로마'는 보셨나요? 아마 못 보신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지난달 개봉했지만 상영관이 거의 없거든요. 대한민국 극장 업계를 장악한 멀티플렉스들이 똘똘 뭉쳐서 상영을 거부한 탓입니다.

두 영화는 여러 면에서 극과 극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유명 배우 한 명 나오지 않고 완성도 면에서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한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사랑 속에 '천만' 고지를 넘보고 있습니다. 반면 '로마'는 멕시코 출신의 명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이고,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만장일치 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 화제작입니다. 하지만 한국 극장가에선 철저히 찬밥 대접을 받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다른 두 영화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계 영화 산업의 급변하는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면서,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기회를 함께 드러내는 화두라는 점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귀로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 세계를 통틀어 유독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유를 두고 많은 이들이 "한국 관객들의 예전부터 유난히 음악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라라랜드, 비긴 어게인,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줄줄이 흥행했던 다른 '음악영화'들의 기록을 보니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의문이 남습니다. "좋습니다. 좋고요. 그런데, 그렇다면 한국 관객들은 왜 그렇게 음악영화를 사랑하는 건가요?" 우리 민족이 조상 대대로 흥부자여서 그렇다는 "원래 그랬어" 말고,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이유가 뭔가 있지 않을까요?

해마다 열리는 세계 극장 업계 포럼을 보면 적어도 한 가지 이유는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전 세계 극장 사업자들이 모여서 정보도 나누고 주제발표도 하고 아이디어도 모으는 대대적인 행사인데, 매번 한국 극장 관계자들이 귀빈 대접을 받습니다. "한국 극장은 세계 극장의 미래"라고 불릴 만큼 앞서가는 첨단 인프라와 기술적 노하우 때문입니다. 스크린X, MX관 같은 특수관이 아니어도 우리 극장의 영상과 음향 시설 장비는 단연 세계 정상급입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공룡들이 불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멀티플렉스' 체제가 낳은 몇몇 긍정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죠.

슈퍼스타 K에서 박진영 씨가 간편한 이어폰 대신 매번 거추장스런 헤드폰을 쓰고 나오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한국에서 음악 영화가 유독 잘 되는 배경엔 음악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해 주는 한국 극장의 설비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TV로 보면 드라마인데, 뉴욕이나 런던의 동네 극장에서 보면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되고, 첨단 음향 설비를 갖춘 한국 멀티플렉스에서 보면 '음악 영화'가 되는 셈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이변'을 넘어 '기적'이라는 단어까지 불러온 '보헤미안 랩소디'의 성공은 수년 전부터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적 경험'이라는 표현입니다. 제작자와 극장 가릴 것 없이 영화판의 대다수가 입을 모아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필살기'라고 할까요?

한국 영화 관객들이 흔히 하는 불평 가운데 하나가 스토리의 부재입니다. 16부작, 24부작, 50부작 드라마로 관객들의 눈은 한껏 높아졌습니다. 시간 여유 넉넉한 드라마의 쫄깃쫄깃한 밀당과 치밀한 구성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영화는 여기저기 구멍투성이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얘기를 짧은 시간에 다 담으려다 보니 개연성도 없고, 논리도 부족하고…. 게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소파에 드러누워 말 한마디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관객들은 스토리 중심의 고만고만한 영화라면 굳이 돈 들여서 보러 극장까지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관객들 사이에 이른바 '극장용 영화'와 '나머지'의 구분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려면 압도적인 비주얼이든, 심장을 두드리는 입체적 음향이든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는 얻을 수 없는, 드라마가 아닌 영화,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 말입니다. 영화가 다채널의 서라운드 음향, 3D, 4D, 3DX, 4DX, 아이맥스에 이어 VR까지 첨단 테크놀로지와 설비에 끊임없이 손을 뻗치는 이유입니다.

'싱어롱 상영'으로 대변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험 마케팅'의 성과는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얘기는 곧, 뭐니 뭐니 해도 이야기가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이야기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이야기는 다소 허술해도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매력을 담고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영화 '로마'● 봤는데 못 본 영화 '로마'

앞서 '로마'를 보셨냐고 질문했죠. 저는 봤습니다. 아, 아니, 못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봤는데 못 봤습니다.

'로마'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제작했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오리지널'이란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해서 매월 일정액을 내는 회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로마는 회원들에게 무료로 공개되기 전 극장을 통해 일반 관객들에게 먼저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극장이 독점 개봉하는 '홀드백 기간'을 넷플릭스 측이 단 이틀로 제안하면서 멀티플렉스들이 모두 상영을 거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최소 한 달 정도는 극장에 독점권을 준 뒤 IPTV 등 VOD 서비스로 넘어가는 관례를 일방적으로 깼다는 거지요.

저는 '로마'를 넷플릭스에 공개된 날 바로 봤습니다. 퇴근 후 편안히 거실 소파에 누워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곶감 집어먹으면서 스마트폰으로 봤습니다. 참 편하고 좋았는데, 보고 나서 몹시 아쉬웠습니다.

'로마'는 흑백으로 펼쳐지는 영상 속에 정교하게 계산된 절묘한 롱테이크와 공간감을 극대화한 미장센이 압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오에 엄청난 공을 들인 영화입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첫 회차 상영이 감독이 요구한 음향 시스템을 맞추지 못한 탓에 취소된 일화는 잘 알려져 있죠. 그중에서도 절정으로 꼽히는 막바지 바닷가 장면의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제 심장을 두드린 순간 결심했습니다. "안되겠다. 극장에 가서 다시 봐야겠다!" 한마디로 '로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로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다음날 바로 인터넷을 뒤졌지만 집 근처, 회사 근처에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10km 이상 가야 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가장 가까운 상영관이었는데, 상영 일정이 일주일에 몇 번 없었습니다. 근무 시간, 이동 시간, 이런 저런 선약 일정 등을 따지니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결국 못 봤습니다.

요즘 영화 관계자들과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기-승-전-넷플릭스'가 됩니다. 넷플릭스는 '극장용'과 '나머지'의 구분이 점점 냉정해지고 있는 관객들의 소비 패턴과 '플랫폼의 홍수'라는 거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물론, 영화뿐 아니라 모든 영상 콘텐츠와 영상 매체가 맞은 도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입니다.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등 기존 서비스 외에, 디즈니, 애플, 유튜브 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미디어 공룡들이 올해 안에 우르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산업에 뛰어듭니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입니다.
넷플릭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디즈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 세계 콘텐츠 최강자입니다. 미키마우스부터 마블 히어로, 픽사 애니메이션, 폭스 히어로는 물론, ESPN과 EPL까지 갖고 있죠. 한 마디로, 집에서 편하게 고무줄 바지 입고 팝콘 먹으면서 즐길만한 오락용 콘텐츠 상당수는 디즈니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플은 최근 삼성과 파트너십을 맺어 삼성 스마트TV에 애플 무비&TV를 탑재했습니다. 삼성 스마트TV 사용자들은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도 애플이 제공하는 영화들을 TV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OTT 서비스의 최대 약점인 감질나는 모니터의 한계를 상당 부분 넘어설 수 있는 거지요.

유튜브는 영화 스트리밍 사업만 놓고 본다면 아직 마이너지만, 누가 뭐래도 온라인 영상 사업자로는 부동의 넘버원인 저력이 있습니다. 저만해도 최근 이전에 봤던 영화 몇 편을 다시 보고 싶어서 다운받았는데, 유튜브에서 구매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유튜브로 다른 동영상 보다가 생각난 김에 바로 결제했습니다.

일각에선 이런 변화들이 어디까지나 플랫폼의 위기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영화'가 아닌 '극장'의 위기라는 뜻입니다. 영상을 서비스하는 방송도 마찬가지겠군요. 플랫폼이 많아지면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 입장에선 더 좋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합니다. 사실, 넷플릭스가 거액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국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수백억 원짜리 드라마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겁니다. 감독이나 배우 입장에선 글로벌 OTT 기업의 오리지널 작품에 참여하면 단숨에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꿈꿔볼 수 있을 거고요.

각자 처한 위치와 입장에 따라 당장의 손익 계산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이미 우리는 적어도 영화를 보는 방식에 있어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에 들어섰고, 그 세계는 지금도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객들이 주로 영화를 소비하는 플랫폼의 변화는 성공하는 영화의 조건과 문법에도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한동안 다시 회자됐던 마셜 매클루언의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말이 이제는 영화 산업에도 눈앞의 도전이 된 겁니다.
영화관 (사진=연합뉴스)한가지 다행스러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보여주듯, 여전히 '영상 콘텐츠'를 넘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갈수록 선명해지는 '극장용 영화'와 '나머지'의 이분법은 거꾸로 보면 신기술로 무장한 플랫폼 홍수의 시대에도 여전히 극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한국 극장은 관객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제작자들은 이미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한류'를 일으킨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넷플릭스가 세계적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국 가입자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건, 아시아와 세계시장을 겨냥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라는 게 정설입니다. 관건은 우리 영화가 갖고 있는 이런 자산들을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입니다. 그 얘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 보겠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픽사베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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