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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승차 공유가 일상이 된 나라, 싱가포르

[취재파일] 승차 공유가 일상이 된 나라, 싱가포르

박찬근 기자 geun@sbs.co.kr

작성 2019.01.15 10:16 수정 2019.01.15 11: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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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창이 공항 입국장을 나서 1층으로 향하면 긴 줄이 여럿 눈에 띕니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입니다. 싱가포르에서는 택시가 정차할 수 있는 구역이 페인트로 표시돼 있는데 이런 곳이 아니면 택시를 세워둘 수 없습니다. 공항도 예외는 아닙니다. 택시들은 승객을 기다리며 서 있지 못하고, 빈자리가 날 때마다 한 대씩 들어옵니다.

택시가 들어오면 줄 서 있던 사람들이 한 무리씩 택시를 탑니다. 함께 출장 간 일행이 줄 서 있는 동안 택시가 얼마나 자주 들어오는지 나가서 헤아렸습니다. 1분에 서너 대꼴.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를 감당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30분은 더 기다려야겠다 싶었다가, 승차 공유 서비스 '그랩(Grab)'을 떠올렸습니다.
박찬근 취파용 ● '동남아 우버' 그랩의 첫인상

그랩 앱을 깔고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친 뒤 목적지를 입력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만 원이면 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떴고 5분 만에 차가 잡혔습니다. 스마트폰 지도에 표시된 게이트로 나가니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일종의 그랩 승차장인 듯 보였습니다. 뒤섞여 있는 자가용 사이에서 예약한 그랩 차량을 찾았습니다.

휴대전화를 보여주니 운전자는 자기 승객인 것을 확인하고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목적지도 요금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택시와 달리 미터기가 없었고, 차에는 운전자의 것인 듯한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한밤중 싱가포르의 고속도로를 20분 달리는 내내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탄 느낌이었습니다.

● 동남아 토종 업체, 승차 공유를 일상으로

그랩은 동남아시아 '토종' 승차 공유 서비스입니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한 뒤 지금은 본사를 둔 싱가포르를 비롯해 베트남,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8개국에 퍼져 있습니다. 그랩 운전자는 710만 명, 앱을 사용하는 인구도 1억 명 정도 됩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출근길에 그랩 차량을 기다리고 그랩 차량에서 내리는 직장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버스나 택시같이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된 셈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승차 공유가 보편화된 것은 그랩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찬근 취파용 ● 시장 원리에 기반한 독특한 요금제

그랩은 이용자에게 한 가지만 묻습니다. '이 가격이면 가겠냐'는 것입니다. 승객은 그 가격을 받아들일지, 말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요금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그때그때 정해집니다. 차를 찾는 승객이 많으면 요금이 올라가고, 승객을 기다리는 차가 많으면 요금이 내려가는 식입니다.

요금은 그랩의 영업 기밀인 알고리즘에 따라 제시됩니다. 대체로 택시 요금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수요가 몰리면 택시 요금의 두 배 넘게 뛸 때도 있습니다. 현지 이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관광지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올 즈음에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때 현지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택시, 따블!"을 외치는 심정으로 그랩을 이용합니다.

타기 전에 가격이 정해지면 달라지는 것이 많습니다. 승객은 차가 막히거나 길을 잘못 들어 요금이 더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지인들이 가장 자주 언급한 그랩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승객을 최대한 빨리 데려다주고 다른 승객을 태우는 편이 나으니까, 효율적으로 운행할 유인이 생깁니다.

● 승차 공유도 하나의 교통 수단…택시와 상생 도모

물론 이런 방식이 택시 요금제에 비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버스, 지하철, 택시 외에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 편리해졌다는 것이 현지 이용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차가 잘 안 잡힐 때 돈을 더 내고 그랩을 탈지, 기다렸다가 택시를 탈지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지 택시기사들도 그랩과의 공존을 나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현지 기사 얘기를 들어보면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어나 그랩 요금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택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처음 공항에서 내렸던 때 봤던 긴 택시 줄이 떠올랐습니다. 차량 수요가 늘 많은 공항이니, 그랩을 두고 긴 택시 줄이 늘어서 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처럼 택시와 승차 공유 서비스가 큰 갈등 없이 공존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절충안을 찾아가다 보면 택시와 승차 공유의 상생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싱가포르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그랩(Grab)'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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