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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재민 논란'…핵심은 '청와대 부당 개입 여부'

신재민-기재부 공방
"적자국채 발행에 청와대의 부당 개입이 있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폭로한 내용입니다. 여러모로 화제가 됐습니다. 40대 1의 행정고시 경쟁률을 뚫고 그중에서도 최상위권만 입직한다는 기재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그의 이력. 공무원 학원 스타 강사를 언급하며 실제 계약을 맺었다는 그의 발언. 기재부 고발을 당한 이후엔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하면서 논란은 그가 말한 '청와대의 부당 개입'이 아니라 신재민이란 사람 자체로 쏠리기도 했습니다.

● 적자국채? 바이백?…핵심은 청와대 부당 개입 여부

핵심은 청와대의 부당 개입 여부입니다. 신 전 사무관이 어떤 인물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논란이 되고 있는 적자국채나 바이백이 뭔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실제 신 전 사무관 폭로 가운데 부당 개입으로 지목된 청와대 인사는 딱 한 명뿐입니다. 차영환 현 국무조정실 2차장입니다. 논란의 배경이 된 2017년 11월, 차영환 차장은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었습니다. 폭로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기재부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보도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기자들에게도 배포했습니다. 하지만 신 전 사무관은 "차영환 당시 비서관이 기재부에 전화를 걸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쪽으로 보도자료 결론을 180도 뒤집으라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직접 들었다는 말까지 더했습니다.
차영환-신재민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당시 적자국채 발행 논의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기재부는 매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 달 국채 발행 물량에 대한 보도자료를 냅니다. 시간도 정해져 있습니다. 오후 4시 반에 배포해 5시부터 기사화가 가능합니다. 2017년 11월에도 역시 넷째 주 목요일인 23일 오후 4시 반, 12월 국채 발행 계획 보도자료가 배포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습니다.

● 보도자료 배포 이후 '수정' 요구?…명확히 따져야

보도자료 배포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와 기재부의 적자국채 발행 논의는 그 전에 끝났어야 합니다. 국채 발행 계획은 약속이고 계획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시장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건데 보도자료가 배포된 후 이걸 수정하라고 지시했다는 건 정부 스스로 시스템을 무너트리는 꼴입니다. 더군다나 조그만 수정이 아니라 결론을 180도 뒤집으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청와대가 기재부에 정말 그런 요구를 했는지 명확히 따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해명입니다. 석연치 않습니다. 차영환 차장은 현재 속한 국무조정실을 통해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서 국채 발행에 대해 기재부와 긴밀히 협의한 것이며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맞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보도자료 배포 후에 기재부에 전화를 한 게 맞는지, 결론을 뒤바꾸라고 요구한 게 맞는지 명확히 밝힌 건 없습니다. 압력은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압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인데도 말이죠.

● 석연치 않은 해명…청와대가 전화한 이유 명확히 밝혀야

기재부 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재부는 "차 당시 비서관이 연락한 건 계획을 취소하거나 보도자료를 회수하려고 한 게 아니라 12월 발행규모 등에 대해 최종 확인하는 차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앞서 SBS와의 통화에서 "보도자료 배포 이후 대변인실에 내용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본 건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해명대로 청와대 전화 내용이 12월 발행 규모를 묻는 정도였다면 기재부는 대체 왜 굳이 보도자료 내용 변경이 가능한지 검토했던 걸까요. 게다가 차영환 당시 비서관은 기재부와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재부 해명은 그런 차 당시 비서관이 확인하려던 게 고작 다음 달 국채 발행 규모였단 겁니다. 그걸 정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하고 보도자료까지 작성했는데 정작 기본이자 핵심을 확인하려 했단 말입니다. 역시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 "결국 적자국채 발행 안 돼" vs "과정에 피해는 있었다"

청와대와 기재부는 "실제 적자국채는 추가 발행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윗선 개입'이란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 실패했다는 걸 말하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신 전 사무관의 반박 논리가 바로 '바이백 취소'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적자국채와 바이백을 살펴보겠습니다.

적자국채는 나라 빚입니다. 이자는 국민 세금 부담이라 발행 한도는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가 된 2017년엔 28조 7천억 원이었습니다. 이미 10월까지 20조 원의 적자국채가 발행된 상태였습니다. 추가 발행 가능 한도는 8조 7천억 원, 이걸 모두 발행하면 2천억 원의 세금이 이자 갚는 데 쓰이게 됩니다. 신 전 사무관은 당초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었다고 주장합니다. 예상보다 세금이 15조 원 정도 더 걷히고 있는 걸로 파악돼 굳이 막대한 이자를 부담할 필요가 없어 그런 판단을 했단 겁니다. 하지만 2017년 11월 14일, 김동연 부총리 보고 과정에서 갑자기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쪽으로 의견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김동연 신재민
● '바이백' 취소…채권시장 혼란

안 하기로 했던 적자국채를 발행하기로 논의하면서 실행된 게 바로 '바이백(buy-back) 취소'입니다. 바이백은 시장에서 국채를 사들이는 겁니다. 이 바이백 역시 기재부 국채 발행 계획 보도자료에 포함됩니다. 11월 바이백 물량이어서 '예정된 대로' 10월 넷째 주 목요일, 즉 26일 오후 4시 반 배포된 보도자료에 내용이 담겼습니다. 11월 3일에 1조 5천억 규모, 15일과 22일 각 1조 원 규모의 국채를 세 번에 걸쳐 사들이겠다고 공고한 겁니다. 하지만 11월 14일 당시 부총리 보고 과정에서 적자국채를 발행하기로 기조가 바뀌면서 다음 날 예정된 1조 원 규모 바이백이 하루 전날 취소됩니다.

채권 시장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정부가 사주겠다고 공언한 채권을 갖고 있던 국고채 전문딜러(PD)들이 하루에도 수천만 원씩 손실을 보게 됐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시장 안정에 힘써야 할 기재부가 오히려 시장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불만이 쇄도했습니다.

● 바이백 취소, 적자국채 발행과 연관

바이백은 보통 차환을 말합니다. 새 국채를 발행해서 기존 국채를 사들이는 겁니다. 굳이 국채를 국채로 바꾸는 건 채권 만기가 몰리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11월 15일 예정된 바이백, 즉 시장에 있는 1조 원어치 국채를 사들이려면 일단 1조 원을 빌려와야 합니다. 이때 빌린 1조 원은 다음 달인 12월에 또 국채를 발행해서 갚아야 합니다. 11월에 바이백을 하면 12월에 그만큼의 국채가 또 시장에 풀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11월 14일 기조가 바뀌면서 8조 7천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걸 검토하게 됩니다. 바이백을 하면 12월에 1조 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하니까 이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모두 10조 원 정도의 국채가 한 달 만에 시장에 풀리게 됩니다. 통상 월간 국채 발행 양보다 많은 데다 12월은 채권시장이 매수하는 물량도 적습니다. 기재부는 이런 이유로 일단 1조 원의 바이백을 취소해 적자국채 발행에 여유를 뒀다고 설명합니다. 적자국채 발행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바이백이 취소됐다는 건 기재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그 과정에 있었던 바이백 취소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는 겁니다.

●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현 정부 유리한지만 따졌다"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 취소'뿐 아니라 '적자국채 발행을 검토한 것' 자체도 문제라고 말합니다. '윗선'에서 오직 한 가지만 따지라고 주문했다는 폭로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입니다. 나라 곳간에 빚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때 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자리, 혁신성장, 남북경협 등에 재정, 즉 나랏돈을 많이 쓰겠다고 공언한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재정 악화 요인까지 더해져 실제 지난해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7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정부는 매년 적자폭이 늘어 내년 즉 2020년, 처음으로 이 비율이 40%를 넘을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신재민이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
신 전 사무관은 조규홍 당시 차관보와 주고받았다는 SNS 대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조 전 차관보로 추정되는 인물은 "핵심은 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2017년은 박근혜 정부 임기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와 비교의 기준이 되는 해입니다.

신 전 사무관은 "문재인 정부에선 수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교가 되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17년 수치도 높아야 한다는 의미"라며 "적자국채를 최대한 발행해 채무비율을 높이라는 지시"라고 주장했습니다. 현 정부에 유리한지를 따져 적자국채 발행 여부를 결정하려 했다는 겁니다. 물론 조 당시 차관보도 처음에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가 김동연 당시 부총리의 압력으로 이런 지시를 했다고 신 전 사무관은 주장합니다. 청와대와 기재부는 이 역시 "종합적인 검토 결과"라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17년 국가채무비율을 '핵심'이라고 강조한 게 맞는지, 그 배경이 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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