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최저임금 논의에 '연봉 9천만 원' 현대차가 등장하면 안 되는 이유

[취재파일] 최저임금 논의에 '연봉 9천만 원' 현대차가 등장하면 안 되는 이유
'현대, 기아차 직원도 최저임금 미달될 판', '초봉 5200만 원도 비상'

'최저임금'을 검색하면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뜹니다. 기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년 최저임금은 8천350원. 올해보다 10.9%나 오릅니다. 인상 폭도 급격한데 고용노동부는 계산 방식도 바꾸겠답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놨는데 내일(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당장 내년부터 시행됩니다. 이게 시행되면 연봉 1억 원 가까운 대기업들도 최저임금을 걱정해야 한답니다. 화가 납니다.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이란 말인가! 대체 정부가 어떻게 개편했길래!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최저임금은 분명 저임금 근로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국가가 적어도 '이 이상은 주고 일을 시키라'는 뜻으로 최저 시급을 정하는 겁니다. 제일 낮은 기준이어서 논란은 영세, 중소 업체 사업자와 근로자들 위주로 진행됐습니다. 8천 원 남짓의 시급을 줄 여력이 없다는 사업자와 연봉 2천만 원은 너무 적다는 근로자 간의 '을의 전쟁터' 였던 겁니다. 대체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뭐길래 1억 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대기업까지 최저임금을 걱정하게 됐을까요.
취재파일용

● 최저임금법 개정 '경영계 배려'

최저임금은 시급입니다. 월급제든 주급제든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야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질 수 있습니다. 시급 계산은 월급/근로시간, 즉 월급 전부를 일 한 시간으로 나누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많이 복잡합니다.

고용부는 앞서 지난 6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분자인 임금 총액 부분은 경영계를 배려한 안을 만들었습니다.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는 임금들의 합계입니다. 내가 받는 임금 전부가 최저임금 계산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월급 명세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본급, 시간외수당, 상여금, 성과급, 식비, 교통비, 복리후생비, 고정수당, 특근수당… 수많은 항목이 보입니다. 급여는 이 수많은 항목들이 더해진 겁니다. 항목이 많아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퇴직금과 연동되는 기본급을 낮추기 위해 이런 복잡한 임금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경영계 반겨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는 이 수많은 항목 중 들어가는 게 있고 빠지는 게 있습니다. 포함되는 것만 더해야 최저임금 산입 총액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분자가 되는 겁니다. 최저임금법 개정 전까지는 기본급과 고정수당 정도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분자에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늘어난 겁니다. 분자가 커지면 시간당 임금은 늘어납니다. 기업 입장에선 근로자에게 똑같은 임금을 주고도 이 산입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시급을 더 많이 주게 된 셈이 됐습니다. 경영계가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를 반기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을 우려해 대안도 넣어뒀습니다. 내년 기준 상여금은 월 43만 원, 복리후생비는 월 12만 원이 안 되면 계산에서 빼주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적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받는 노동자에게는 회사가 시급 계산에 이걸 포함하지 말고 기본급을 올려 최저임금을 맞추라는 뜻입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적을수록 근로자에 유리하기 때문에 소액으로 볼 수 있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산입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은 겁니다. 다만 이 '당근' 역시 2024년부터는 완전히 없어집니다. 그때부터는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됩니다. 새로운 최저임금법은 10.9%라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발하는 경영계를 달래기 위해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그러니까 분자 부분 즉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를 늘려준 것입니다.

● 분모는 '그대로'…논란의 '주휴수당'

내일 국무회의에 오르는 개정 시행령은 이런 법 개정으로 분자 계산이 변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분모, 즉 근로 시간의 계산 방식인데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시간당 임금의 계산식, 즉 임금/시간 중 분모인 근로시간을 계산하는 현행 방식을 명문화하겠다는 겁니다. 일부 기사들이 시행령 개정으로 계산이 달라질 것처럼 표현하지만 유일하게 변한 건 앞서 언급했던 최저임금 산입범위, 즉 분자뿐입니다.
취재파일용
분모 계산을 할 때 논란이 되는 게 '주휴수당'입니다. 우리나라와 멕시코, 터키, 스페인 등 9개국에만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근로자에게 좋습니다. 쉬고도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해야 하는 근로자가 결근 없이 일하면 주말 하루는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입니다. 실제로는 40시간 일했지만 48시간 일한 만큼 임금을 받는 겁니다.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기간 근로자'를 제외하면 '알바'도 무조건 받게 돼 있는 수당입니다.

주휴수당을 받는 근로자의 업무 시간은 어떻게 될까.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실제 일한 시간은 40시간인데 임금 지급 기준 시간은 48시간입니다. 사업자가 일한 것으로 치고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 일한 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월 근로시간은 174시간이 됩니다. 반면 48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209시간이 됩니다. 현행 시간당 임금 계산은 209시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기본급에 주휴수당이 포함됐다는 게 이유인데 쉽게 말해 '분자에 들어가니 분모에도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 대법원 기준과 상이한 고용부 기준…경영계 반발

경영계는 지금 적용되는 209시간 대신 실제 일한 시간, 즉 174시간을 분모에 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그렇다는 게 그들 주장의 근거입니다. 지난 2007년 대법원은 분모에 174시간을 두라고 판시했습니다. 주휴수당을 받는 시간, 그러니까 돈은 받지만 실제 일하지 않은 시간은 근로시간 계산에서 빼라고 한 겁니다. 경영계와 대법원 판례대로 하면 시급은 올라갑니다. 똑같은 돈을 줘도 최저임금 위반을 벗어나기가 쉬워지는 겁니다. 고용부의 분모 계산 방식은 30년 동안 유지돼 왔습니다. 경영계는 그동안은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도 최저임금 수준을 맞출 수 있었지만 급격한 인상이 단행된 만큼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용부는 그럴 수 없다며 개정안을 통해 현행 방식을 명문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가 "실제 일한 시간만큼 나누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2007년 이전의 대법원 판단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앞서 1990년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계산 방식 중 분모, 즉 근로시간을 209시간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통상임금 관련 시행령이 현행 최저임금법 시행령과 같았습니다. 소정근로시간, 즉 일하기로 한 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정하라고 했는데 대법원은 소정근로시간에 임금을 받았지만 실제 일하지 않은 시간을 포함시키라고 했습니다. 실제 이 판결 이후 통상임금 시행령은 '소정근로시간에 유급 처리된 시간을 포함'하도록 개정됐습니다. 고용부는 통상임금과 마찬가지로 이번 최저임금 시행령이 개정되면 대법원도 이를 인정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209시간이 아닌 174시간을 원하는 경영계는 "통상임금은 최저임금과 성격이 전혀 달라 함께 논의할 수 없다"며 고용부 주장을 일축합니다.
직장인
● 개정안 통과 안 되면…전문가들 "대혼란 올 것"

전문가들은 고용부도 이번 시행령 개정을 하면서 대법원 기준과 현행 기준, 즉 174시간과 209시간을 두고 고민이 많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기준인 209시간 대신 174시간으로 바꿀 경우 시급이 올라 경영계에 유리해지기 때문에 현행 방식을 유지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분자도 이미 경영계에 유리하게 했는데 분모까지 그러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무력해지기 때문입니다. 30년간 이어온 방식을 뒤집는 부담도 컸을 거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고용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내일 국무회의 통과 불발로 시행이 미뤄질 때 생깁니다. 현장에 계속 상이한 두 개의 기준, 대법원의 174시간과 현행 209시간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이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대법원 판례 174시간을 따라 내년 최저임금 8천350원만큼만 근로자에 줄 경우 월 145만 원만 주면 됩니다. 하지만 고용부 계산 방식, 즉 209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하면 시급이 7천 원도 못 미칩니다. 시정명령 대상입니다. 하지만 고용부가 시정명령을 내려도 검찰이 대법원 판례를 들어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최근 최저임금 위반으로 시정명령을 받은 대우조선해양 사건도 검찰이 같은 이유로 사건을 불기소했습니다. 기업들이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해도 현행 방식과의 괴리로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겁니다.

● '연봉 9천만 원' 현대차가 최저임금 논의에 거론되는 이유

다시 처음 물음으로 돌아갑니다. 현대차 등 높은 연봉의 대기업이 난데없이 연봉 2천만 원 정도의 최저임금 논의에 등장하는 건 현행 시행령 개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고용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지금 유지되는 방식과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경영계는 앞선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분자, 즉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이득을 봤습니다. 시행령 개정에 대한 경영계의 요구는 여기에 더해 분모까지 자신들에 유리하게 바꾸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등 대기업의 최저임금 위반 문제는 복잡한 임금 체계의 문제지 최저임금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기본급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수당이 너무 많은 월급 체계의 문제라는 겁니다. 경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 근로자의 연봉이 월 기본급의 20배 이상인 기형적 구조"라고 밝혔습니다. 내년부터는 기본급 등 최저임금 산입 범위 임금 총액이 월 175만 원만 되면 됩니다. 경총이 밝힌 대로 계산하면 기본급 등으로 월 175만 원을 받는 근로자는 평균 연봉이 3천만 원 정도입니다. 연봉 5천만 원이 훌쩍 넘는 현대차 등 고임금 대기업이 기본급 등으로 175만 원만 준다면 그건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기업들보다 기본급 등 비중이 훨씬 더 낮다는 걸 의미합니다.
직장인 연봉 차이(사진=연합뉴스)
최저임금은 '을'을 위한 정책입니다. 대기업 근로자들의 기본급 등 비중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건 그들의 '이상한' 임금 체계의 문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들의 임금 지불 능력을 따지는 건 적절하지만 대기업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지는 건 악의적인 흠집 내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저임금제가 고임금 근로자의 형편을 고려해 만든 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정안 시행으로 현행 계산 방식을 유지해도 이미 법 개정으로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추가돼 시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최저임금 위반 여부는 실제 매월 받는 월급 항목을 두고 정밀한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만약 고임금의 대기업 노조가 "우리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한다"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그걸 납득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겁니다. 고용부는 대기업이 매월 지급되지 않는 상여금을 매월 주도록 바꾸면 대부분의 최저임금 문제가 해결된다며 대비책을 내놨습니다.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데 노조의 동의가 없이 가능하도록 했고 임단협도 노조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으면 단속을 유예하도록 했습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생계형 노동자들과 영세 중소기업 간 논의로 한정돼야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