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南 무기도입·국방비' 잇단 비난…"군사합의 독소조항 탓"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2.17 13: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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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의 정상회담과 북미 고위급 회담 일정이 묘연해지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제자리걸음입니다. 때맞춰 북한이 우리 군의 무기 도입과 국방예산을 두고 번번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과거에 없던 일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과거의 북한은 우리 군이 타우러스 공대지 미사일, F-35A 스텔스 전투기 같은 공격무기를 도입할 때에만 비난 기사를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방어용 무기까지 일일이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새로 무기의 기종을 결정했을 때뿐 아니라 이미 돈을 치른 무기를 들여올 때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방예산 증가도 내정간섭의 소지가 있지만, 북한은 비난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넓게 보면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전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군이 무기를 도입할 때 북한이 훼방을 놓을 수 있는 빌미를 북한에게 줬습니다.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를 남북군사공동위에서 협의하기로 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 1조 1항입니다.
공군 공중급유기 1호기 (사진=방사청 제공)● 무기 들이려고 하면 번번이 시비

지난달 12일 우리 공군의 공중급유기 A330 MRTT가 김해공항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내년까지 모두 4대를 도입하는데 1호기가 들어온 겁니다. 공군은 "공중급유기 도입으로 독도와 이어도 등 외곽지역 방어능력을 몇 배 높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1주일 뒤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공중급유기 도입을 요격미사일 패트리엇 도입 계획과 묶어서 비난했습니다. "북남 사이에 진행되는 군사적 신뢰 조치들과 현 북남 화해국면에 역행하는 위험한 군사적 움직임", "대화의 막 뒤에서 동족을 반대하며 칼을 벼리는 불순한 흉계의 발로"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달 27일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 '그린 파인 블록-C'와 해상초계기 '포세이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엔 북한 노동당의 공식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나섰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12일 조기경보레이더와 해상초계기 도입 계획을 "마주 앉아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위험 제거를 위한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돌아서서는 동족을 겨냥한 무력증강에 나서는 이중적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민족끼리'와 대외용 선전 매체 '메아리'도 조기경보레이더와 해상초계기 도입 계획을 힐난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국방예산 증액을 문제 삼았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 놀음은 무엇을 시사해주는가'라는 논평에서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며 북남관계 개선과 조선반도 정세 완화 흐름에 역행하는 엄중한 도전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 9·19 군사 합의 1조 1항이 화근

북한 주장의 근거는 9·19 남북 군사 합의서의 1조 1항입니다. 1조 1항은 "쌍방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입니다.

우리 군의 새로운 무기 도입은 1조 1항에서 협의 대상으로 지정한 무력증강에 포함되는데, 북한은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겁니다. 차동길 단국대 해병대 군사학과 교수는 "1조 1항은 독소조항"이라고 단언하면서 "북한이 앞으로 우리 군의 방위력개선사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게 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1조 1항은 대규모 군사훈련도 남북 협의 대상으로 잡아놨습니다. 한미 연합훈련뿐 아니라 우리 군 단독훈련도 규모가 크면 북한과 협의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협의 대상 훈련의 규모를 상세히 규정한 외국의 성공한 군비 통제 사례와는 달리, 1조 1항은 막연하게 '대규모 훈련'이라고만 표현해 놨기 때문에 북한이 "이번 훈련은 규모가 크다"며 트집을 잡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적극적인 군사작전인 봉쇄와 차단까지 남북 협의 대상에 올려놨습니다. 우리 해군이 실시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유엔 제재에 따른 북한 화물선의 불법 환적 차단 작전도 북한이 물고 늘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미, 북미 간 갈등이 촉발돼 북미 비핵화 협상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군이 앞으로 무기를 사고 군사훈련을 하고 미국 주도의 차단작전을 할 때마다 북한이 1조 1항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반발할 소지가 큽니다. 반면에 북한이 9ㆍ19 군사합의를 어기고 해안포문을 열고 NLL을 부정하는 경고 방송을 해도 우리 군이 북측에 따끔하게 항의할 명분이 흐려졌습니다. 참 난처한 상황인데 국방부는 오늘 "남북군사공동위가 열리면 여러 현안들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