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꿈꾸며 위험 감수했지만…주검으로 돌아온 청년

이용식 기자 yslee@sbs.co.kr

작성 2018.12.12 21:08 수정 2018.12.12 22: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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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하청 업체 소속 19살 청년이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두 명이 함께 일하는 게 원칙이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 전에는 제주도에서 현장 실습을 나갔던 한 고등학생이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여름이었습니다. 물류 센터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감전돼서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 김용균 씨 역시 이들처럼 평범한 젊은이였는데 위험을 떠넘기는 사회에서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용식 기자입니다.

<기자>

94년 12월 6일생, 갓 24살이 된 고 김용균 씨는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 이송 컨베이어 운전원이었습니다.

옥외 저탄장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3개월째 석탄을 날랐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노동의 대가는 한 달에 1백60여 만 원.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지만, 구직 6개월 만에 잡은 첫 직장은 소중했습니다.

위험하고 힘들어도 곧 정규직이 될 거라는 꿈을 품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뎌왔습니다.

[故 김용균 씨 어머니 :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원래 한전을 생각하고 경력을 쌓으려고 들어간 데라서 참아내겠다면서 그러더라고요.]

경북 구미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김 씨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대신한 사실상 집안의 가장이었습니다.

[故 김용균 씨 어머니 : 첫 월급 탔다고, 엄마 좋아하는 그런 것 사고 싶은데 뭐가 필요하냐고….]

지난 10일 밤 김 씨는 컨베이어 벨트 아래 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벨트에 감긴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김 씨를 포함한 동료 직원들은 늘 혼자 감당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이성훈/한국발전기술 동료 직원 : 저도 2인 1조로 근무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서 2인 1조로 하래요, 사고 나니까.]

김 씨는 사고 발생 열흘 전 현장 대기실에서 안전모와 방진 마스크를 쓴 사진을 찍어 올리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행동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직접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호소하려던 김 씨의 뜻은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됐습니다.

(영상취재 : 김민철, 화면제공 : 한국발전산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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