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는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핵의 상징 격인 영변 핵시설은 북한이 지난 2009년 핵 불능화 모니터링팀을 추방한 이후 9년여 국제사회의 감시 밖에 있었다는 점에서 검증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비핵화에 미치는 의미가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의사를 밝혔으며, 문 대통령은 같은 달 뉴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고위 외교소식통은 연합뉴스에 "평양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서는 영변 핵시설의 폐기뿐 아니라 검증을 허용할 용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해 사찰의 성격을 띠는 검증을 받아들이겠다는 의향을 표명한 적은 없었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정상 간 합의문서인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은 유관 기관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으나, 영변 핵시설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구 폐기한다는 내용만 담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평양회담 이후 대국민 보고에서 "구두로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눴으며, 논의한 내용 가운데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은 앞으로 미국 측에 상세하게 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같은 달 24일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검증 용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으나, 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영변 핵시설 사찰은 올해 초 북미간 대화모드가 조성된 이후 미국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핵심 요구사항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성사된다면 북미 간 비핵화 논의를 급속도로 진전시킬만한 소재로 평가됩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재완화를 요구하는 북한과 '선(先) 신고·검증'으로 맞서는 미국이 팽팽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비핵화 협상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미가 영변 핵시설 검증 문제를 고리로 조만간 고위급 회담이나 내년 초로 예정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접점을 찾는다면, 비핵화 정국은 새로운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경우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영변 핵시설까지, 이른바 북한의 3대 핵·미사일 시설의 신고·검증 프로세스가 한꺼번에 속도를 낼 수 있어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