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물의 야기' 법관은 따로 있다 ①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18.11.21 09:10 수정 2018.11.22 16: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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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물의 야기 법관은 따로 있다 ①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반 년 가까이 진행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9부 능선을 넘었다는 말이 나온다. 의혹이 본격화한 시점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취재 초기만 하더라도 분기탱천하고 놀라는 일이 잦았다. 우리 사회가 '님'자까지 붙여가며 식자(識者)로 대우하던 판사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쓴 기사 내가 읽으면서도 '이게 말이 되나?' 몇 번씩 주춤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판사들이라고 다르겠니?" 말을 얹는 사람을 만날 때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받아쳤다. 헌법이 보장한 '법관독립'이 견제받지 않은 채 재판을 거래하고 동료 판사들 뒷조사나 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옮기기에도 조심스러웠던 추문들은 '법원행정처 대외비/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고, 검찰에 피의자로 다녀간 판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매일같이 새롭게 드러나는 양승태 사법부의 실상과 은폐를 목적으로 한 법원의 거짓말에 익숙해지면서부턴 더 이상 감정노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다고 기사를 써야 하나' 가늠조차 되지 않아 답답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 터무니없는 거짓말 "업무 상 판사들의 동향이나 성향 파악할 필요 없어"

가끔씩 이탄희 판사가 증언한 '판사 뒷조사 문건(법원행정처 작성)'의 진위를 두고 여론에 떠밀리듯 구성됐던 법원 내 진상조사단의 보고서(2017.4.18)를 다시 읽는다. 이 보고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을 대목이 늘어난다.
관련 사진판사들을 뒷조사하는 건 법원행정처의 업무가 아닐 뿐더러,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심의관이 '평소 행정처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문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던 진상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은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법원이 다시 구성한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보고서(2018.1.22)에 의해 180도 뒤집힌다. 내용을 확인할 것도 없이 보고서의 목차만 봐도 바뀐 결론을 알 수 있다. (** 추가조사위원회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구성됐다)
[취재파일] '물의 야기' 법관은 따로 있다 ①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표 캡처2
● '판사 뒷조사 문건' 확인하다 청와대에 판결 '사전보고' 정황 발견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법농단 의혹은 특정 법원전문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뒷조사' 정도로 규정됐다. 하지만 추가조사위의 조사보고서 끄트머리엔 뜻밖에도 양승태 사법부가 숨기려 했던, 하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취재파일] '물의 야기' 법관은 따로 있다 ①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캡처4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공작' 항소심 선고가 나기도 전,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며 담당 재판부의 의중과 동향을 파악했던 행정처 판사들이라니. 판사 뒷조사 문건 의혹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관심 재판 결과를 알아내 사전 보고하려 했던 정황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들추다 만 듯 언급된 이 '원세훈 항소심 - BH' 문건 등을 이유로 법원은 또 한번 부실 조사를 비판하는 안팎의 여론에 직면하고 결국, 세 번째 법원 자체 조사기구(특별조사단, 3차조사)가 출범된다. 이후 특별조사단이 내놓은 결과 보고서(2018.5.25)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본격적으로 '재판거래'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만든 건, 역설적이게도, 주요 국면마다 거짓으로 위기를 외면하려 했던 법관들, 그 자신이었다.

(2편에 계속)